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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4 19:18 수정 : 2016.12.30 10:16

양경언의 시동詩動 걸기

김승희 시인의 ‘제도’라는 시에서는 색칠공부를 하던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은 짧지만, 시로 말미암은 생각의 길을 트기 위해 전문을 싣는다.

“아이는 하루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 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칠이 나갈까 봐/ 두려워한다.// 누가 그 두려움을 가르쳤을까?/ 금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비도 꽃도 구름도 강물도/ 모두 색칠하는 선에 갇혀 있다.// 엄마, 엄마, 크레파스가 금 밖으로/ 나가면 안되지? 그렇지?/ 아이의 상냥한 눈동자엔 겁이 흐른다./ 온순하고 우아한 나의 아이는/ 책머리의 지시대로 종일 금 안에서만 칠한다.// 내가 엄마만 아니라면/ 나, 이렇게 말해 버리겠어./ 금을 뭉개버려라. 랄라. 선 밖으로 북북 칠해라./ 살아 있는 것이다. 랄라./ 선 밖으로 꿈틀꿈틀 뭉게뭉게 꽃피어나는 것이다./ 위반하는 것이다. 범하는 것이다. 랄라.// 나 그토록 제도를 증오했건만/ 엄마는 제도다./ 나를 묶었던 그것으로 너를 묶다니!/ 내가 그 여자이고 총독부다./ 엄마를 죽여라! 랄라.”(‘제도’ 전문)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그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라는 이름의 당위에 묶여 아이를 통제하려고만 했던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라고만 생각했던 ‘엄마’라는 이름이 실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관계,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고정된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엄마를 죽여라!”는, ‘아이’를 향해 주어진 제도 밖으로 훌쩍 넘어서라고 부추기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얽어왔던 관습, 편견 등과 같은 굴레를 내가 먼저 벗지 못한다면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스스로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겠다.

우리가 고정된 역할에 갇힌 채 주어진 제도에 순응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당장은 금 안에 색이 가지런히 채워진 그림을 얻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처럼 예상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매번 “금 밖으로” 나갈까 노심초사해야만 한다. 나 자신 녹초가 되든 말든, 새로운 그림이 나타날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의 생활을 익숙한 풍경이란 이름으로 지켜내는 일에 혈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시를 ‘엄마’와 ‘아이’에 대한 것으로만 읽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겠다. 이 시는 금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일이 ‘착하다’고만 반복해서 말하는 사회와, ‘온순하게 살라’는 대로 살아가는 일은 결국 싸울 줄 모르는 이의 방식일 뿐임을 깨달은 이가 팽팽하게 긴장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시다. 혹은, 내가 먼저 나의 프레임에 갇혀, 내가 금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나 스스로가 내 자신에게 낙인을 찍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 시, 나를 죽이고 만날 수 있는 내가 발휘할 힘을 믿어보라는 시다. 말하지 못하게 막는 사회에서 여태껏 분방하게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을 향해 더욱 격렬하게, ‘나’를 죽이고, ‘나’를 살리라고. ‘랄라!’ 하고 외쳐보라고.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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