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홀로 일해보니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 되자
작업실이 갖고 싶어져
작업실은 핑계일 뿐
동료가 없는 외로움 때문
수영하며 친구를 만들고
집 밖에서 일하려 애써봐
“자신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환경을 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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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1년차, ‘작업실 병’이 생겼다. 이 병은 작업실만 있으면 모든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병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작업실의 결정적인 조건은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업실 병’의 실체는 외로움이니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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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아침 여섯시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글을 쓰고, 매일 800미터씩 수영을 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원고지 20장가량의 글을 쓰고, 날마다 조깅을 한 걸로 유명하다. 위대한 작가들이 성실하기까지 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위장 밑바닥부터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은 주제에 나는 왜 성실하지도 못한 걸까. 여기까지는 평범한 자책이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핑계가 있다. 이게 다 작업실이 없기 때문이다.
작업실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프리랜서 1년차, ‘작업실 병’이 생겼다. 이 병은 작업실만 있으면 마감일도 착착 잘 지키고, 뭉개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도 모두 한 큐에 해결될 거라 믿는 병이다. 한동안 작업실의 직방계로 불리는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햇빛 잘 들고 널찍한 책상이 있는 곳은 최소 20만원 이상, 내 예산으로는 발매트만한 책상이나 구하면 다행이다. 정녕 작업실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일까?
주변에 하소연을 하고 다녔더니 친구가 오픈 직전의 자기 사무실을 몇달간 무료로 쓰라며 ‘혜자스러운’ 제안을 해왔다. 사방의 창에서는 햇빛이 노곤하게 들어오고, 그 볕을 따라 잎사귀가 늘어진 화분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대문짝만한 책상에 널널한 여백을 자랑하는 이 사무실은 무려 역세권에, 우리집에서 30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다. 그러나 나는 환상적인 그 제안을 살포시 거절했다. 그곳에는 내가 원하는 작업실의 결정적인 조건, 바로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시시콜콜 수다를 떨어줄 동료 말이다.
사실 작업실 타령의 원인은 외로움에 있었다. 나는 매일 나와 함께 삼시세끼를 먹는다. 커피 타임도 혼자, 산책도 혼자, 프로젝트의 중차대한 결정도 나 혼자 해야 한다. 선택의 권한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도 백 퍼센트 나 홀로 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상사나 사장 욕을 하며 책임 전가할 수 있는 일도, 이제는 모든 게 내 탓이 되어버렸다. 그 부담감에 개인 프로젝트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내 탓을 하면 우울해진다는 핑계로, 공간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안에서의 나는 너무나도 나태했다.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헷갈리던 초창기 무렵, 나는 침대에서 기어나오는 데도 몇시간이 걸리곤 했다. 바로 외로움의 친구, 게으름 때문이다. 외로울 때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끝도 없이 게으름을 피웠다. 눈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에스엔에스 친구들의 소식부터 들었다. 그러고는 네이버 뉴스로 넘어가서 각종 사건사고를 보며 인간 본성의 사악함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심지어 댓글도 하나하나 다 챙겨봤을 정도이니, 얼마나 인간들의 소식에 굶주려 있었다는 얘기인가.
그나마 부엌에 있을 때는 부지런해졌는데, 대충 먹는 걸 싫어해서 요리를 엄청나게 해댔다. 아침마다 혼자 먹는데도 국에 밑반찬 서너개는 깔고 먹었으니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한식대첩에 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항상 딸려 오는 반찬이 있었으니 그것은 외로움이다. 이 녀석을 응시하지 않기 위해 밥 먹을 때면 동영상을 켰다. 유튜브까지는 괜찮은데 드라마를 보면 그날 하루는 망하는 거다. 한 편만, 두 편만 하다가 정신 차려 보면 어느덧 하늘이 컴컴해져 있다. 세상을 스크린 너머로 살짝 내다봤을 뿐인데 오늘 하루도 다 갔구나 싶어서 패배감이 든다. 퇴직금 떨어져 가는데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불안하고, 그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또 외롭고, 더 아무것도 하기 싫고…이 악순환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외로움이 일상을 좀먹고 있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수영을 하니 동료가 생겼다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수영을 다니면서 일상이 놀랍도록 변하기 시작했다. 몇달 전부터 일주일에 세번씩 아침에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니 일단 체력이 붙었다. 침대에서 꾸물거리는 시간이 줄었고, 몸이 덜 처지고 집중력이 강해졌다. 함께 자맥질을 하는 언니들도 생겼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니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수영 ‘동료’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동료라니! 외로움이 차츰 옅어졌다.
운동으로 일상에 탄력이 생기니 계속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힘을 얻어 밖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수영 가는 날이 아니라도 하루에 한번씩은 산책을 다닌다. 요즘은 구름도 좋고 바람도 좋다. 동네 하천을 따라 걸으면 들려오는 새소리,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알록달록한 차림의 어르신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엄마들, 신난 강아지들까지 보이는 모두가 사랑스럽다. 이게 다 햇빛을 듬뿍 받아 기분이 좋아진 덕이다. 해 질 무렵에 나가보면 그것도 나름 운치 있지만, 역시 햇빛이 제일이다. 어쩌면 비타민D의 결핍을 외로움으로 착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대작가들이 수영과 러닝을 취미로 삼은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조금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애쓴다. 눈뜨면 스마트폰을 쥐는 대신 내 몸을 돌보고 스트레칭을 하자고 다짐한다. 아침식사를 할 때는 동영상을 보는 대신 팟캐스트로 뉴스를 듣는다. 앵커의 목소리에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흘러서 나도 모르게 동작이 빨라진다. 책상 앞에는 일하는 사람이 그려진 포스터를 붙여뒀다. 그는 가상의 동료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오는 윌슨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사람이 그리울 때면 우습게도 그림 속의 그가 위안이 된다. 그래도 집에서 혼자 있기보다는 되도록 사람들 속에 섞여보려고 한다. 도서관이든 카페든 말이다. 이 많은 결심을 지킬 수 있을까? 하루 이기면 이틀 지고 마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악순환만큼이나 선순환의 고리도 튼튼하다는 점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더 나은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앨릭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아무거나 하나씩 바꿔보라. 거실에 걸린 그림을 바꾼다거나 침실에 페인트를 새로 칠한다거나 가능하면 이사를 하는 것도 괜찮다. 새 직장을 구해보라. 휴가를 가보라.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라. 새 옷을 사 보라. 이상한 충고 같지만 변연계(뇌에서 감정을 인지하는 영역)는 환경의 미묘한 신호를 포착하는 일에 아주 능한데다 선조체(충동적인 행동과 관련된 영역)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변화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어디에 가든 자신의 성향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자신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마지막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적절한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도 손쉽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11월, 날이 추워지니 이제 수영장에 가기 싫다.(사실 오늘도 안 갔다.) 다른 걸 배워볼 생각이다. 나를 집 밖으로 끌고 나와 함께하는 ‘동료’를 물어다줄 게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 올겨울에도 햇빛과 온기는 필요할 테니까.
이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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