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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8 09:04 수정 : 2019.08.18 09:23

[토요판] 이런 홀로

생활비 아끼려고 같이 산 친구
서로 물건 섞이면서 감정 상해
불공평한 노동 분담도 스트레스

남과 같이 사는 데는 배려가 필요
집안일 눈에 띄면 바로바로 하고
빌린 물건 아무리 작아도 갚아야

부자가 아니라도, 우린 모두 ‘숙주’나 ‘기생충’이 될 수 있다. 지방에서 관사 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직장 동료와 한 아파트를 나눠 쓰게 되었는데, 이 동료가 엄청난 절약가라 스트레스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자신은 집에서 식사를 안 하니 생활비를 걷지 말자고 하고는 친구가 고향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아침마다 그 친구의 식빵과 우유를 먹고 출근하고, 수저와 컵, 수건 같은 생활용품도 전부 친구의 것을 나눠 쓴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1. 기숙사 같은 방에 사는 언니가 내 물건을 쓰는 것 같아요. 처음엔 향수나 화장품처럼 티 안 나는 물건을 쓰더니 얼마 전에는 옷에 제가 묻힌 적 없는 게 묻어 있더라고요. 참다 참다 말했더니 자긴 쓴 적 없다고 네 싸구려 물건 내가 쓸 것 같냐고 사람을 도둑 취급한다고 노발대발하네요.

2. 저번에 ‘기숙사 언니’ 글 썼던 사람입니다. 저만 느낀 게 아니라 같은 방 다른 애는 그 언니가 자기 서랍에서 음식 빼서 먹는 것 같다고. 그 언니가 워낙 무서운 성격이라 우리도 말하기 치사하고 증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노트북 캠을 켜놓고 방을 비웠는데요. 맙소사, 글쎄 향수, 화장품 전부 제 거 빼서 당연하다는 듯이 쓰고 다른 서랍장에서 과자랑 컵라면도 막 빼 먹고 옷도 남의 옷장 뒤져서 입고 나가는 게 찍힌 겁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영상 찍은 거 증거로 제시했더니 너희들 몰래카메라 찍은 거냐고 난리 쳐서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3.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싸움 때문에 경찰이 출동했는데요. 너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언니가 알고 보니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고 남의 이름 도용해서 기숙사에 살고 있었던 거라네요. 경찰 출동하고 신분증 제시하라고 하니까 못 내놓더라고요. 우리 모두 며칠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냈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닌데다 신분도 모르는 사람이랑 몇달을 같이 살았다니 끔찍해요.

몇해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도시괴담’을 기억을 되살려 각색한 것이다. 기억이 정확지는 않지만,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가 방 친구들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썼고, 증거를 잡기 위해 노트북 캠으로 촬영했는데 몸싸움으로 번져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학교 학생이 아니었다…는 소름 끼치는 반전까지 있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에서 윗집의 와이파이를 얻어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천장으로 손을 뻗던 기우와 기정 남매를 보다가 문득 인터넷에서 숱하게 봤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아랫집이 자꾸 와이파이를 몰래 써서 와이파이 이름을 ‘302호 도둑놈아 와이파이 돈 내고 써라’로 바꿨다는 웃지 못할 사례에서 공과금이 이상하게 많이 나와서 확인해보니 옆집에서 특수한 방법으로 그 집 전기를 끌어 쓰고 있었다는(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스러운) 괴담, 고시원 공용 냉장고 속 개인 음료수를 누가 훔쳐 먹는 것 같아서 시험날 음료에 수면제를 타 놨더니 한 고시생이 자느라 시험을 못 보러 가서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까지…. 자작이 의심스러운 유머와 괴담 사이를 오가는 각종 사연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기생충>의 박 사장은 집이 넓어 지하벙커에 누가 살든 접촉할 일이 없는 부자이기라도 하지, 원룸이나 빌라촌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서민들이나 한집이나 고시원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동거인들은 부유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서로에게 ‘기생충’이자 ‘숙주’가 될 수 있다.

상식과 배려에 대한 감각이 다를 때

나 역시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 처음 원룸을 얻었을 때부터 여러 친구들과 동거 생활을 했다. 서울이 고향이 아닌 동성 친구들이 동거를 선택할 때 이유는 명확하다. 집세와 생활비 절감. 처음 얻었던 학교 앞 원룸은 6평 정도의 방이었는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가 37만원이었다. 벌이도 없는 대학생에게 매달 월세 37만원의 고정비용은 엄청난 부담이라 처음 집을 구할 때부터 친구와 함께 살 요량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당시에는 경험이 없어서 타인과 함께 살 때에는 분리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원룸에서 친구와 함께 살았던 두달간은 당연히 서로에게 고역이었다. 학생인 나와 직장인인 친구는 서로 잠자고 일어나는 패턴이 달랐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불 속에서 반딧불처럼 휴대폰 불빛을 밝힌 친구가 남자친구와 주고받는 메시지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한번 ‘쟤랑 안 맞아’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모든 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생활 리듬, 취향이 다른 것까지는 감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같은 공간 안에 서로의 물건이 뒤섞이면서 발생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서로의 물건들을 쓰기 시작하자 이내 큰 싸움으로 번졌고 감정이 상해 마지막에는 “너 왜 허락도 없이 내 샴푸 써?” 하는 치사한 소리까지 나왔다. 쟤는 왜 생리대를 미리 안 사다 놔서 매번 생리 첫날에 내 생리대를 빌려 쓰고 갚지도 않나, 아침마다 스타킹을 빌려 신고는 세탁도 안 하고 돌려주는 건 도대체 몇번째이고, 쓰레기봉투 등이 떨어질 때마다 왜 현금이 없어서 자잘한 생활 물품은 전부 내가 사게 만드는 건지.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던 귀여운 ‘생활 수칙’ 같은 건 어느새 무용지물이 되었다.

동성 친구 둘이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단순히 생활비와 월세 절감을 위해 동거할 때 이렇게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터지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변에서 듣는 사례뿐 아니라 ‘룸메이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도시괴담이 되어 세간을 떠돈다. 상식이나 배려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 때에는 한명이 숙주, 한명이 기생충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위에 언급한 기숙사 에피소드뿐 아니라, 영화(<도어락> <숨바꼭질> 등)로도 제작된 홈리스 괴담(혼자 사는 여성의 침대 밑에 홈리스가 들어와 몰래 살고 있었다는) 역시 넓게 보면 숙주에게 기생하는 ‘도시 기생충’의 이야기다.

지방에서 관사 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직장 동료와 한 아파트를 나눠 쓰게 되었는데, 이 동료가 엄청난 절약가라 스트레스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자신은 집에서 식사를 안 하니 생활비를 걷지 말자고 하고는 친구가 고향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아침마다 그 친구의 식빵과 우유를 먹고 출근하고, 수저와 컵, 수건과 같은 생활용품도 전부 친구의 것을 나눠 쓴다고 했다. 같이 쇼핑 좀 하자고 천원숍에 끌고 갔지만 겨우 치약 하나 사더라고, 회사에서는 멀쩡했는데 함께 살아 보니 상식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친구는 월세를 내더라도 관사를 나가고 싶다며, 동료보다 일찍 퇴근했을 때 혼자 집에 있는 그 시간이 꿀처럼 달다고도 덧붙였다.

잠시 서울에 학원을 다니러 와서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에 살게 된 또 다른 친구 역시 8명이 한집에 기거하는 셰어하우스에서 매일같이 눈치 싸움을 벌인다고 했다. 넓은 공용 공간이 있고 비교적 예쁜 인테리어로 월세가 무려 56만원이나 하는 셰어하우스로,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쓰고 가사노동도 나눠 하는데, 누가 방장을 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이기적인 아이가 방장이 되어서 청소 분담표를 짜면 쉬운 일은 자기가 하고 다들 꺼리는 일은 결국 하던 사람만 매번 하게 된다고. 여기서는 노동의 불공평함이 불만이 된다. 여기에 셰어하우스 운영 회사의 미흡한 일 처리까지 겹쳐지면 동거인들이 셰어(공유)하는 것이 불만과 소음밖에 없게 된다.

누구나 ‘숙주’ ‘기생충’ 될 수 있어

관사와 셰어하우스에 사는 친구들은 “혼자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관사와 셰어하우스 모두 잠시 스쳐 가는 ‘임시 공간’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이들을 위안케 했다. 문득 친구와 함께 살기로 한 집에 일주일 먼저 입주해 홀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던 밤이 떠올랐다. “아, 이대로 친구가 안 왔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너무 고요하고 달아서 나는 누가 붙인 건지도 모르는 천장의 야광별을 보며 그렇게 속삭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남과 같이 사는 데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하물며 가족과 같이 살 때에도 마찬가지다. 집안일은 칼같이 나눠지는 게 아니기에, 내 일이 아니더라도 눈에 띄면 바로바로 하는 게 낫다. ‘이건 내 일도 아닌데 내가 왜’라고 불만의 씨앗을 품기 시작하면 그 씨앗은 이내 큰 나무로 무성하게 자라서 온 마음을 뒤덮는다. 생활용품은 보디샴푸나 린스까지도 따로 쓰는 게 좋고 “빌릴게”라고 하고 빌린 물건은 제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갚아야 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혼자 살고 보니 나 역시 남에게 그다지 좋은 룸메이트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민폐 혹은 기생충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사는 이 삶을 잘 꾸려야 한다고 되새긴다. 어쩌면 나와 함께 살았던 친구 1이나 2가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를 도시괴담처럼 떠들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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