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걷는사람, 2019) 어떤 기억은 참 이상하다. 내가 특별히 원하지 않는 자리까지 찾아와 불쑥 그 얼굴을 내미는 때가 부지기수다. 순간, 해당 기억과 거리를 둘 수 있다고 여겨왔던 나 자신의 현재는 헝클어지고 기억 속 나를 흔들었던 과거의 감정은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굴절되거나 변형된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시인 박서영(1968~2018)의 시를 읽다가 우리의 현재를 간간이 “방해”하는 기억의 속성에 대해, 아니 그보다 그런 기억을 자주 상대하는 이가 정작 자신이 겪어야 할 오늘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의 슬픔에 관하여/ 밥 먹다가 문득 생각났다// 우리는 왜 그곳에 갔던 것일까/ 안개 속에서 당신의 표정을 수집하는 건 쉽지 않았고/ 당신의 표정에 손가락을 대면/ 울음의 소용돌이에 손을 집어넣고 헤집는 것 같아// 아렸던 기억, 좋아해 그러나 이건 고백이 아니야//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시간은 자꾸 화를 냈고 기억을 왜곡했다/ 손가락 끝마다 감각은 되살아났고 숟가락엔 밥 대신/ 붉은 고깃살 같은 기억들이 한 점씩 올라와 있었다// 어떤 날엔 승냥이의 뱃속을 찢고/ 내가 화를 낼 순서가 맞았지만/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승냥이가 슬피 우는 날도 있었다/ 다 지난 일이다// 하루는 사랑한다며 웃는 승냥이의 입술을/ 하루는 헤어지자며 우는 승냥이의 눈동자를// 그래, 승냥이가 죽고 저 구름이 남았다/ 저 나무가 남았다, 꽃이 남았다/ 내 곁에 다 남아 있다// 그때 초원을 지나갔습니다/ 소나무를 만졌습니다// 기억들이 저녁 식사를 방해한다/ 방해해도 되겠습니까? 한번 물어보지도 않은 채// 방해가 되었습니까? 미안한 표정도 없이/ 숟가락마다 밥 대신 서러운 시간을 올려놓는다”(박서영, ‘방해가 되었습니까?’ 전문) 시인은 “밥 먹다가” 찾아온 “그 당시의 슬픔”이 어떤 정황에서 비롯됐는지 내내 뚜렷하지는 않을지언정 그때의 “감각”만큼은, 그러니까 내 속의 짐승을 공격하거나 달래거나 “슬피” 울게 두고플 정도의 통증으로 남은 “그 당시” “감각”만큼은 살면서 영영 사라지지 않고 ‘나’의 일부분으로 자리하리란 사실을 인정하면서 오늘을 견딘다. “그 당시의 슬픔”은 때때로 “저 구름”을, “저 나무”를, “꽃”을 보는 ‘나’의 시선을 좌우하는 방식으로 있을 것이다. ‘내’ 입으로 서러움을 얹은 숟가락을 가져가게 하여 꾹꾹 밥을 삼키도록 만들 것이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곁에 있던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시는 말을 건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고.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육성기록집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의 ‘제 일이지 않아요?’라는 글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던 장애진씨가 대학을 졸업해 응급구조사가 되는 길을 걸으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힘쓰는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불현듯 찾아온 과거의 기억이 일상을 방해한다고 여기지 않고, 일상을 ‘방문’한 것이라 여기면서 오늘을 결코 닳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태도를 애진씨로부터 배운다. 과거에 대한 성찰 하나 없이, 기억을 회피하기만 하면서 엉뚱한 말들을 내놓는 정치인들도 제발 좀 배웠으면 좋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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