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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30 09:32 수정 : 2018.12.30 10:26

[토요판] 이런 홀로
생리컵 확산을 계기로
여성의 몸과 선택에 대한
다양한 정보, 담론 나와

여성 목소리 커질수록 가능한 선택지 많아질 것

모든 이에게 생리컵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생리대가 있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일회용 패드 생리대를 안 쓴 지 6년 정도 됐다. 처음 생리가 시작된 날 엄마에게 받은 패드 생리대는 20대 초반에 탐폰으로 바뀌었다. 탐폰의 시기를 거쳐 생리컵을 사용한 지는 4년이 돼간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무언가 아픈 것 같고 발끝이 차가워졌던 첫 탐폰 도전기와 달리 지금은 눈 감고도 끼고 갈 정도가 됐다. 처음 1년이 다 돼갈 때까지만 해도 넣느라 종종 애먹고 가끔 새던 생리컵도 지금은 탐폰을 갈듯이 쉽게 빼고 다시 쉽게 넣는다.

처음 생리컵을 친구에게 선물받았을 때만 해도 한글로 된 정보가 거의 없어 사용법을 찾기 위해 영어로 구글링을 해야만 했다. 주변에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 친구하고만 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국내에선 팔지도 않아 비싼 돈을 들여 직구를 해야 했다. 지금은 한글로 생리컵을 검색해도 글과 영상이 넘쳐나고, 얼마 전부터는 드디어 국내에서 정식 판매뿐 아니라 생산도 가능해졌다. 생리컵을 아직 안 쓰는 사람은 많지만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생리컵이 정답은 아니지만

생리컵을 사용할 때 가장 기대한 점은 생리통 감소였지만 불행히도 조금만 줄어들었을 뿐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여전히 생리 딱 하루 전날부터 시작한 첫날까지 아랫배가 아프다. 생리통에선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생리 기간엔 정말 내가 생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생리컵은 편리하다. 사이즈 넉넉한 걸 한번 착용하고 나면 양이 많은 첫날에도 샐 걱정 없이 몇시간 동안이나 거뜬하다. 제대로 착용하면 아무런 이물감이 들지 않고 탐폰의 실처럼 티가 난다거나 핏방울들이 실을 타고 흐른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생리컵을 쓰며 정보를 함께 공유하는 내 친구 한명은 실수로 생리컵을 하나 더 넣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만큼 생리하는 걸 까맣게 잊게 된다. 생리컵을 사용하고서는 질과 외음부 쪽의 건조증이 아예 사라졌다. 여름에도 불쾌하지 않다. 화장실에서 속옷을 내렸을 때 냄새도 나지 않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가 묻는 일도 없다. 수영장도 문제없다. 뛰고 구르고 별짓을 다 해도, 심지어 하얀 하의를 입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최근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하루에 몇개나 발생시키던 플라스틱 생리대를 더는 버리지 않아도 돼 죄책감도 덜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에게 생리컵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생리대가 있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여러 선택지 안에서 자신의 몸과 라이프스타일, 때로는 상황에 가장 잘 맞는 걸 고르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생리컵을 계기로 탐폰 같은 삽입형 생리대 이야기, 그리고 깔창 생리대와 저소득층 여성들의 대안 생리대 등 여성의 몸과 선택에 대한 여러 담론이 오간 것은 여성으로서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관련한 여러 정보와 담론을 만날 수 있다.

생리대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안에서의 선택이 중요하듯이 비혼과 비출산처럼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고려됐던 결혼이나 임신, 출산도 다시 ‘선택’의 영역에서 이야기해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리 자체에 대한 선택권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여성이라면 40여년 동안이나 강제로 하게 되는 생리도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한 것. 미레나 시술, 호르몬 루프 등 자궁 내 피임 기구를 사용하면 자궁 내막이 얇게 유지돼 생리가 줄어드는데 이런 방법을 이용해 생리 중단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있다. 물론 병원에서는 출산 경험이 없는 미혼 여성에게는 그리 권하지 않지만, 자궁근종이 있거나 생리통이 심한 여성 중 일부는 생리 중단을 위해 기구를 삽입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치료와 시술이 그렇듯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언제든 생리를 다시 하기 위해 또는 아이를 갖기 위해 기구를 제거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도 이미 ‘생리 없는 삶’에 대한 선택이 이야기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 해방을 가져온 물건은?

얼마 전 친구네에서 생리를 시작해 탐폰을 사용한 뒤 집에 온 적이 있다. 친구네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탐폰을 빼고 가장 용량이 큰 생리컵을 접어 넣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며 갈아줘야 하는 화학용품을 빼고 생리컵을 쓰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어디에 앉을 때도 아래쪽이 덜 배겼고 아랫배 팽만감도 훨씬 덜했다. 무엇보다 몇시간은 마음 놓고 자유롭게 누워 있을 수 있다. 잠을 자다가 탐폰을 갈기 위해 중간에 깨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편한가.

누워 뒹굴거리다 보니 얼마 전 엄마가 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퀴즈 하나를 낸 게 생각났다. 텔레비전의 한 생활 퀴즈 프로그램에서 본 거라며, 여성 해방을 가져온 세가지 물건이 무엇 같냐고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탐폰·생리컵’ ‘경구피임약’ 그리고 하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부모님 세대의 연령대가 많이 보는 그 퀴즈쇼가 알려준 정답은 바로 ‘세탁기, 콘돔, 분유’였다. 엄마는 정말로 공감을 많이 하신 투로 말씀하셨다. 하긴 할머니 세대나 엄마 세대에겐 그랬을 테다. 겨울에도 그 많은 빨래를 맨손으로 해내야 했을 테다. 대책도 없이 아이가 많이 태어나면 그걸 먹이고 기르는 것도, 그러면서 집안일도 모두 여성의 몫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저 세가지가 여성 해방의 물건으로 이야기되는 거겠지. 물론 아무리 밥솥이며 세탁기며 식기세척기가 발전돼가도 누가 버튼을 누르냐에 따라 가사 노동의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아무튼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가 무관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생리대 선택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한국에서는 생리컵이 정식 판매되기 시작했고 앞다투어 생리컵 펀딩과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생리컵 자체보다 어떤 생리컵을 만들지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여성들 앞에 놓이게 될 테다.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나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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