〈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꿀강’ 잡는 매크로 개발·교수님 전상서 손편지까지…
대학생 4명이 말하는 2018년 2학기 ‘수강전쟁’ 참전기
‘수강신청 전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학기 초가 되면 포털 사이트에 ‘○○대학교’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일이 흔합니다. 대학들은 학교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받습니다. 이른바 ‘꿀강’을 잡으려는 학생들이 수강신청 사이트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광클’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수강신청 당일엔 학교 누리집을 찾아가느라 포털 검색창도 바빠집니다. 난데없는 대학 이름 인기 검색어 등극의 전말입니다. 이렇게까지 수강신청이 치열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부 학생들은 자칫 수강신청과 수강신청 정정 기간에 졸업에 필수적인 과목을 잡지 못하면 계절학기를 듣거나 휴학을 하고, 최악의 경우 한 한기를 더 다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왜 같은 일이 몇년째 학기 초마다 반복되는 걸까요? <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팀이 수강신청 전쟁을 벌이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등장 인물: 김승수(서강대 3학년), 김광현(세종대 4학년), 유정민(숙명여대 2학년), 정장희(숙명여대 4학년)
수강신청, 안녕들하십니까?장희: (2학기 수강신청은 어떻게?) 저는 아직 좀 남았어요. 정정해야 해요.
정민: 저는 올클(all clear).
광현: 한 과목만 잡으면 되는데 그거 못 잡으면 졸업을 못 해요.
승수: 저도 이번에 다 성공했습니다.
PC방, 노트북, 학교 전산실… 그래도 ‘될놈될’ 승수: (수강신청은 어디서?) 집도 못 믿겠고, 학교 전산실도 못 믿겠고,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피시방을 찾아서 한두 시간 전부터 미리 세팅을 해죠. 그때부터 긴장을 하는 편이에요.
정민: 저는 그냥 제 방에서 노트북으로 하는 편이에요. 딱히 피시방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손가락을 믿어요.
광현: 플라시보 효과? ‘학교 서버니까 학교 컴퓨터가 제일 빠를 거다’라는 믿음이 있죠.
장희: ‘될놈될’(될 놈은 된다)이라고 생각해요. 성공한 건 항상 집에서 노트북으로!
<원:피스>에 출연한 대학생들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TV> 스튜디오에서 수강신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강대 김승수, 세종대 김광현, 숙명여대 유정민, 정장희. <원:피스>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숙명여대 유정민(2학년)씨가 수강신청 노하우에 대해 야이기하고 있다. <원:피스>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56, 57, 58, 59, 00…손가락은 마우스 위에서 리듬을 타고 승수: (수강신청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운이 좋으면 성공하고, 운이 나쁘면 실패해요.
광현: 몇초에 들어가느냐의 싸움인 거 같아요. 대담형인 친구들은 59분 56초에 접속하고요. 56초에 들어갔을 때 대기 시간 때문에 미리 들어가는 건데 만약에 56초에 들어갔을 때 59초면 안 열리거든요. 그러면 망한 거고 그래서 58초에 들어가는 친구들이 안전하게 들어가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보통 56초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는 편이에요.
장희: 타이밍을 맞춰요. 저희는 딱 00초에 들어가야 하는데 00초를 보고 들어가면 안 되고, 59초에서 00초 될 때 딱 들어가야 성공을 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티케팅(아이돌 그룹 공연 인터넷 예매를 의미함)하던 솜씨가 있어서 50초부터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요. 58초, 59초 리듬이 있으니까 59초에서 00초로 바뀔 때 같이 누르면 성공을 해요.
정민: 저도 티케팅을 하도 많이 해가지고, (타이밍 맞추는 게) 두렵지 않아요.
광현: 그게 어떻게 안 떨리겠어요. 마지막 학기인데도 떨리는데….
숙명여대 정장희(4학년)씨가 수강신청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광클’의 목적 ‘꿀강’을 찾아서장희: (‘꿀강’의 기준은?) 진짜 사람 바이(by)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과제가 없는 과목을 좋아해요. 과제가 있으면 한학기 내내 시달려야 하니까.
정민: 저는 오히려 반대로 차라리 과제로 점수 다 매기는 과목이 낫다고 생각해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한 거죠.
광현: 제일 좋은 건 사실 학점 잘 주는 교수님. 학점 꽉꽉 채워주는 교수님이랑 무조건 플러스로 주는 교수님이 좋죠.
승수: 강의력이 좋아야 해요. 성적과는 별개로, 저는 강의력이 좋은 교수님한테 수업을 들으면 성적과 무관하게 되게 좋아 하거든요.
비밀번호 바꾸는 창이 하필이면, PC방 블랙아웃된 경우도 장희: (최악의 수강신청은?) 2학년 때였는데 개강을 해서 등교까지 했는데, 수강 과목이 2개 밖에 없었던 거예요. 하루 종일 노트북 들고 다녔어요.
승수: 수강신청 사이트 접속할 때 학교 포털 아이디, 비밀번호 입력한 상태에서 로그인 버튼을 (수강신청 사이트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눌렀어요. 그런데,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지 6개월 이상 됐다고,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창이 떠요. 10시 00분 00초에 로그인을 했는데 비밀번호 바꾸는 창으로 넘어 가면서 비밀번호 바꾸고 5분 정도 지나고 수강신청 사이트 들어가서 제일 인기 없는 교양 3학점짜리 하나 줍고 끝났어요. 그래서 휴학을 했어요.
정민 : 제 친구가 피시방에서 수강신청 하는데 피시방 전체 전원이 블랙아웃 된 적 있다고!
마지막 찬스, 수강정정 2차대전승수 :(나에게 수강신청 정정이란?) 한 한기를 어떻게 보낼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회? 찬스?
광현 : ‘마지막 전쟁’이라는 표현이 제일 맞는 거 같아요. ‘찬스’는 너무 긍정적인 단어 같고.
정민 : 2차 대전. 1차 대전 이미 치렀고, 2차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장희 : 수강정정은 마지막 생명줄이다.
세종대 김광현(4학년)씨가 수강정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버리지 않고 주워만 먹는 수강정정 ‘먹튀’승수: (수강정정에서 먹튀란?) 친구들끼리 서로 과목을 주고 받아요. 포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내가 오티(OT) 생기면 바로 줍는 식으로 많이 주고 받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인 오후 2시 40분이나 오후 3시 이럴 때 해요. 옆에서 같이 하거나 아니면 전화로 ‘나 지금 버린다’고 하고 버리기 버튼을 눌러요. 나는 버린 것을 확인했는데, (친구가 주으려고 하니) 이미 차버린거죠.
장희: 커뮤니티에서 서로 교환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전화 통화를 안 하는 경우에 오픈 카톡방에서 (교환)했는데, ‘버릴게요’하고 자기만 주워가고 버리지는 않는 거예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글이 올라와요.
경제학개론 구합니다, 사례하겠습니다승수: (수강정정 때 매크로나 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매크로를 쓰지 말라고 하는데, 학교 쪽에서 나서서 잡는 거 같지는 않아요. 분명히 있을 텐데요. 저는 몰라요.
광현: 저희 과 특성상 매크로를 만들거든요. 개발을 해서 매크로를 다같이 돌렸었는데 군대 갔다 오니까 정정기간에 신청을 하면 ‘나는 봇이 아닙니다’라고 인증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또 뚫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더라고요.
승수: (학교 게시판) ‘0000수업 필요한데 주실 분 구합니다. ㅠㅠ’ 이런 식으로 글 올라와요.
장희: ‘경제학개론 구합니다. 사례하겠습니다’ 이렇게 글이 올라오죠.
광현: 다른 학교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전공 말고 ‘꿀교양’은 (강의 매매가) 빈번하게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5만원, 10만원 이렇게 과목마다 금액이 있데요.
서강대 김승수(3학년)씨가 수강신청 정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대학생 4명이 서울 공덕동 한겨레TV 스튜디오에서 수강신청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한겨레TV 정주용 피디
계절학기도 못 잡으면 5학년 1학기! …손편지 고이 적어 교수님께광현:(수강정정 못하면…?) 계절학기로 잡아야 해요. 계절학기도 못 잡으면 5학년 1학기 다녀야 해요.
장희: 저는 편지 쓸 준비하고 있어요. 편지지 사 놓았어요.
광현: 보통 이메일 보내지 않아요?
장희: 저는 손편지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들어가야 해요. 오리엔테이션에 들어가서 제일 앞에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열심히 들어요. 편지 길게 쓰면 안 보시니까 작은 쪽지에 ‘교수님 저는 무슨 학부 몇 학번 누구 누구입니다. 이번 학기에 이것을 듣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습니다.’ 2학년 때부터 이 수법으로 계속 해왔어요.
400만원 등록금은 다 어디로? …‘돈을 받았으면 학생들에게 써라’장희: (한학기 등록금은 얼마?) 380만원. 광현: 440만원. 승수: 360만원.
장희: 학원을 가면 학원비를 내고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잖아요. 대학교에서 지금까지 낸 적 없는 큰 돈을 내면서 수강신청 할 때마다 간 떨려하고, 수강정정 못하면 교수님한테 빌어야 하는데, 돈 내고 빌어야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죠.
정민: 부당한 걸 알면서도 이게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슬픈 것 같아요.
광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여태까지 8학기를 다녔다는 것도 참….
승수: 불만이 많아도 ‘어차피 해결 안 해줄 텐데’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광현: 수강신청 전에는 술 마시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한번의 클릭이 6개월을 좌우한다’고, 수강신청 끝나면 ‘내가 왜 이 돈 내고 원하는 강의도 못 듣나’ 이런 이야기해요.
정민: 교수를 더 뽑던가, 수업을 더 늘리던가, ‘돈을 받았으면 그만큼의 돈을 학생들을 위해 써라’ 이런 말 해주고 싶어요.
기획·연출 정주용 피디 j2yong@hani.co.kr☞ 시사다큐 원:피스 더보기 https://goo.gl/jBPK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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