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정보제공 재개 자제하는 포털
참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2년 누리꾼 차아무개씨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동의도 없이 수사기관에 제공했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5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 승소하자, 네이버는 즉각 회원들의 ‘통신자료’를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에 제공해오던 것을 중단했다. 이어 카카오도 이를 중단했다. 하지만 케이티(KT)·에스케이텔레콤(SKT)·엘지유플러스(LGU+) 같은 통신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해왔다.
포털사는 누리꾼 움직임에 민감가입자 이탈 걱정없는 통신3사
아랑곳않고 통신자료 제공 계속 포털쪽 “이용자 선택권 유무 차이”
구글·텔레그램 등 피난처 많아
‘사이버 망명’ 사태 벌어질 게 뻔해 지난 10일 대법원이 네이버 손을 들어주자, 네이버와 카카오가 중단했던 통신자료 제공을 재개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네이버는 영장을 제시할 때만 정보를 내어주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고민중”이란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고민하는 동안에는 제공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재개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통신자료란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을 말한다. 가입신청서를 통해 수집된 것들이다. 정보·수사기관들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나 형 집행 등을 위한 자료 열람·제출을 요청받으면 응할 수 있다’는 전기통신사업법 규정을 근거로 영장이나 법원 허가서도 없이 통신사에 이런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 법 조문은 ‘응할 수 있다’고 돼 있으니, 업체로서는 응해도 되고, 응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통신사는 달라는 대로 다 퍼주고, 포털사는 가능하면 안 주려고 버티는 게 큰 차이다. 배경이 궁금할 만하다. 한 포털사 대표는 이 배경에 대해 “통신 가입자들은 정보인권을 침해당해도 옮겨갈 곳이 없지만, 포털 고객들은 갈 곳이 많다”고 짚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통신 가입자들은 정보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다. 경쟁 사업자들도 똑같이 하고 있어 피난을 가도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통신 이용을 중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 참여연대와 오픈넷 등이 ‘내 통신자료가 어디에 제공됐는지 알아보자’ 캠페인을 벌이면서 통신사들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통신 3사는 자료제공 중단 카드를 꺼내들지는 못한다. 사업 허가부터 주파수 할당까지 모든 면에서 정부 규제를 받는 통신 사업의 특성상 정보·수사기관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으니, 그냥 이용자들의 비난을 받고 말자는 게 속내일 수도 있다. 반면 포털은 다르다. 포털 회원들은 외국계 서비스인 구글과 텔레그램 등 정보·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피난처가 많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메신저·이메일·검색 등을 이용하다 정보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텔레그램의 메신저나 구글의 이메일·검색으로 옮겨갈 수 있다. 실제 텔레그램·지메일로의 ‘사이버 망명’은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 등 지도층에서도 많다. 애플은 고객 정보인권을 지키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애플을 지지하고 나서는 세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운신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반기별로 정보·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요청과 협조 처리 현황을 공개해왔던 까닭에 ‘몰래’ 제공하는 것도 어렵다. 어떤 이들은 “그까짓 통신자료가 뭐길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신사가 제공한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은 수사·정보기관들이 다른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열쇠 구실을 한다는 게 최근 드러났다. 통신자료 제공을 ‘그까짓 것’으로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다. 법마저 허술하니, 정보인권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첫 발은 당장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 요청을 하는 것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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