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지음/현대문학(2017) 네이버에 재연재되고 있는 웹툰 ‘신과 함께’를 보다가 재미있는 댓글을 발견했다. 이승에서의 죄를 판단하여 저승의 벌이 구형되는 과정이 지옥여행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던 참이었다. “살아서는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는데, 죽은 뒤에는 신이 민사 형사 재판을 다 한다. 뭘 해줬길래, 뭐가 더 나아서 인간을 재판하는 걸까?”(ID 퀄튼경)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12월21일, 예언에 따라 신들이 강림했다. 신들은 지구 곳곳, 덥거나 춥거나 대도시이거나 오지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떼를 지어 강림하였는데 그들의 강림은 하루 내내 계속되었다. 그렇게 강림한 신은 놀랍게도 파충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들이 강림한 세상은 티라노사우루스가 떼를 지어 거리를 돌아다니는, 흡사 쥬라기공원의 촬영현장 같았다. 신은 공룡의 형상으로 온 세계에 편재(遍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무한의 책> 속의 이야기이다. 도축공장 직원인 한국인 이민자가 소멸 직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타임워프를 한다는 망상 같은 이야기를 무려 500여 페이지나 읽으면서 신의 형상이 파충류와 같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겨우 몇만년을 살아왔을 뿐인 인간보다는 수억년 전에 생겨나 무려 1억5천년 가량을 생존했던 공룡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이 인간보다는 지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사후에도 영혼이 있다는 신의 말씀에 의거할 때, 운석의 충돌 때문이건 기후 변화 때문이건 멸종한 이후에도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미래(그들의 입장에서)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걱정한 그들이 더 자격이 있다. 인간은 “신이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가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은 또한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야말로 스스로와 닮은 모습으로 신을 만들어냈다는 것을.”(314쪽) 신이 인간보다 파충류와 닮았다는 사실은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동물원이 폐쇄되었으며 동물을 함부로 죽여 먹이를 삼는 일이 사라졌다. 동물원 우리에 악어 같은 파충류를 가두어 놓고 구경하거나 동물을 죽여 각종 가공육을 만드는 일은 너무 불경하다. 하루종일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돼지가 도살되는 도축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매일 피비린내를 풍기며 돼지와 소를 살육해야 했던 인간들도 덩달아 그 작업에서 해방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계시를 전달하고, 문자메시지로 인간과 소통하며 이모티콘을 거의 신의 경지(신이니까, 당연히!)로 활용하는 신들은 근엄하거나 위력적이기보다는 세심하고 친절하다. 그들은 심판이나 천벌 같은 협박 없이 그저 인간 옆에 존재하면서, 곧 닥쳐올 행성의 충돌과 지구의 소멸을 걱정했다. 이미 한번 소멸을 겪은 파충류라면 더 절실하게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화학공장의 폐수방류를 고발하다 직업을 잃은 전직 기자, 광주의 악몽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둔 한국인 이민자 청년, 상품의 바코드를 찍으며 밤을 지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놀이공원의 동물탈 아르바이트생들이 구원의 메시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어 했을 테니까. 서영인 문학평론가
책 |
파충류의 얼굴을 한 신(神) |
김희선 지음/현대문학(2017) 네이버에 재연재되고 있는 웹툰 ‘신과 함께’를 보다가 재미있는 댓글을 발견했다. 이승에서의 죄를 판단하여 저승의 벌이 구형되는 과정이 지옥여행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던 참이었다. “살아서는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는데, 죽은 뒤에는 신이 민사 형사 재판을 다 한다. 뭘 해줬길래, 뭐가 더 나아서 인간을 재판하는 걸까?”(ID 퀄튼경)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12월21일, 예언에 따라 신들이 강림했다. 신들은 지구 곳곳, 덥거나 춥거나 대도시이거나 오지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떼를 지어 강림하였는데 그들의 강림은 하루 내내 계속되었다. 그렇게 강림한 신은 놀랍게도 파충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들이 강림한 세상은 티라노사우루스가 떼를 지어 거리를 돌아다니는, 흡사 쥬라기공원의 촬영현장 같았다. 신은 공룡의 형상으로 온 세계에 편재(遍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무한의 책> 속의 이야기이다. 도축공장 직원인 한국인 이민자가 소멸 직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타임워프를 한다는 망상 같은 이야기를 무려 500여 페이지나 읽으면서 신의 형상이 파충류와 같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겨우 몇만년을 살아왔을 뿐인 인간보다는 수억년 전에 생겨나 무려 1억5천년 가량을 생존했던 공룡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이 인간보다는 지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사후에도 영혼이 있다는 신의 말씀에 의거할 때, 운석의 충돌 때문이건 기후 변화 때문이건 멸종한 이후에도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미래(그들의 입장에서)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걱정한 그들이 더 자격이 있다. 인간은 “신이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가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은 또한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야말로 스스로와 닮은 모습으로 신을 만들어냈다는 것을.”(314쪽) 신이 인간보다 파충류와 닮았다는 사실은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동물원이 폐쇄되었으며 동물을 함부로 죽여 먹이를 삼는 일이 사라졌다. 동물원 우리에 악어 같은 파충류를 가두어 놓고 구경하거나 동물을 죽여 각종 가공육을 만드는 일은 너무 불경하다. 하루종일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돼지가 도살되는 도축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매일 피비린내를 풍기며 돼지와 소를 살육해야 했던 인간들도 덩달아 그 작업에서 해방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계시를 전달하고, 문자메시지로 인간과 소통하며 이모티콘을 거의 신의 경지(신이니까, 당연히!)로 활용하는 신들은 근엄하거나 위력적이기보다는 세심하고 친절하다. 그들은 심판이나 천벌 같은 협박 없이 그저 인간 옆에 존재하면서, 곧 닥쳐올 행성의 충돌과 지구의 소멸을 걱정했다. 이미 한번 소멸을 겪은 파충류라면 더 절실하게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화학공장의 폐수방류를 고발하다 직업을 잃은 전직 기자, 광주의 악몽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둔 한국인 이민자 청년, 상품의 바코드를 찍으며 밤을 지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놀이공원의 동물탈 아르바이트생들이 구원의 메시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어 했을 테니까.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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