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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2 09:30 수정 : 2019.01.12 10:00

[토요판] 이런 홀로!?
원룸에서 산다는 건
방 안에서 먹은 모든 음식과
함께 사는 것과 다름없어
암막 커튼으로 냄새 차단해

2년 동안 몇번 안 앉은 책상
치우자 0.3평의 여유 생겨
원룸은 임시 거처가 아니라
지금 나의 삶임을 인정

‘풀옵션 원룸’에 포함된 책상을 치웠다. 책상을 없앰으로써 두가지를 얻었다. 첫째는 0.3평의 여유 공간, 둘째는 외풍. 책상과 의자에 가려 있던 창문 앞이 드러나면서, 추운 밤이면 끼쳐오는 한기에 시름하고 있다. 그래도 가뿐해진 방을 보면 신이 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원룸에 산다. 원룸에 혼자서 산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냥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나 올라온 뒤 실로 다양한 모양의 집들에 살아보았다. 복층형 오피스텔, 복도식 아파트, 분리형 원룸, 투룸, 포룸…. 그런데 자취를 시작한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진짜’ 원룸에 살아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사는 집은 20㎡. 여섯평을 딱 채우는 넓이다.

어떤 집이든 일단 들어가면 나와 집이 서로 적응을 하게 된다. 처음엔 공간에 나를 맞추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점차 공간을 나에게 맞추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건 원룸도 마찬가지이다. 일주일 뒤면 나는 원룸살이 3년차가 된다. 나는 여전히 요리조리 잔꾀를 내어가며, 여섯평 내 집과 ‘밀당’을 하는 중이다.

내 집이 아니라 삼겹살집!

중학교 때 가정 선생님은 별명이 ‘핫도그’였다. 검지를 세워 턱 밑을 받치는 습관 때문에 먹음직스러운 별명이 붙어버렸지만, 웃을 때면 보조개가 곱고 말씀도 부드럽게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순하던 핫도그 선생님이 분통을 터뜨리며 언성을 높이는 것을 딱 한번 본 적 있다. 바로 주택의 종류에 대해 수업을 하다 ‘원룸’이란 것을 설명하실 때였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정말 어지간해선, 이 원룸이란 거엔 살지 마세요! 원룸에 사는 건 그냥 부엌에 침대랑 옷장을 놓고 사는 겁니다! 삼겹살 한번 먹으면, 최소한 이틀은 집이 내 집이 아니에요! 그냥 삼겹살집입니다! 사람 사는 집은 문이 3개는 있어야 합니다! 현관문! 화장실 문! 방문!”

그땐 난데없고 본 적 없는 선생님의 폭주에 그저 친구들과 자지러지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15년 뒤 그것이 내 현실이 되었다.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햄을 부치면 햄집이 되었다가, 미역국을 끓이면 미역국집이 되는 게 원룸이었다. 이사 온 집에서 처음 밥을 해 먹은 날 저녁, 나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핫도그 선생님은 참 용감한 분이셨구나. 원룸에서 삼겹살을 굽다니.’ 그리고 이 집에 달린 문을 세어보았다. ‘현관문, 화장실 문… 음, 방문이 없네.’

정말로 원룸에서 산다는 건, 내가 방 안에서 먹는 모든 음식과 같이 사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냄새가 덜 나게 해보려고, 요리를 할 때는 주방 환풍기부터 틀었다. 중간중간 창을 열어 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퍼진 냄새를 제거하는 것은 근본적인 방책이 아니었다. 일단 냄새가 침실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없는 문을 닫을 방법을 궁리하다 생각해낸 것이 커튼이었다. 지난가을 전동 드릴 없이 설치할 수 있는 압축식 봉을 샀다. 방 중간을 가로질러 암막 커튼을 쳤다. 이 집은 일자로 길쭉한 직사각형 구조라, 주방과 침실로 공간을 나누기가 쉬웠다. 완벽한 벽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분리형 원룸을 만든 셈이었다.

이렇게 문 아닌 문을 단 결과는 기대한 것보다 만족스러웠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묵직하게 떨어지는 암막 커튼은 든든하게 냄새를 가둬주었다. 그 덕에 매번 기능을 의심하던 주방 환풍기가 묵묵히 ‘열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1년 반 만에 인정하게 됐다. 하지만 그로써 한결 편리해진 먹고 살기를 만끽할 때마다 왠지 나는 뿌듯하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먹을 땐 좋기만 하던 냄새가 먹고 나서는 그리도 맡기 싫을 수 있다니. 내가 이렇게 변덕스럽고 모순된 인간이라는 것을, 문 3개 달린 집에 살 때는 잘 몰랐다. 방문, 딱 그 문 하나 없어지고 비로소 알았다. 이럴 때 주방과 침실은 다 내 마음의 허상이라고 내려놓으면 도를 깨칠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나는 없어진 문을 도로 다는 중생의 길을 택했다. 요새는 에어프라이어로 삼겹살도 구워 먹는다. 해피!

책상을 치웠더니

새해 들어 우리 집엔 0.3평의 변화가 생겼다. 며칠 전 책상을 치웠다. 정확히는 옷장과 서랍장으로 연결되어 있던 책상 상판만 들어낸 것이다. 지금 사는 집은 ‘풀옵션’ 원룸이다. 그런데 냉장고도 세탁기도 다 작은 집에서, 책상만은 두드러지게 컸다. 그러나 집 넓이의 5%를 차지하는 큼직한 책상 앞에 앉은 건 지난 2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책상 서랍은 화장품과 양말 수납장으로 전락했다. 앞으로는 잘 쓸까? 책을 보나 공부를 하나, 나는 책상 앞에서 ‘각 잡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없애자, 책상.

드라이버로 나사를 푸는 동안, 그런데 이 조그만 월세방에 책상은 왜 갖춰져 있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문득,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피아노가 떠올랐다. 세 자매를 르누아르 그림 속의 소녀들처럼 화사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던 우리 엄마는, 없는 살림에 큰맘 먹고 거실에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자매가 다 피아노를 배웠지만, 피아노 뚜껑이 열리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학원도 억지로 다니는데 집에서 그걸 또 칠 리가! 그런데도 엄마는 이사를 할 때마다 곤돌라로 피아노를 옮겨 오셨다. 그때는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피아노 욕심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냥 거실 한쪽에 피아노가 놓인 아파트 자체가 젊은 시절 엄마가 꿈꾸신 ‘스위트 홈’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방에 어울리지 않는 널찍한 책상은, 한칸짜리 방에 맞게 변모된 엄마의 피아노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 앞에 앉아 이런 공부도 하고 저런 공부를 해서, 그로써 머지않아 성공하고 풍족한 삶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끊임없이 불어넣는 것. 그 희망은 자꾸만 이곳이 ‘잠시 거쳐 가는 집’이라고 믿고 싶게 만들었다. 이 원룸은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돈을 더 많이 벌 때까지, 혹은 결혼을 해서 번듯한 신혼집에 살기 전까지의 임시 거처 정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책 몇권 얹어놓은 책상을 보는 것만으로 뭔가 다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괜히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자격증 시험을 신청해놓고, 어영부영 노력하지 않는 나를 자책해가며.

대학생 시절, 본가가 서울인 친구들은 학교 앞 원룸에 사는 친구들을 그렇게 부러워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원룸은 마치 자유종합세트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독립을 했을 때 원룸에 살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살 집이 필요했고 투룸은 비싸서. 그런 진짜 이유를 ‘더 좋은 집으로 갈 거니까’ 하고 교묘하게 가리고 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섯평 집에서의 생활은 임시의 것이 아니다. 이게 바로 지금 나의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완전히 인정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생활은, 인과(因果)의 무서움을 끝없이 반복학습하는 과정이다. 세탁기가 있어도 빨래가 저절로 되어 나오진 않는다. 기껏 채소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어도 요리를 안 하면 먹을 반찬이 없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 마신다’는 옛날 만담처럼, 결국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결과는 생기지 않는다. 책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늦게 마친 편이지만, 내 인생에서 책상이 공부를 해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에서 고뿌 없는 사이다 하나를 쫓아냈다.

이번에 책상을 없앰으로써 두가지를 얻었다. 첫째는 0.3평의 여유 공간, 둘째는 외풍. 책상과 의자에 가려 있던 창문 앞이 훤히 드러나면서, 추운 밤이면 스멀스멀 끼쳐오는 한기에 시름하고 있다. 그래도 가뿐해진 방을 보면 신이 난다. 원룸살이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집과의 밀당이라 말하겠어요. 일자로 긴 여섯평 방에서, 나는 내가 구하는 것과 내 삶의 가능성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 줄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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