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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30 09:24 수정 : 2018.10.01 15:32

혼자 살면서 몸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적당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변을 뛰다 보면 잡념은 서서히 사라진다. 바삐 움직이는 두 다리와 거칠게 두근거리는 심장, 나의 몸만 느껴지는 그 시간이 참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몸과 영혼 두루 가꾸기

혼자 살면서 몸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적당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변을 뛰다 보면 잡념은 서서히 사라진다. 바삐 움직이는 두 다리와 거칠게 두근거리는 심장, 나의 몸만 느껴지는 그 시간이 참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 서른이 가까워 올 때 세대주가 됐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있는 ㄱ시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ㅅ시에 두번째 직장을 얻게 된 덕분이었다. “딸, 굶어 죽는 거 아니니?” “쟤가 사람 사는 꼴을 갖추고 지낼 수나 있을까 몰라.” 신이 나서 부리나케 집을 구하고 번갯불에 콩 굽듯 이사를 마친 딸의 생존을,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그 우려들은 효력이 없어 보였다. 가족을 떠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고등학교 3년을 ㅇ시에서 보냈다. 스물두살에는 역시 학생용 공동주택이긴 했지만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에서 제법 건강하게 1년을 지냈다. 내게는 그 시간 동안 살아남은 기억이 있었다.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다고 자신만만해했던 건 그래서였다.

독립은 몸까지 홀로 서는 것

내가 번 돈으로 내 이름을 건 공간에서 내 생활을 꾸려가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이었다. 독립기념일은 2017년 11월6일. 대출금으로 내가 빌린 것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편리, 그리고 자유였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가 생기는 데서 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며칠간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자유 앞에 나는 맹세 같은 결심을 했다. 모든 여유를 오로지 나를 위하는 데 쓰기로 말이다. 첫번째 관리비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전에 이것저것 많이도 벌였다. 중국어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책 읽는 모임에 가입하고, 수시로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글을 썼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시나브로 취하고 있었다.

지성과 감성에만 열중한 채
내 몸에는 소홀했던 지난 시간
혼자 살아보니 알게 돼

달리기하며 내 몸과 화해
노력한 만큼 결과로 돌려주는
육체는 정직하고 투명해

영혼과 육체 고루 잘 보살피고
돌보기 위해 애쓰는 하루하루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

혼자 사는 게 마냥 쉬울 리 없었다. 새로운 방식의 삶은 내가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때를 맞춰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다. 생필품과 식재료의 종과 양, 나의 잔고를 헤아려 장을 봐야 했다.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해야 했으며, 아픈 몸도 직접 돌봐야만 했다. 모든 것이 당연했지만, 거의 처음이기에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학습이나 연습, 감상이 생활보다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내 몸 하나를 건사해내는 일이야말로 생활의 뿌리였고 어쩌면 전부였다. 독립(獨立)은 말 그대로 홀로 서기, 나의 육체를 돌보아 일으켜 세우는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엄마 아빠에게 위탁해왔던가. 나 자신을 어찌나 당신들께 의탁해왔던가. 음식을 씹고 젖은 빨래를 털 때마다 입으로 또 손끝으로 불효 아닌 불효가 사무쳐왔다. 유난히 ‘몸’으로 다가오는 깨달음이었다.

문득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영혼을 가꾸는 데만 치중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잊기라도 한 것처럼. 정해진 대로 또 틈틈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 공부를 했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부단히 흡수해 그럴싸한 취향을 주조해왔다. 신과 종교에 의지함으로써 내 중심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니 그토록 지성과 감성, 영성을 부풀리는 데 열중하면서도 그 모든 게 담긴 나의 몸을 소홀하게 대했다. 머리와 가슴은 물론, 때로는 몸으로 더불어 누리고 즐기면서도, 내 육체를 일일이 살피며 돌보는 정성은 다하지 않았다. 식사와 생활 공간의 위생, 신체를 돌보는 일의 기초를 대개 엄마의 가사노동 위에 내팽개쳐두고 되는대로 살았다. 의무교육과정상 ‘체육’ 과목을 마친 뒤에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보람을 느낀 기억도 희미했다. 바빠서, 이만하면 됐으니까, 아직 아픈 곳은 없으니까. 핑계는 많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각할 수도 없는 자신의 일부만을 갈고닦으면서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착각했다. 나란 사람을 구성하는 축이 퍽 오랫동안 기울어진 채로 존재를 지탱하고 있었다.

잊혔던 몸에 귀를 기울이다

홀로 사는 일상이 생생해지면서, 독립기념일의 다짐을 언제부터인가 고쳐 쓰게 됐다. 몸을 귀하게 다루는 일에도 열중하겠다고. 정말로 나의 전부를 내 힘으로 온전히 위하는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필라테스와 발레를 시작했다. 전에도 해본 적은 있었다. 운동보다는 기부에 가까웠을 뿐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이제 전과는 달리 출석을 채우는 일이나, 새 장비를 사들이는 데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근육의 결을 따라 뼈마디 하나하나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콧잔등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에 신경을 기울인다. 좋은 방향으로 한바탕 몸을 혹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다.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을 지어 먹은 뒤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를 돌린다. 욱신거리는 사지를 의자에 누이고 일기장을 펼치면 이보다 더 꽉 찬 하루는 없을 것 같아서 스스로가 무척 기특하다.

얼마 전부터는 틈틈이 달리고 있다. 시월에 열리는 달리기 대회에서 10㎞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이 목표다. 오래달리기를 하기 싫어서 학교를 빠지려고 한 적도 있는 나였다. 달리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런 내가 거리와 속도를 재며 자발적으로 달린다. 늦거나 급해서가 아니라, 단지 ‘달리기’라는 행위 자체를 위해 숨이 차도록 뛰어본 적이 전에는 없었다. 혼자 살면서 몸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은 체 만 체 하던 친구들도 내가 달린다는 얘기에는 적잖이 동요했다. 달린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다. 적당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변을 뛰다 보면 잡념은 서서히 사라진다. 바삐 움직이는 두 다리와 거칠게 두근거리는 심장, 나의 몸만이 느껴지는 그 시간이 참 좋다.

뜻대로 쉬이 되지 않는 비루한 육체라 자주 괴롭고 수시로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몸의 소리에 경청하는 연습을 한다. 나는 그렇게 외면해왔던 나의 일부와 매일 조금씩 조금씩 화해하고 있다. 육체는 정직하고 투명하다. 노력한 만큼을 결과로 되돌려준다. 몸을 돌보면서야 그걸 실감한다. 날이 갈수록 조금 더 오래, 더 빨리, 더 멀리 달릴 수 있다. 한달 전에 애써 찢은 두 다리는 예각을 그리는 데 그쳤다. 이제는 찢은 다리 사이가 둔각을 이룰 정도는 된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오르는 체성분 분석기는 차츰 더 나은 쪽으로 변해가는 나의 몸을 숫자들로 치환해 보여준다. 공들여 쌓아올린 지식이나 수련한 마음도 망각이나 변수 앞에 가끔씩 무너지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단련된 육체는 그것들보다 더디고 무디며, 그래서 우직한 것 같다.

혼자 지낸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걱정은 괜한 것이 되었다. 날로 건강해지는 내 모습에 행여 부모님이 서운함을 느끼진 않을지 신경을 써야 할 지경이다. 요즘은 부쩍 내 몸이 마치 스스로 만들어가는 나의 삶 자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1년간 음식물쓰레기를 다루거나 화분에 물을 주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에 나름의 도가 텄듯, 균형 잡힌 태도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줄도 알게 됐다. 홀로 사는 나는 시간을 쪼개어 기도를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글을 쓰며 무엇보다 운동을 한다. 내게 딸린 영혼과 육체를 고루 잘 보살피고 돌보기 위해 애쓰는 하루하루가 나를 충만하게 한다. 나만을 위해 가득 찬 삶에서 우러나는 환희를 혼자 살아가는 뭇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프로경기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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