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24회
서로를 감싸며 사는 곳, 우사단 사람들 1부
거리 사진가 임수민씨가 찍고 느낀 우사단
우사단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옛날에 보광동 산4번지에 기우제와 기설제를 지내던 우사단이 있었고, 마을의 유례가 되었습니다. 근대들어 이태원이 외국인 거리로 자리잡으면서 이태원과 이어진 우사단길에는 이슬람 사원과 할랄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우사단이 무슬림을 주축으로 흑인과 백인, 그리고 한국인 등 여러 인종이 뒤섞인 국제 마을로 변화가 생긴 겁니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과 상인들이 공예품 가게와 작업실을 내면서 아기자기한 골목길 풍경이 자리잡게 됩니다.
최근 우사단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옛 것과 새 것,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뒤섞인 이 공간에도 재개발의 욕망이 꿈틀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팀이 재개발 한 가운데 선 우사단길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3차례 걸쳐 소개합니다. 첫번째는 거리 사진가 임수민(27)씨가 찍고 느낀 우사단 이야기입니다.
외국에서 보낸 성장기,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지내고 있는데, 나만 유독 다르지? 우사단을 와 보니까 저만큼이나 독특하고 자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수민씨는 운명처럼 우사단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성장기를 대부분 외국에서 보냈던 수민씨는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생김새 탓에 늘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수민씨는 또래와 쉽게 어울리기 힘들었습니다. 외국 생활로 몸에 밴 큰 리액션과 말투를 친구들은 낯설어 했습니다.
수민씨가 우사단을 처음 온 것은 2014년입니다. 골목길은 정겨워고 피부 색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지내는 모습이 더없이 친근했습니다. 우사단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사단을 찍는 일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소외감을 저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사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위로를 받지 않을까 어지요. 그때부터 사람들 사진을 찍게 됐어요.” 우사단을 찍는 것은 이방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이 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수민씨는 그렇게 2년 동안 우사단 주민으로 살았습니다.
우사단 골목을 걷고 있는 임수민 작가.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우사단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처음 본 우사단은 어릴 적 부모님이 읽었주었던 국어 책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미로처럼 굽어진 골목길, 뾰족한 벽돌집, 낮은 담벼락과 작은 대문들, 골목에 나와 있는 화분들, 길 모통이에서 졸고 있는 길고양이들까지…. “이태원에 처음 왔을 때 이렇게 한국적인 곳이 있을 거란 상상을 하지 못했어요. 처음 본 순간 바로 우사단에 살기로 마음 먹었어요.”
우사단 골목을 뛰노는 것은 수민씨에게 즐거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골목길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슬람 사원 근처에 터를 잡고 사는 무슬림들, 혼자 낡은 집을 지키고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장사를 하고 싶어 찾아온 돈 없는 청년들까지.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이방인이거나 소외된 삶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민씨에게는 오히려 위로가 됐습니다. 아무도 수민씨의 말투와 행동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처지가 비슷한 이방인들 사이에서 수민씨는 그저 한 명의 우사단 이웃일 뿐이었습니다.
우사단 골목 부감.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우사단 거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임수민 작가.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눈짓과 마음이 통해 이웃이 되었다
“어디로 이사갔어? 전화라도 하지.”
오랜만에 우사단을 찾은 수민씨는 길에서 우연히 단골 식당 사장을 만났습니다. 의도치 않은 만남은 우사단의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할랄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은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둘과의 대화는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오랜 친구처럼 수다가 정겨웠습니다. “여기(할랄식당) 자주 왔거든요. 아프거나 하면 여기 음식 싸가서 집에서 먹고 그랬거든요. 사장님이랑 사모님이 너무 친절하게 해주셨가지고.…”
우사단에서 살았던 2년 동안 수민씨 마음 속에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날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집앞 케밥집 사장님이랑 눈이 마주치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케밥?’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케이”라고 했죠. 그러더니 ‘파이브 미닛’ 이러시더라구요. 그리고 5분 뒤 내려가서 케밥을 먹었죠.” 수민씨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공짜 케밥”이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눈짓과 마음이 통해 이웃이 되는 것은 우사단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사진을 찍어드렸더니 스스럼없이 집으로 초대하시더라구요. 저를 어떻게 믿으시고? 정말 그런 꾸밈없는 모습이 우사단 사람들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한국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던 따뜻함과 소박함, 수민씨가 우사단 사람들에게 푹 빠진 이유였습니다.
임수민 씨 단골집 사장님.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우사단 사람들을 찍었다
“제가 우사단에 산다고 하니깐 친구들이 ‘거기 무섭지 않아?’, ‘우울하지 않아’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우사단만큼 자유롭고 순수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없어요.”
사진 속 우사단 사람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피부 색이 다를 뿐 한국 골목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우사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원의 변두리, 무슬림들의 마을,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한 마을 따위의 이미지들이 그것입니다. 수민씨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민씨가 우사단 골목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서로를 감싸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웃고 있는 우사단 사람들1. (임수민 작가 작품).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웃고 있는 우사단 사람들2. (임수민 작가 작품).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재개발 소문, 이웃들이 떠났다
지금 우사단은 변화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 깨지기 전에 우사단 공동체가 먼저 깨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재개발 소문이 둘면서 수민씨의 이웃들은 하나 둘 우사단을 떠났습니다. “제가 사는 동안에도 재개발 이야기가 몇 차례 나왔어요. 그럴 때 마다 친구들이 떠났어요.” 재개발 소문이 돌면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권리금조차 못 챙기고 짐을 싸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렇게 재개발 소문이 돌다가 무산되면서 빈 집과 빈 가게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우사단이 사라진다는 것은 수민씨의 고향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민씨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으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때 저를 받아준 곳이고, 나 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를 받았던 곳이예요. 그래서 이곳이 없어지는 것은 상상을 못하겠어요.”
우사단 거리의 모습.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다는 믿음
수민씨는 사진으로 담았던 우사단 골목길을 바라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넸습니다. “우사단은 저한테 위로를 주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곳입니다. 여러분들도 우사단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것들이 같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재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우사단, 사람들은 예전처럼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사단 사람들, 2번째 이야기는 할랄 식당을 운영하는 이집트인 하메드씨가 전합니다.
기획·연출: 조성욱 피디 chopd@hani.co.kr 드론 촬영: 박성영, CG: 곽다인, 종합편집: 문석진
⊙ 시사다큐 원:피스 더보기 ☞ https://goo.gl/jBPKem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