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6 10:29
수정 : 2018.09.16 14:49
[토요판]이런, 홀로!?
가을 캠핑의 매력
취미 없던 내게 온 캠핑이란 취미
짐 줄여 떠나는 백패킹 캠핑 즐겨
어린 시절 부모님과 추억 떠올리며
마음맞는 사람과 함께 비우는 시간
꿀날씨에도 새벽엔 추운 텐트 안
도톰한 침낭과 여분 담요는 필수
캠핑지 주변 특산물 먹는 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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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볍게 떠나 낯선 곳에 텐트 치고 책 한권 꺼내 읽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혜화붙박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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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조금씩 지면서 하늘이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변해간다. 약간 서늘하면서 고소한 가을 냄새가 난다. 챙겨 온 조그마한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혁오의 ‘필즈 라이크 롤러’가 흘러나오고, 텐트 위에 걸어둔 가스 랜턴 심지가 타닥타닥 예쁜 빛을 내며 타들어가고 있다. 간단히 만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먹으면서 혼자 생각에 빠지거나 혹은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도시보다 빨리 떨어진 해와 와인에 약간 졸리다. 취기도 살짝 돈다. 아까 낮에 맥주를 마시고 햇볕을 받으며 낮잠도 잤지만, 조금 쌀쌀한 텐트 안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가 책을 몇장 읽다 까무룩 잠든다.
나는 원래 취미가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취미’ 칸에도 남들이 다 쓰는 것만 쓰며 크다 자기소개서에서조차 ‘취미’ 칸이 존재하는 걸 보고 좌절했다. 아니, 취미 가질 여유도 없는 나라에서 취미는 무슨 왜 맨날 물어 대체~.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봐도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넷플릭스 보기? 자전거 타기?
알고 보니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 다 큰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취미가 없다.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다른 걸 할 힘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취미 없기로 유명하던 내가 작년부터 새로운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캠핑! 그중에서도 차로 떠나는 캠핑보다는 백패킹으로 떠나는 캠핑을 선호한다. 사실 백패킹 자체는 몇년 전 길게 떠난 유럽 여행과 동남아 여행으로 이미 익숙하다. 얼핏 내 몸보다 커 보이는 40ℓ, 50ℓ 가방을 메고 한달 이상을 다녀보니 1박2일 캠핑 짐 정도야.
새벽에 벌떡벌떡 깨며 쌓은 노하우
실은 캠핑과의 인연이 작년에 갑작스레 생긴 건 아니다. 정말 유행은 돌고 도는 건지 최근 한창 캠핑이니 아웃도어니 이런 것들이 유행하기 십몇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여름만 되면 이리저리로 캠핑을 다니셨다. 산으로 계곡으로. 물론 가급적 간소화된 지금의 내 캠핑과 달리 가족 차에 실린 4인용 텐트와 온갖 해먹을 음식들, 이를 테면 된장과 김치 같은 것들까지 챙겨 산속 어딘가에서 또 계곡 근처에서 호화롭게 1박을 하곤 했다. 캠핑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제대로 씻지 못한다거나 때론 제대로 된 화장실에도 가기 어렵다거나 이런 문제들에는 진즉에 몸이 적응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들어서 하게 된 캠핑에도 좀더 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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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은 매번 보던 뻔한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 이벤트다. 캠핑 사이트에 밤이 오면 가스 랜턴과 모닥불이 예쁜 빛을 내며 타오른다. 혜화붙박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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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가족 외에도 주변의 친구들, 애인까지 캠핑을 좋아해 무리 없이 나다니지만 꽤 많은 사람에게 아직 캠핑은 생소한 활동인가 보다. 캠핑이 무어가 좋냐는 물음에 아주 추상적이고도 뻔한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엄청난 인구밀도와 빽빽한 건물을 벗어나 트인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차가 아닌 백패킹을 할 땐 대부분의 경우에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기까지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이 시간 동안 생각이 많아지고, 또 차분하게 정리되다 비워지기도 한다. 직업 특성상 가능한 다양한 환경을 접하며 인사이트를 얻어야 하는 나에게 캠핑은 매번 보던 뻔한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 이벤트가 돼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된다. 멀리 떠나야 하는 여행에 비해 서울 안에서도, 조금만 떨어진 근교에서도 충분히 좋은 캠핑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아주 큰 장점이다. 혼자 가는 캠핑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둘이 간다면 동행자와 서로에게 더 집중하며 평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떤 캠핑 사이트는 인터넷이 잘 안 터지기도 하니까. 평소 못 읽었던 책도 한권 들고 가 마음 놓고 읽곤 한다. 서울에서 조금 멀리 떠나는 캠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지역에서 유명하거나 꼭 먹어야 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캠핑에서 먹을 게 보통 그 여행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만약 바다 근처라면 회센터에 가 회와 해산물을 떠 온다. 그 지역의 특색 음식을 사서 해먹거나 포장하는 게 캠핑의 또다른 매력이다.
차보단 걸어가는 백패킹을 선호하다 보니 짐을 적게 싸는 데에는 도가 터버렸다. “무조건 가볍게.” 반드시 필요한 텐트나 조리도구, 침낭 외에는 무조건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야 한다. 물론 낮에는 생활하기에 더운 것 같아도 보통의 캠핑 사이트들은 산속이나 외진 나무 그늘 속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아 요즘 같은 캠핑 꿀날씨에도 새벽에는 자다 깰 만큼 추울 수 있다. 도톰한 침낭과 여분 담요 등 자는 물품에는 절대 짐 공간을 아껴선 안 된다. 자다가 몇번이고 추워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여럿 겪어보고 얻은 뼈아픈 깨달음이다. 차가 있는 캠핑일 때야 그늘막 텐트도 가져가고 큰 테이블도 가져가고 의자도 챙기기도 하지만, 백패킹은 중간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싫으면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한다. 물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는 언제나 필수다.
저렴한 장비부터 차곡차곡 질러보자
캠핑이 취미라고 하면 캠핑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 던지는 질문이 “그럼 장비는 어떻게 해? 다 사? 비싸잖아”. 물론 다 샀다. 어디서 주워 와서 캠핑을 떠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도 한번에 그렇게 큰돈을 들여가며 모든 장비를 사진 않았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래서 당장 반드시 필요한 물건부터 틈틈이 사 놓는다. 예를 들어 텐트를 사고 처음엔 집에 돌아다니는 이불이나 담요를 들고 가다가 돈이 생기면 침낭을 산다. 그 외 캠핑 도구들은 요즘 대형마트(이마트가 캠핑 물품을 잘 모아 판다)나 다이소에 가서 아주 저렴하게도 살 수 있다. 꼭 대형마트가 아니어도 운이 좋으면 집 근처에 캠핑 전용 매장들이 있어 할인할 때 살 수 있다. 이런 걸 잘 노려 저렴한 장비부터 차곡차곡 쟁여 놓으면 된다. 다른 활동들처럼 캠핑도 장비빨이겠지만 첫술에 어떻게 배부르겠나.
지난 7월부터 52시간 근무가 시작되고 찬성하는 기사도 염려하는 기사도 쏟아져 나오지만 어쨌거나 점점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퇴근 후 취미를 찾거나 제2의 일을 찾고 평일의 에너지를 아껴 주말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사람이 늘어간다. 물론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지만 요즘 새로운 취미를 고민하고 있다면, 또 새로운 영감과 새로운 풍경이 필요하다면 이번 주말에 가까운 곳에라도 캠핑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장비가 조금 부족해도 먹고 싸고 자는 게 조금은 불편해도 캠핑 사이트를 잘만 정한다면 정말 행복하고 충만한 하루 이틀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소소한 캠핑 팁>
*낮엔 덥고 선선한 날씨지만 새벽에는 정말 추울 수 있어요. 도톰한 침낭과 두꺼운 겉옷을 들고 가셔야 합니다. 꼭!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캠핑 요리로는 소시지구이, 감바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된장찌개, 라면 등을 추천합니다. 모든 재료는 손질을 미리 해 물 또는 소스만 넣고 끓이고 볶을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아요.
*반드시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서 만들어낸 쓰레기를 따로 가져와 분리수거 해야 합니다. 절대 캠핑 사이트에 무단으로 쓰레기 투척 하지 마세요!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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