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0 09:05
수정 : 2019.11.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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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디자이너가 생기고 친분이 쌓이면 친한 친구와도 좀처럼 나누기 힘든 연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과한 오지랖으로 서로의 여름휴가 코스를 짜주기도 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어김없이 내게 파마나 염색을 권하곤 했다. 나는 커트 이외에 다른 걸 할 생각이 없고 디자이너의 권유를 계속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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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서비스 거절의 어려움
미용실 갈 때마다 곤혹의 순간
연애상담 할 정도로 친해지면
결국은 파마나 염색 권해
물건 찾으러 상점 들어가도
점원 따라붙어 자꾸 물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비스
그날 올 때까지 고통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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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디자이너가 생기고 친분이 쌓이면 친한 친구와도 좀처럼 나누기 힘든 연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과한 오지랖으로 서로의 여름휴가 코스를 짜주기도 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어김없이 내게 파마나 염색을 권하곤 했다. 나는 커트 이외에 다른 걸 할 생각이 없고 디자이너의 권유를 계속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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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에서 거절해야 하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한다. 작게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나 예고에도 없던 선배의 저녁 식사 제안들이 그렇다. 바쁜 출근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바쁘게 지나친 전단지가 마음에 걸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가 받아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찰나, 내게 내민 손이 민망해 멋쩍어하는 이들의 공허한 시선은 언제나 나를 나쁜 사람으로 함부로 몰아가는 것만 같다. 선배들의 저녁 식사 제안도 비슷하다. 매번 거절할 때마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구성원이 되는 것만 같다. 이쯤 되면 그만 포기할 법도 한데, 참 집요하게도 제안은 이어진다. 물론 평온한 내 미래를 위해(한번 말리면 끝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나 또한 집요하게 거절을 해내고 있지만 그냥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아니면 나는 정말 정 없고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나 스스로를 자꾸만 의심해보지만 세상에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거절이 필요한 상황들이 너무도 많다. 소위 ‘서비스’로 통칭되는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서비스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타이밍에 제공되는 것이어야 정말 만족스러운 서비스로 기억에 남는 법이다. 일방적으로 내게 전해지는 다양한 제안과 호의는 계속해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간다.
내 돈 주고 하는 커트, 왜 죄송할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미용실은 그저 지저분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실용적인 공간 이외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미용실에서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때때로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분명 어색하지만 전에 느껴본 적 없던 편안한 감정이다. 그리고 갈수록 찾아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내게 미용실은 실용성만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어갔다.
전담 디자이너가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는 유대감과 친분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친한 친구와도 좀처럼 나누기 힘든 연애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과한 오지랖으로 서로의 여름휴가 코스를 짜주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관계는 급기야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는 와중에도 어떻게 이 미용실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년에 고작 두번, 명절 때만 찾아가는 부모님이 알게 되면 그 가상한 노력에 어이없어하시지 않을까.
그런데 관계의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어김없이 내게 파마나 염색을 권하곤 했다. 그들이 높은 단가의 서비스를 판매하고 싶은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커트 이외에 다른 걸 할 생각이 없고 그렇게 친분이 생긴 디자이너의 권유를 계속해서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딘가 모르게 자꾸만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내가 돈을 주고 커트를 하는데도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들을 느껴야 했다. 그러다 그들에게 성의 표시를 하기 위해 별 마음에도 없이 염색과 같은 추가적인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그다음 단계로 날 데려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쯤 되면 홀로 어처구니없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환한 미소로 상대방은 결코 알 수 없을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오랜 기간 다니던 미용실과 이별해야 했다.
나는 자꾸만 다른 미용실을 찾아 떠돈다. 얼마 전 간만에 커트를 잘하는, 정말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았는데, 어김없이 권하는 파마나 염색은 하고 싶지 않아 또 거기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이미 “다음에, 다음에”라고 이야기도 여러번 했으니 거짓말쟁이가 될 바엔 이제 그냥 다른 미용실에 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단지 내가 불편하고 싶지 않아서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주고 진정성 있는 조언을 건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반복되는 이 상황이 정말이지 너무나 불편하다. 근처에 미용실이 또 어디 있더라. 이러다 동네 미용실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필요하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사고 싶은 게 그리 많지 않아 쇼핑을 즐기지는 않는다. 대신 필요한 게 있으면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그럴 때면 혼자 천천히 둘러보며 내게 가장 적합한 물건을 찾는다. 대개 사람들은 쇼핑을 하다 보면 결국 ‘끌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게는 하면 할수록 혼란과 선택장애만 남는 게 쇼핑이다. 그래서 사야 할 어떤 무언가를 정확히 결정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물건의 재고와 가격을 확인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렇게 혼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고민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매장에 들어가면 어느새 떡하니 점원이 옆에 다가와 있다. 으레 정해진 매뉴얼처럼 찾으시는 물건이 있냐고 묻는다. 내가 찾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들어왔는데 아마도 그걸 찾아서 왔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배배 꼬인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조용히 가게를 나간다. 내가 무얼 사고 싶고 어떤 걸 찾고 있는지 생각이 정리되면 알아서 물어볼 건데 말이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이 생기니 본의 아니게 아이쇼핑을 넘어 멀찍이 윈도쇼핑만 하게 된다.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 나는 그저 나의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인해 처음 만난 낯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들의 친절함과는 반대로 결국 내 쇼핑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실컷 물어보기만 하고 사지 않으면 왠지 그들에게 빚을 지는 느낌이 든다. 때때로 쿨하게 괜찮다고, 둘러보고 오라는 그들의 인사에는 괜한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무관심 마케팅’이란 게 존재한다. 한 글로벌 프랜차이즈 카페는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무관심하도록 지침으로 만들었다. 이런 역설적인 서비스를 통해 손님들은 편안한 공간의 분위기를 소비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커피값이 비싼데도 그 공간을 소비한다는 의미에서 마땅히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끔 만든 요인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서비스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는 시장에서 과일 몇개 더 담아주고 콩나물 한 움큼 더 넣어주는 ‘덤’의 개념에 가까웠다. 서비스는 곧 따뜻한 인심과 정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서비스는 훨씬 모호한 개념으로 치닫는 듯하다. 서비스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간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본의 아니게 까다로운 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이해해보려 하지만 막상 또 미용실에서 쇼핑센터에서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나는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해할 것이다. 확실한 내 의사표현을 할지 그 순간을 회피할지, 아마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날아라 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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