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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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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4인 가족에 맞춰진 회사 복지
평생직장 개념 무너지고
비혼 직원 늘어나는 시대
노-노 갈등 생기지 않도록
상상력 발휘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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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학자금 나올 때까진 회사에 붙어 있어야지….” 이렇게 말하는 선배들을 여럿 봤다.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은 회사가 제공하는 가장 단위가 큰 복지다. 못해도 1년에 800만원쯤 드는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배들의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도 이 복지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선배들은 대부분의 후배가 자신들처럼 때 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육아하느라 고생하다가 대학에 보내는 그런 생애 주기를 보낼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평균 초혼연령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고, 저출산은 입에 올리기도 지겨울 정도로 ‘뉴노멀’이 됐다. 회사 동료들의 삶도 다양하다. 쉰에 가까운 나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선배도 있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있고, 세 아이를 키우는 열혈 워킹맘도 있다. 나도 결혼을 하게 될지, 아이를 낳게 될지 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하겠다. 내 처지가 그렇다 보니, 4인 가족을 꾸리는 것을 전제로 한 사내 복지 체계가 불공평하게 보였다.
자녀 학자금 지원? 연봉차별 아냐?
비혼 직장인으로서 평소 갖고 있던 일차원적인 불만은 이런 거였다. 당장 급한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해도 ‘결혼하지 않은 비혼 직원’은 가장 차출되기 쉬웠다. 팀에서 누군가 한명은 일해야 할 때, 비혼이라는 이유로 손들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동료는 배려 대상 1순위였다. 아이가 아프면 조퇴해야 할 때도 있고 집에 일찍 귀가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남은 일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처리해야 한다는 거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엔 ‘육아휴직자가 생기면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쓴 표정을 짓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고, ‘사람들 참 야박하다’ 생각한 적 있다. 겪어보니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특히 충원 없는 육아휴직은 나머지 사람들에겐 ‘헬게이트’가 열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실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는 회사에 화살을 돌려야 하는 게 마땅한데, 남은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을 알게 모르게 드러냈고 자신의 법적인 권리로서 휴직을 하는 동료가 눈치 보고 미안해하며 떠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 사례들이 쌓이다 보니, 가족을 기준으로 만든 사내 복지 체계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바쁜 일 있으면 내가 야근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비혼자에 대한 연봉을 사실상 차별하는 거네! 비혼을 위한 복지는 당연히 없다. (별도로 있는 게 이상하지.) 아니, 회사에서까지 싱글세를 낼 줄이야. 차별을 받게 되더라도 먼 미래의 일인데 현재의 나는 벌써 흥분해 있는 것이다. 당장 자녀 학자금 지원만 하더라도 비혼일 경우 똑같은 연봉을 받는 유자녀 동료보다 결과적으로 연봉 800만원이 낮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셈은 빨랐다. 만약 내가 대학원 가면 절반이라도 지원해줘야 형평성에 맞는 거 아냐?!
우리 애 세금으로 부양받을 거잖아!
이런 얘길 조심스레 기혼 유자녀 선배들과 얘기하면, 대체로 두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네 말 맞는데, 애 키우면 돈이 많이 들잖아 ㅠㅠ” 하는 ‘읍소형’과 “너도 우리 애가 내는 세금과 연금으로 부양받는 거야” 하는 ‘버럭형’이다. 읍소형 앞에선 나도 “아, 네 그렇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버럭형 앞에선 할 말이 있다.
그래서 국가가 이미 각종 정책을 통해 (출산 가능성이 큰) 신혼부부를 우대하고, 아동수당과 보육비 등 양육비를 보조하고 공통의 세금을 써서 지원해주지 않느냐고 말이다. 연말 소득공제 혜택까지 자녀 수에 따라 깨알같이 지원해준다. 여기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그러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비혼에 대한 혜택 없음’을 미래의 노동력을 생산하지 않는 대가로, 일종의 싱글세로 받아들이고 산다. 다만, 회사는 구성원들의 재생산으로 존속되는 게 아니지 않나. 회사에서조차 싱글세를 부과받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얼마 전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자녀돌봄휴가제’ 도입을 앞두고 블라인드(익명 사내 게시판 앱)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자녀의 입학식이나 졸업식, 병간호 등의 사유로 자녀 돌봄이 필요할 때 연간 10일의 유급휴가를 준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지난 2월 내놓은 자녀돌봄대책 중 하나인데, 아직 법 통과가 되진 않았지만 회사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다. 이에 블라인드에선 “비혼·무자녀 직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과 반박이 이어지며 게시판이 소란했다고 한다.
이 단면이 점점 각박해지는 젊은 세대의 세태를 보여주는 걸까? ‘평생직장’ 개념은 무너졌다. 결혼과 출산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비혼 직원들은 자녀 관련 복지 혜택에 대해 ‘나도 선배들처럼 언젠가는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는다. 여러 회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파열음은 (회사 밖과 마찬가지로) ‘세대 간 연대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재생산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약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가끔 우스개로 비혼이 그동안 낸 축의금을 돌려받으려면, 마흔이든 쉰이든 일정한 시기를 정해 ‘축의금 회수 파티’를 벌여야 한다는 얘길 하곤 한다. 이런 식의 ‘사적 부조’는 날을 정해 회수한다는 상상이라도 해보는데, 회사 내부에서 제도적으로 굴러가는 (준)공적 부조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 결코 비혼과 기혼 편 가르기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은 자녀가 없음에도 현재처럼 학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 찬성하는 친구도 있었다. 만약 이런 복지를 다 같이 함께 나누자는 목소리를 내면, 회사에선 복지의 총량을 전반적으로 늘려주는 대신 형평성을 근거로 신이 나서 직원 복지에 칼질할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금 있던 것도 없어지는 것보다는 현상 유지가 낫다는 말인데, 일리 있는 얘기다.
‘4인 정상가족’ 모델을 넘어
문제는 개인의 삶의 모양새는 다양해지는데, 사내 복지 체계와 문화는 여전히 ‘4인 정상가족’을 모델로 한 구식이라는 것이다. 정부 복지 체계가 애초에 그렇다 변명할 수도 있지만, 이런 지체 현상은 ‘야박한’ 노-노 갈등을 유발한다. 제도는 늘 현상을 뒤쫓을 뿐이다. ‘생활동반자법’ 논의도 나오는 마당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는 없는 걸까. 비혼 직원을 위한 별도의 복지를 만들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비혼은 육아휴직을 원하지 않는다. 인력 충원을 원한다. 비혼은 유자녀 직원들이 학자금 지원받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교육’ 명목의 복지에서 선택적으로 자녀 교육비든 자신의 교육비든 선택할 수 있기를 원한다. 비혼은 자녀돌봄휴가에 반대하지 않는다. 부모·배우자·동거인·반려동물이 아플 때나 경조사가 있을 때에도 함께 쓸 수 있는 가족돌봄휴가를 원한다. 그러려면 회사 경영진이 이 글을 읽고 각성하시는 게 가장 먼저겠지만.
독립쪼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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