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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1 09:27 수정 : 2019.08.11 09:45

[토요판] 이런 홀로

퇴사 뒤 한동안 카페에서 일해
음악, 영업시간, 조명, 자리배치...
다 적당한 곳 찾기 쉽지 않아

카페 전전 지쳐 작업실로 눈 옮겨
돈 없으니 주로 월 10만원대 찾아
독방, 호구조사 피해 4번째 이사

자주 가던 카페가 없어지자 나는 하루아침에 집주인에게 내쫓긴 세입자의 신세로 길거리에 내던져져 다른 카페들을 전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수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로 주로 혼자 카페에서 일을 해왔다. 혼자 일하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일하는 공간에 대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카페를 전전하면서 수많은 카페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왔다.

처음 정을 붙였던 곳은 당시 살던 집 근처에 있던 중소 규모의 ㅈ카페였다. 그때만 해도 아직 회사를 다니던 때였고 카페 안에서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니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그곳은 아무 뿌리도 없는 동네에 굴러 들어와 홀로 살고 있던 내가 어쩌면 거의 유일하게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음악이 안 나오고, 늦게까지 열고,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조도가 적당한 자리가 있고, 일을 지나치게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고, 간단히 요기할 먹을거리가 있고, 어느 자리에 앉아도 작업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동네에 카페는 많지만 막상 몇시간만 앉아 있어 보면 불편한 점이 하나둘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필요한 요소를 다 갖춘 카페를 찾기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내가 출근했던 카페들

어느 날 출근하다시피 했던 이 카페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선 허둥대지 않고 내 집 안방에서 내 집에 온 손님을 바라보듯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데. 나는 하루 중 어느 시간대라도 그 시간 이 카페의 풍경이 어떤지에 대해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알바생들과 이곳의 역사에 대해 단편적이지만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는데. 그러나 카페는 나의 바람 따위와는 무관하게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다른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내가 한동안 정착한 곳은 집 앞 대형 스타벅스였다. 그때는 회사를 그만둔 뒤라 아침에 출근 루틴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일찍 여는 곳이 필요했다.(상당수의 중소 규모 카페는 오픈 시간이 오전 11~12시다) 거기에 더해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을 곳, 주인과 아는 척할 필요 없이 군중 속에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일하기에 편했는데, 프랜차이즈 카페가 그런 면에서는 적당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 중에서도 이곳 스타벅스는 분위기가 번잡하지 않고 비교적 고즈넉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공간 구성에서 월등한 세심함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묘하게 시선이 교차되지 않는 자리 배치, 일하기에 편안한 높이가 잘 맞는 의자, 각 자리의 특성에 적합한 조명. 그 세심함은 직접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호갱’이라도 정성스러운 태도로 ‘호갱질’을 당하는 느낌이었달까. 다만 스타벅스는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콘센트 숫자가 적었다. 나는 내가 1순위로 원하는 자리, 즉 혼자 앉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마주보지 않아도 되고, 책상 수평이 잘 맞고, 시끄러운 사람들이 옆에 앉을 가능성이 적으며,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매번 카페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물론 1순위 자리에 이어 2순위, 3순위의 자리들이 있었다.)

스타벅스에 출근하던 몇년 동안 카페에는 매일같이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늘 앉는 자리가 있었다. 서로 인사하지 않지만 매일 루틴의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적당히 사람이 없는 아침 카페에 들어설 때, 변함없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 스타벅스는 몇년 뒤 다른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 스타벅스 매장 입구에 ‘본 매장은 ○월○일 영업을 종료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또 덜컥 마음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습지만 정말로 그랬다. 그즈음 몇년간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혼자 어떤 장소로 굴러떨어진 내가 무언가에 어떻게든 마음의 뿌리를 내리려는 것은 점점 우스운 일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이든 변함없이 지속될 거라는 믿음은 이제 깨지기 쉬운 것이 되어 있었다. 같은 장소에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왔을 뿐인데 공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그곳은 믿을 수 없이 거대한 공간에 특별한 구획 없이 테이블을 마구잡이로 빽빽이 배치해두었고, 믿을 수 없이 시끄럽고 거대한 장삿집이 되었다.

나는 또 하루아침에 집주인에게 내쫓긴 세입자의 신세로 길거리에 내던져져 다른 카페들을 전전했다. 몇달 뒤엔 실제로 집주인에게 내쫓겨 8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롭게 정을 붙일 카페들을 찾아 헤맸다.

한때 머물렀던 작업실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곳은 4명이 함께 쓰는 작업실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이사 후 카페들을 돌아다니는 것에 지쳐 저렴한 작업실을 구하는 쪽으로 한쪽 눈을 돌린 채로 수년을 보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세 곳의 작업실을 구했었다.

작업실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작업실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대형 사무실에 번듯한 기기를 갖춰놓고 음료와 프린터 등을 무료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개별 독립 공간으로 구성된 곳, 회사 사무실의 남는 공간에 책상을 놓고 임대하는 경우 등등. 그들은 채광, 카페 같은 공간, 창작자들끼리의 시너지, 교통의 이점 같은 것을 내세운다. 돈이 많으면 그냥 따로 사무실이나 원룸을 구하면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하나의 공간에 여러 개의 책상을 놓고 ‘자리’를 파는 월 10만원대의 작업실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 정도면 카페에 매일 출근하며 내는 커피 값에 조금만 더 보태면 되는 비용이었다.

처음 구한 작업실은 소규모 회사 사무실 한쪽에 책상 8개를 놓고 임대 작업실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커피, 차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고 프린터도 이용할 수 있어 좋았지만 아무래도 독서실처럼 칸막이 높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잠이 오고 우울해졌다. 직원들의 커다란 전화 통화 소리도 듣기 싫어서 그만두었다. 그다음 구한 곳은 스무 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 열다섯 자리 정도를 커튼으로 구분해둔 곳이었는데, 내 자리는 감옥의 독방처럼 어둡고 구석에서 벽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자리였다. 가까이 붙은 옆 사람은 짐도 많고 번잡했고, 집에서 걸어가기에도 버스를 타고 가기에도 애매한 위치였다. 가지도 않으면서 월세만 축내다가 몇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다음 작업실은 하루 만에 도망치듯 나와야만 했다. 그들이 작업실 ‘식구들’ 간 친목 도모를 강조하며 처음 온 내게 호구조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지금의 작업실은 두 면이 벽이고 한 면은 책장으로 옆자리 사람과 칸막이가 되어 있는 창가 자리다. 집과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고, 창밖으로 가로수이긴 하지만 나무가 보이고 개인적인 공간도 보장되어 그런대로 만족한다.

그러나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가끔 예전에 스타벅스였던 그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는데, 그때마다 아침의 고즈넉한 빛 속에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 다이나믹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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