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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2 11:04 수정 : 2018.09.22 18:53

[토요판] 이런, 홀로!?
스스로를 대접하기
설거지 귀찮아도 반찬통째 놓고
밥 먹지 않는 ‘작은 허영’
내가 나에게 더 잘해주는 기분

와인은 알맞은 와인잔에
수건은 돌잔치 기념용 아닌
색이 같은 호텔 수건 마련

제철 과일 먹고 식물 키우며
나를 사랑해주는 일상

내가 나를 대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위해줄 사람이 없다. 반찬통째 놓고 먹지 않고 음식을 그릇에 덜어 보기 좋게 두고 먹는다는 건 내게 곧 내가 나에게 잘 대해준다는 기본 척도다. 게티이미지뱅크
절대 반찬통째 두고 밥을 먹지 않는다. 이것은 원칙이자 철칙이자 법칙이다.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한 어겨선 안 된다는 뜻이다. 나 혼자 사는 이 집에서의 제1의 규제다.

사실 뭐가 대수랴. 진미채볶음, 김치, 장조림 따위가 담긴 반찬통 꺼내 밥 먹어도 아무 문제 없다. 가족들과 같이 살던 집에선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먹었다. 그런데 혼자 지내게 되니,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이 집에서 내가 나를 대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위해줄 사람이 없다. 반찬통째 먹지 않고 음식을 그릇에 덜어 보기 좋게 두고 먹는다는 건 내게 곧 내가 나에게 잘 대해준다는 기본 척도다. 이렇게 차려 먹으면 설거지거리가 더 생기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찬통 한두개 꺼내놓고 부엌 구석에 서서 후딱 밥 먹다가 문득 ‘아, 초라하다’는 자각은 가장 피하고 싶은 기분이다.

반찬통째 두고 식사하지 않기

올해 독립하기 전에 주변에선 다들 걱정했다. “밥이나 제대로 해 먹겠어?” “맨날 술 마시고 집은 개판인 거 아니냐?” 요즘엔 가족부터 절친까지 건강한 독립생활을 응원해주고 있다. 비결은 내가 나에게 잘해주는 것. 테이블에 식기를 빛나게 해줄 작은 테이블보를 깔고, 그 위에 꼭 맞게 반찬을 옮겨 담은 그릇을 둔다. 색색의 수저받침도 구비해둔 탓에 기분에 따라 꺼내 쓴다. 인스타그램에 ‘#혼밥 #맛있음’이라고 태그를 달아 자신 있게 올릴 만한 사진을 찍는다. 정작 올린 적은 없지만, 에스엔에스(SNS)용으로 찍고 올려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혼자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들어 그 위에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려 인스타 느낌 듬뿍 나게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메신저로 보냈다. 돌아온 답장. ‘너 혼자 살더니 허세가 심해졌다? ㅋㅋㅋ.’ 좀 허세나 허영 같으면 어떤가. 즐거운 독립생활엔 가족들과 함께 살 때 겸연쩍어 누리지 못한 ‘작은 허영’이 곳곳에 필요하다.

자신을 대접한다는 건, ‘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해도 괜찮아, 난 뭘 해도 가치 있어’ 같은 생각은 진실도 아닐뿐더러 도움도 안 된다. 무조건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 집에서의 행동강령 1번은 반찬통째 두고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고, 최소한의 기본 방침은 단정한 살림살이를 유지해나가는 일이다. 허영은 그다음이다. 쓰레기로 가득한데 집에 향수를 뿌릴 순 없는 노릇이다.

캥거루로 살다가 독립한 1인가구로서 내가 곧장 실감한 것 가운데 하나는, 살아 있다는 건 곧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분리수거 요일을 몇번 놓치고 나면 재활용품이 수북이 쌓여 집이 좁아지고,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버려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날짜별로 해야 할 일들의 목차를 만들어 하나씩 ‘클리어’해나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살림의 효율화’에서 기쁨을 얻기도 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전분이나 튀김가루를 그냥 버리는 대신 기름기 있는 설거지를 할 때 쓴다든지,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났을 때 딱 맞춰 세탁기가 띠리링 소리를 내며 탈수를 마쳐 바로 빨래를 널 수 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독립 이전에 상상도 못 한 1인가구의 행복이었다. 가스레인지에 절어 있는 오래된 기름때를 쓱 문질러 쉽게 벗겨낼 수 있는 영국산 세제를 알게 되자마자, 이는 영국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환호했다. 살림에서 기쁨을 느끼다니. 기존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독립의 장점이란 마음대로 친구를 초대해 왁자한 파티를 연다거나, 늦게 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파티와 음주 뒤엔 이곳저곳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쓸쓸한 내 마음만이 남았다. 내가 나를 잘 대해주는 게 맞나? 아닌 것 같았다.

살림을 그럭저럭 내 손아귀에 두고 운용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허영의 리스트를 살짝 공개하자면 이렇다. 와인이 생길 때 아무 머그잔에 마시는 게 아니라 걸맞은 와인잔에 마신다. 이왕이면 과일치즈도 함께 두고서. 바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알코올로 눅이는 것과 동시에 어느덧 밤에 은은한 불빛을 밝힌 채 혼자 와인을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나에게 취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다. 어느 졸업식이나 돌잔치를 기념하는 수건이 아닌 색이 똑같은 호텔 수건을 마련해 차곡차곡 개켜둔다, 변기에 핑크색 물때가 낄 때까지 방치하지 않고 자주 청소한다, 요즘처럼 드물게 귀한 시원한 날씨엔 꼭 시간을 내 천변에서 밤 산책을 한다, 때마다 자두나 무화과 같은 제철 과일을 먹는다, 화분에 제때 물을 주며 커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것들 가운데 지키지 않으면 생활 유지가 안 된다 싶은 건 전혀 없다. 좋을 땐 뭐든 좋은 법이다. 안 좋을 때 이런 것들이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다.

‘텅장’을 보게 될 수도 있지만

칭찬받거나 인정받는 찰나에는 굳건하리라 생각했던 자신감 같은 건 사소한 외부의 충격에 쉽게 바스러진다. 바깥에서 겪은 힘듦과 버거움을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누군가에게 기대 위로받으려고 했다.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알아달라고, 보듬어달라고 말이다. 관계에서 구원을 얻으려 했다. 내가 나에게 잘해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저녁마다 약속을 줄줄이 잡아 술 마시는 걸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식으로나마 이해받고 싶었다. 이젠 어디 나와 있어도 집이 그리울 지경이 됐다. 때로는 집이 살아 있는 유기체 같다. 그 안에서 밥 먹고, 쓸고 닦았으며 오롯이 나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서다. 책에서나 영화에서나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나를 사랑해준다는데, 나를 사랑하는 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매일 밤 생각하고 자는 건 정답이 아닌 것 같다. 다만 스스로 밥을 지어 예쁘게 차리고,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늘 단정한 집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사랑한다’는 개념보다 쉽다. 나의 외로움과 지질함을 받아줄 상대를 찾아 쏘다니기보다, 이편이 일상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물론 예상 가능한 부작용도 있다. 작은 허영을 위한 티끌 같은, 때로는 먼지 뭉치만한 지출이 쌓여 ‘텅장’(텅빈 통장)이 되는 걸 볼 때다. (돈이 들지 않는 허영부터 누리는 것을 먼저 추천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땐 고작해야 계절에 맞는 구두와 새 옷을 마련하는 데 사치품을 소비했지만, 독립생활의 소비 스펙트럼엔 한계가 없다.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식탁이 아닌, 맛있고 괜찮은 식탁을 차리고 싶어 신선식품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건 기본이다. 빵에 발라 먹는 1인용 버터도 프랑스 것이 맛있더라. 마트에서 맛있는 과일 고르는 법을 모른다? 비싼 게 맛있다. 진리다. 집 안의 포인트가 되면서도 나의 허영을 충족해줄 인테리어 아이템은 왜 그리 많은지. 바람이 살짝 불 때 청아한 종소리를 낼 풍경(風磬)을 왜 갑자기 베란다에 걸고 싶은지 나조차 모르겠다. (엄마랑 살 때라면, ‘이딴 쓰레기를 돈 주고 사?’라는 말을 들을까 봐 엄두도 못 냈을 거다.) 나를 위하는 데 꼭 소비가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지금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쓰고 있지 않나. 이 글로 받은 원고료로 단출한 살림에 작은 허영을 보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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