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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3일 알뜰폰 협회 관계자들이 국정기획자문위 앞에서 기본료 폐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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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동통신사 저가요금제 출시로
알뜰폰 ‘냄비 속 개구리’ 처지
“도매제공 길 열어달라” 요구에
이통사 “우리도 힘들다” 모르쇠
정부 내에서도 ”답 안보인다”
“초심대로 거듭나야 할 때”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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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3일 알뜰폰 협회 관계자들이 국정기획자문위 앞에서 기본료 폐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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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뜰폰 어렵다는 기사는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알뜰폰 사업자들이 언론에 대고 우는 소리를 하도 해서 자꾸 그런 기사가 나오겠지만, 부작용이 더 커요.”
한 대형 알뜰폰 업체 고위 임원 말이다. 그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알뜰폰을 더 지원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쓰는 기사라는 것은 안다”며 “하지만 이런 기사를 보고 알뜰폰 사업자가 망할까 봐 기존 가입자들이 알뜰폰으로 번호이동을 꺼리고, 심지어 기존 이동통신사로 이탈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알뜰폰 사업자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꾸준히 증가하던 알뜰폰(후불 기준) 가입자 수가 지난 5월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5월은 이동통신사들이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저가요금제’를 내놓기 시작한 시점이다.
케이티(KT)가 처음 저가요금제를 선보인 지난 5월에는 알뜰폰 가입자가 4천명 순감했고, 6월에는 6천명으로 감소 폭이 커졌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이 같은 요금제를 내놓은 7월에는 1만7천명, 8월에는 1만9천명이 줄었다. 이동통신사에서 알뜰폰으로 이동하는 숫자가 늘 더 많던 흐름이 이때부터 역전돼, 5월에는 알뜰폰에서 이동통신으로 옮겨간 숫자가 9200명 많았고, 7월에는 2만700명, 9월에는 1만8600명이 더 많았다.
후불 알뜰폰 업계의 선두주자인 씨제이(CJ)헬로비전의 경우 가입자가 몇 달째 계속 월평균 1만여명씩 줄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 추세라면 지난 4월 86만명에 이르던 가입자가 연말에는 80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 같다”며 “2011년 알뜰폰 등장 이후 이런 흐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동통신사의 2만~3만원대 저가요금제 구간에서 알뜰폰의 가격경쟁력이 이통사에 밀리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이동통신 알뜰 소비 욕구를 가진 이용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에스케이텔레콤이 저가요금제(T플랜 스몰)를 내놓기 전에는 씨제이헬로(더착한데이터 1.2G·월 3만6천원·이하 부가세 별도)의 월 요금이 2만5200원(선택약정할인 30% 적용)으로 에스케이텔레콤(밴드데이터 1.2G·월 3만6천원)의 2만7천원(선택약정할인 25% 적용)에 견줘 월 1800원 쌌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의 저가요금제(월 3만원)가 출시되면서 가격이 역전돼, 씨제이헬로 요금이 월 2700원 비싸졌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이통사들이 알뜰폰 사업자한테 넘겨주는 도매가격보다 싼 요금제를 내놔 알뜰폰 시장을 고사시키고 있다”며 “전형적인 이윤 압착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윤 압착’이란 원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 완성품 생산·판매도 하는 기업이 원료 가격과 완성품 가격 차이를 좁히거나 거꾸로 원료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해결책으로 “정부가 나서서 이통사들의 저가요금제도 도매가격으로 알뜰폰 사업자들이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알뜰폰 사업자들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앞서 에스케이텔레콤은 2014년 데이터 중심(음성통화·문자메시지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할 때 정부에 인가 심사를 신청하는 단계부터 ‘3개월 내에 도매 제공(을) 준비(하겠다)’를 약속했으나, 최근 저가요금제를 내놓을 때는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정부도 저가요금제가 통신시장의 경쟁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았다. 민원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최근 알뜰폰 사업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정부가 알뜰폰 사업자들의 ‘우는 소리’를 듣다못해 뒤늦게 나서긴 했지만, 이통사들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가 ‘알뜰폰 사업자’로 이름 지어질 때부터 예견됐다. 이동통신 요금과 가격 차이를 따먹는 알뜰폰 사업모델로는 이통사들이 도매가격을 책정할 때마다 목을 맬 수밖에 없고, 이런 사업모델로는 지속가능한 생존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동통신 3사 모두 알뜰폰 자회사를 두고 있다. 알뜰폰 사업자 쪽에서 보면, 이동통신 3사 모두 원료를 독점 공급하면서 완성품도 생산·판매하는 구조이다.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란 기존 이통사의 네트워크를 빌려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애초 목적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와 부가서비스를 가진 업체가 이동통신망을 빌려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취지로 도입됐다. 기존 콘텐츠·서비스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버무린 상품을 내놔, 기존 고객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가격 차이를 따먹는 사업모델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점을 정부도 알지만, 나서서 정리하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요금인하 요구를 상쇄시키는 수단으로 ‘알뜰폰’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동통신 요금인하 요구가 거세질 때마다 “알뜰폰을 활성화해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가 나게 하겠다”고 외쳐온 것이다. 대신 정기적으로 이동통신 사업자를 압박해 도매 대가를 낮추고, 전파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등의 ‘당근’을 줘왔다.
정부의 도매 대가 인하 권고가 늘 통하지는 않는다. 최근 과기정통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비 인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이통사들에 저가요금제 출시 등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정부가 이통사에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통사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기정통부 내부에서 “솔직히 알뜰폰 시장은 (정책적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지금이 바로 알뜰폰 사업자·시장이 탈바꿈할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저가요금제 도매제공 문제는 어떻게 풀었다고 치자. 그다음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전문가들 말을 들어보면, 어렵더라도 알뜰폰 브랜드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처음 이 시장을 만들 때 생각했던, 진정한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씨제이헬로는 싼 요금보다는 씨제이가 강점을 가진 영화·드라마·음악·예능·외식·유통 등 콘텐츠를 중심으로 요금제를 새로 짜고, 신세계는 백화점 마니아들의 수요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백화점 손님을 늘리는 쪽으로 요금제를 재설계하는 식이다. 애초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는 이런 개념으로 등장했고, 외국에서는 이에 집중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언더그라운드 가수 음반 마니아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영국의 버진텔레콤이 대표적이다.
새 이동통신(5G) 시대에는 요금이나 단말기 브랜드보다 서비스나 콘텐츠를 보고 사업자와 단말기 등을 고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예컨대, 영화 마니아들은 넷플릭스 영화를 얼마나 저렴하고 쉽게 볼 수 있는지, 게임 마니아들은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을 얼마나 잘 즐길 수 있는지 등을 보고 이동통신 사업자나 단말기를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 이미 엘지유플러스(LGU+)는 인터넷텔레비전(IPTV) 가입자를 늘리는 수단으로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문구업체인 모닝글로리가 최근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30여개에 이르는 알뜰폰 사업자 가운데 선불카드 판매에 집중하는 소규모 업체와 이동통신 자회사를 뺀, 후불 사업자는 4~5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거나 중견기업 수준이다. 정부의 분명한 메시지만 있으면, 충분히 스스로 탈바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씨제이헬로는 ‘제4 이동통신 사업자’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어렵다고 울어댈 힘으로 거듭나기에 도전하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용기를 기대해본다. 그때는 “이통사가 알뜰폰 자회사를 거느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경쟁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부분을 정리해달라”는 요구도 당당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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