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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1인가구가 아니다 |
박이은실의 지리산 책읽기
지난 한 해 집을 지었다. 내가 디자인한 집을 소망해보기도 했지만 집이 귀한 귀촌 지역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방 하나, 거실 겸 주방, 방과 거실로 각각 문이 난 화장실, 그리고 세탁실과 조그만 다용도실로 이뤄진 열여덟 평 남짓 되는 크기의 집이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오가며 이를 지켜본 이들이 종종 물어왔다. 방이 왜 하나밖에 없는가. 혼자 살 집인데 왜 이렇게 큰가.
정부의 정책 범주에 따르면 나는 ‘1인가구’다. 1인가구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구 형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1인가구 비율은 1980년 4.8%에서 2010년에는 23.9%로 급증했다. 2025년이 되면 33.1%로 증가해 한국사회의 지배적 가구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1인가구’를 인식하는 방식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1인가구는 빈곤 또는 노령인구와 연결되어 복지 지출 증가 문제로 귀결되거나, 새로운 소비시장과 연결되어 마케팅 대상으로 부각된다.
이런 통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인 남녀와 이들의 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 거주 양식으로 인식된다. 정부 정책 또한 여전히 이를 기준으로 입안되고 시행된다. 핵가족을 사회의 근간으로 인식해온 역사가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가운데 1인가구의 부상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 혹은 혁명이라 불러도 좋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반증한다.
이를 단순히 1인가구 수라는 통계수치로만 파악하는 데 그친다면 오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알에이치코리아)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하나의 주거단위를 몇 명이 차지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만 파악하는 분류 방식은 거기에 누가 사는지만을 드러내 줄 뿐 다양한 생활방식을 결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즉, 주거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양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변화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근대 이래 가장 근본적인 혁명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 버릴 수 있다.
드파울루가 지적하듯, 사람들은 일상사를 처리하는 것부터 아플 때나 노후에 돌봐줄 사람을 찾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안들을 해결하고 사회적 교류와 고독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맺고, 거주 형태를 선택해 살아간다.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적으로 기획하고 실험하고 실천하면서 말이다. 쉐어하우스, 공유주택 등과 같은 용어들이 더는 낯설지 않다. 이미 주류는 비핵가족, 즉, 1인 혹은 2인으로 구성된 가구다. 동시에 비혈연, 비혼인, 비연인 관계에 있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사람이 함께 사는 새로운 형태의 확대가족도 속속 등장한다. 주거단위를 공유하든 그렇지 않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는 방식 또한 이전과는 매우 달라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드파울루는 여기에서 ‘친구 관계’의 부상에 특히 주목한다. 내 경우에도 역시 지난 십수년 동안 단순히 ‘1인’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친구들이 한 생활공간에 혹은 가까이에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떠받쳐왔던 기혼/이성애/유자녀/중산층/남성 중심적인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청교도적 노동윤리에 입각한 복지제도나 남성생계부양자모델에 바탕한 이른바 ‘가족임금’ 제도 등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한 정부가, 특히 핵심 역할을 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이 문제를 잘 새겨보면 좋겠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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