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8.26 10:29 수정 : 2018.08.26 11:32

식물과 함께 사는 걸 사소하게 여겼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친구도 모두 성격과 성질이 다르듯 식물도 종류에 따라 다른 돌봄이 필요하다. 반려식물은 나에게도 좋지만 나도 그들에게 좋은 동거인이 돼야 하겠지.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반려식물을 들이기 전에

식물과 함께 사는 걸 사소하게 여겼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친구도 모두 성격과 성질이 다르듯 식물도 종류에 따라 다른 돌봄이 필요하다. 반려식물은 나에게도 좋지만 나도 그들에게 좋은 동거인이 돼야 하겠지. 게티이미지뱅크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도 기다립니다. fkcool@hani.co.kr로 보내주세요.

좋아해서 전체 시리즈(6개 시즌)를 최소 다섯번은 돌려본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살아 있는 무언가와 함께 살지 못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식물이든 말이다. 캐리는 남자친구였던 에이든과 동거를 하게 되고, 에이든은 함께 살던 반려견과 새 가족인 반려식물을 캐리의 집으로 데려온다. 결국 지난한 감정 끝에 캐리는 에이든과 결별하게 되고 그 시간 동안 말라붙어 죽어버린 식물 역시 캐리의 손에서 쿨하게 1층 쓰레기통으로 떨어진다. 역시 자기 집에는 살아 있는 어떤 것도 들일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베란다부터 거실까지 무슨 식물원처럼 여러 종류의 식물이 한가득이었다. 내 방 책상에도 늘 식물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발에 차이는 게 화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에 그 모든 식물을 돌보고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고 꺾꽂이를 했다. 쉬운 거겠지. 쉽다고 생각했다. 나는 식물은 그냥 물만 적당히 잘 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캐리가 그랬듯, 물론 나는 쿨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됐다.

야자, 고무고무, 스파게티…

가장 처음 식물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한 건 작년이었다. 그냥 혼자 살아 적적하니까, 좁은 집에 두면 그냥 보기에 좋으니까. 오로지 나를 위한 이유로 데려왔다. 인터넷 쇼핑에서 식물들을 구경하다 왠지 테이블야자가 마음에 들었다. 더운 나라를 좋아하는 나는 왠지 모르게 야자라는 이름에 호감이 갔다. 다음날 싱싱한 테이블야자가 화분 분갈이까지 된 상태로 배송됐고 난 ‘야자’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매일 출근할 때 인사하고 예쁜 말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물도 꼬박꼬박 흠뻑 주라고 해서 물뿌리개로 겉흙이 완전히 젖을 때까지 뿌려줬다. 그러나 몇주가 지나자 야자는 점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이유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미세먼지가 심해선가? 요즘 날이 추워서인가? 물이 많아서인가? 결국 야자는 한 잎씩, 한 잎씩, 제 몸에 붙어 있던 잎들을 떨궈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야자는 결국 죽고 말았다.

생각보다 상심이 너무 컸다.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식물 하나 이렇게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여버렸는데, 나중에 반려견이나 반려묘 같은 동물과 살 수나 있을까. 원인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잠잠히 내 이야기를 수화기 너머로 듣더니, 물이 부족했다고 말씀했다. 괜히 작은 화분과 작은 몸집의 야자가 썩을까 봐 물을 ‘아주 흠뻑’ 주지는 않았는데, 알고 보니 실은 물을 너무 부족하게 준 거였다. 통상 겉흙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을 준다는 건, 화분에 물뿌리개가 아니라 마치 수돗물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정도로 물을 흠뻑 주어 화분 아래 물구멍으로 물이 쫄쫄쫄 어느 정도는 빠져나오는 걸 말하는 거였다. 괜히 겁을 집어먹고 물뿌리개로 흠뻑 준다고 열심히 뿌려댔지만 진짜로 물을 준 게 아니었던 셈이었다. 특히나 물을 자주 먹어야 하는 테이블야자에는 최악의 물 주기였고, 그렇게 야자는 물이 부족해 말라 죽어버렸다.

얼마 뒤 집으로 데려온 고무나무에 ‘고무고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엄마가 말해준 것처럼 물도 넉넉히 흠뻑흠뻑 주었다. 그러나 이 고무나무마저도 몇달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그 크고 빤질빤질거리던 고무나무 잎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는 걸 보며 또 한번 상심에 빠졌다. 나도 정말 캐리처럼 식물을, 아니 생명을 집에 들이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렇게 상심한 채 살던 어느 날,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앞에 세워진 트럭 한대를 발견했다. 트럭에는 여러 식물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식물을 판매하는 선생님께 잘 죽지 않는 식물이 무어냐고 여쭤봤더니 돌아온 답은 고무나무였다. 난 정말 안 될 놈인가. 그래. 그래도 세번의 기회를 나에게 주자. 이번에도 죽이면 정말 나는 자격이 없다, 그렇게 다짐하고서 공기정화 식물이라는 스파티필룸과 황금죽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데려왔다.

죽은 지 한참 된 고무나무엔
축축한 흙이 붙어 있었다
물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과습이 원인이었다, 내가 죽였다

혼자라 적적해서, 보기 좋아서
반려식물을 들이기 전에
먼저 좋은 ‘동거인’이 되자
그들도 생명이니까

일회용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팔리던 거라 분갈이를 해줘야 했다. 어쩌면 데려오자마자 죽일 수도 있는 참이라 아주 꼼꼼하게 분갈이에 대한 공부를 했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부모님께도 여쭤보고 만반의 준비를 거쳐 분갈이를 하기 시작했다. 신문지를 넓게 깔고 뿌리로 추정되는 주변의 흙을 살살살 퍼낸다. 그다음 뿌리를 단단히 잡고 살짝 흔들면 뿌리가 어느 정도 흙을 머금은 채 뽑혀 나온다. 그 뿌리를 원래 흙과 함께 옮겨 심을 화분에 담고 흙을 가득 채우고 단단히 마무리한다.

그런데 죽은 지 한참 된 고무나무를 화분에서 덜어내는데, 아니 세상에, 고무나무 뿌리의 흙이 아직도 축축한 게 아닌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무나무는 맞바람 치지 않는 원룸에 살면서 통풍이 잘되지 않자 흙이 마르지 않은 채 과습해 죽어버린 거였다. 매번 얼굴만 들이밀고 인사만 하고 예쁜 말만 해주고 죽으면 마음만 아파했지, 제대로 이 식물에 대한 공부를 했었나 성찰하기 시작했다. 테이블야자든 고무나무든 모든 식물은 종류에 따라 물이든 온도든 살아가는 조건이 다른 법인데 데려오기 전에 너무 공부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사람이 그렇듯 식물도 혼자서 알아서 그냥 크는 게 아닌데.

그렇게 번쩍 든 정신으로 몇개월간 분갈이에 성공한 스파티필룸과 황금죽을 공부하며 더 자주 들여다보고 체크하고 정성을 기울였더니, 스파티필룸(‘스파게티’라 이름 지었다)은 새잎들이 막 나더니 자기 화분보다도 커져 더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 할 행복한 상황이 돼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과습보단 조금 지켜보며 주는 게 좋다던데, 약간 추욱 늘어져 있다가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줄기와 잎들이 탱탱하고 푸르게 서는 걸 보면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다. 황금죽(얘 이름은 ‘리조또’다)도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너무 잘 자라는 걸 보고 나도 자신감을 얻었다. 생명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혼자 사는 이 좁은 집에 나 말고도 하루를 제 나름대로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이 있구나.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그들은 언제나 반갑고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됐다. 나 말고는 모든 게 멈춰 있고 죽어 있는 것들 사이에서 스파게티와 리조또는 살아 매일 변한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홍콩야자 ‘라자냐’도 친구들 못지않게 적응하며 쑥쑥 크고 있다.

각각의 돌봄이 필요하다

식물과 함께 사는 걸 사소하게 여겼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물론 식물은 보기에 좋고 나에게 감정적인 안정을 주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 생명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친구도 모두 성격과 성질이 다르듯 식물도 종류에 따라 다른 돌봄이 필요하다. 흔히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면, 어떤 이들은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 맞아, 나는 생명과 함께할 수 없나 봐. 난 다 죽이나 봐.”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얼마나 그 생명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했을까. 물론 나도 아직까지 한참 부족하지만 두번의 고비를 맞으며 시행착오를 거쳐 식물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됐다. 반려식물은 나에게도 좋지만 나도 그들에게 좋은 동거인이 돼야 하겠지.

혜화붙박이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이런, 홀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