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서] ‘고난의 길, 신념의 길’ 이희호 평전 75회
제6부 청와대 시간-9회 한일월드컵
2002년 3월9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국민 참여 경선이 제주에서 시작됐다. 이인제·노무현·한화갑·정동영·김중권·김근태·유종근이 경선에 참여했다. 당원과 일반 유권자가 50%씩 참여해 전국 시도 16곳을 돌며 투표를 했다. 민주당 경선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50일의 드라마’였다. 민주당의 대세를 장악한 이인제와 대세에 도전하는 노무현의 바람이 맞붙었다. 국민의 관심이 일제히 민주당 경선에 쏠렸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는 민주당의 근거지인 광주였다. 3월16일 광주에서 노무현은 이인제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노무현 돌풍이 거세게 불었다. 4월14일 전남 경선에서 노무현이 62%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자 이인제는 경선을 포기했다. 4월26일 서울 경선에서 노무현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끝까지 경선에 참여한 정동영은 2위를 기록했다. 노무현의 국민지지율은 60%에 이르렀다. 4월29일 노무현은 김대중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정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를 당당하게 평가하고 그렇게 소신껏 얘기하면서 후보로 뽑혀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민주당 경선이 이어지는 중에 김대중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4월9일 김대중은 무거운 몸으로 청와대에서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과 정상회담을 했다. “오후가 됐는데 남편의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그 전부터 며칠 동안 잘 먹지를 못했어요. 의료진이 부정맥이 있다고 바로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요.” 김대중은 할로넨과 만찬을 예정보다 한 시간 앞당겨 마치고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했다. “그날 남편이 재임 중 처음으로 입원했어요. 피로 누적과 위장 장애 때문에 6일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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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6일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함께 두 아들 물의에 대해 사과했던 김대중은 6월21일 둘째아들 김홍업까지 구속되자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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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잠 설친 김대중 건강악화 첫 입원
이희호는 정신적 충격으로 구토까지 ‘가석방’ 홍업 눈물로 억울 호소에도
“남편 화가 풀릴 때까지 오래 걸렸죠” 5월31일 한·일월드컵 개막 ‘전국 열광’
“대표팀 선전에 박수치며 마음 달랬죠” 월드컵 폐막 하루 전 서해교전 발발
7월 북한, 분단 이후 첫 ‘사과 전통문’
9월 부산아시안게임 첫 남북 동시입장 이희호는 기도로 나날을 보냈다. 정신적 충격으로 구토를 하기도 했다. “남편이 여러 차례 경고를 했지만 홍걸이가 따르지를 않았어요. 홍걸이는 미국 유학을 오래 해서 국내 사정을 잘 몰랐어요. 접근한 사업자를 너무 쉽게 믿었지요. 미국에서 귀국한 날 아버지 보기가 두려워서 청와대에 오지도 못했어요.” 홍걸은 5월18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한 달 뒤에는 둘째 홍업도 기업체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은 사과성명을 냈다.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는 모두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이희호는 마음을 추스르고 감옥의 홍걸과 홍업에게 편지를 썼다. 홍걸에게 쓴 편지에서 이희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홍걸에게.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으나 오히려 오늘 처해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그리고 잘못한 것을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사랑이 너를 더욱 크게 할 것이다. (…) 나도 너의 현재를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 잘못을 회개한다. 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곳에 있는 동안 <욥기> <시편> <잠언> <이사야서> 그리고 신약을 읽어라. 특히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가 모든 책이 다 없어진다 해도 꼭 하나 갖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욥기>라고 했다. 그것은 곤욕과 질곡을 겪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욥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네가 그곳 생활을 감사의 마음으로 잘 이겨내면 너의 앞날에 희망의 빛이 반드시 비칠 것이다. 2002년 5월19일 어머니.” 이희호는 감옥에서 당뇨로 고생하는 홍업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홍업에게. 너의 모습이 야위었다고 들었다. 이젠 정말 보고 싶구나. 그곳 생활이 어려움도 많고 마음 또한 괴롭겠지만 너의 생애에 귀한 체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억울하고 분한 생각도 들겠지만 하느님의 뜻은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환경이 바뀌든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앞날이 좋은 것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네가 처음보다는 안정되고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쁘다. 너는 마음이 착해서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다. (…) 조금도 염려하지 마라. 내일은 기쁨과 희망이 너를 맞이해줄 것이다. 범사에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2002년 9월19일 너를 사랑하는 어머니.” 홍업이 일시 가석방됐을 때 이희호는 홍업이 보고 싶어 청와대로 불렀다. “청와대에 온 홍업이가 ‘아버지에게 누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큰절을 하는데 다리가 굽어지지 않았어요. 그대로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울었지요. 그런데도 남편이 받아주지 않았어요. 화가 풀릴 때까지 오래 걸렸지요. 홍업이는 억울함을 하소연했어요. 검찰이 사업하는 홍업이 친구를 들볶아 진술을 받아낸 뒤 홍업이를 구속했는데, 그 친구가 2008년 2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 ‘검찰에 진술한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녹취록을 유언으로 남겼어요.” 두 아들이 구속돼 고통을 받던 시기에 이희호에게 힘을 준 사람이 둘째며느리였다. “둘째며느리가 성격이 밝고 씩씩해요. 믿음도 깊어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위안이 될 성경 구절을 찾아 나에게 알려주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느라 바쁘고 홍업이가 감옥에 있어서 힘들 텐데도 내색하지 않았어요. 자주 나를 찾아왔지요.” 홍걸은 6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홍업은 이듬해 9월 석방됐다. 이희호와 김대중에게는 괴로운 일이 겹쳤지만 나라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뻗쳤다. 2002년 5월31일 한·일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프랑스와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맞붙었다. ‘코리안 서포터즈’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세네갈이 프랑스를 1 대 0으로 물리쳤다. 이변의 시작이었다. 6월4일 부산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열렸다. 귀빈석에 있던 김대중은 유상철이 골을 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국은 폴란드를 2 대 0으로 꺾고, 월드컵 출전 역사상 처음으로 1승을 올렸다. 폴란드 대통령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가 김대중의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경기가 끝난 뒤 김대중은 한국대표팀을 만나 감독 거스 히딩크를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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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김대중과 이희호는 한·일 월드컵의 열광과 두 아들 구속 사태의 충격 속에 영욕의 시간을 보냈다. 그해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포르투갈전을 관람한 김대중과 이희호는 월드컵 출전 48년 만에 16강전 숙원을 이룬 한국 축구대표팀과 히딩크 감독을 격려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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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폐막 하루 전인 2002년 6월29일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남북 해군의 전투가 벌어졌다. 김대중과 이희호는 7월23일 전사·실종자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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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29일 남북 대표선수들이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회식 때 분단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동시입장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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