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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8 17:09 수정 : 2018.02.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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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재계인사이드_이서현·구본걸·정유경의 경쟁

국내 의류시장 침체 극복위해
브랜드 재정비·신사업 ‘동분서주’
지난해 3사 모두 흑자냈지만
영역 변화 시도에 우려 목소리도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사장
브랜드 구조조정, 327억 흑자 전환
야심작 ‘에잇세컨즈’ 고전

구본걸 LF 회장
한발 앞서 투자한 온라인몰 결실
영업이익 39% 늘고 매출도 증가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
매출 8% 늘었지만 영업이익 줄어
직접 제조나서며 ‘성장의 질’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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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45)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구본걸(61) 엘에프(LF) 회장, 정유경(46)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이들은 재벌 3세이면서 의류업을 이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 닥친 미래는 녹록지 않다. 국내 의류시장은 수년 전부터 침체기를 겪다 지난해에는 역성장하기까지 했다. 재벌 그룹에 뿌리를 둔 패션기업이라도 무너지지 않는 시대도 지났다. 재벌 3세 경영인들이 부진한 브랜드를 정리하고 새 사업을 발굴하는 등 지난 1~2년 사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엘에프,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모두 흑자를 냈지만, 좋은 평가만 나오지는 않는다.

재벌 3세들의 지난해 성적표는 격차가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7년 전년보다 5.1% 감소한 1조74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6년부터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를 재정비한 영향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1년 된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를 철수하고, 빈폴 키즈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매출은 줄었지만, 2016년 적자 452억원 등 3년 연속 적자에서 지난해 327억원의 영업이익으로 돌아섰다.

엘에프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늘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4.8% 증가한 1조6020억원, 영업이익은 39.4% 늘어난 1101억원을 기록했다. 비효율 브랜드 청산과 온라인몰 매출 급증 영향으로 풀이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전년보다 8% 늘어난 1조1025억원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54억원으로 전년보다 5.9% 줄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바나나리퍼블릭에 이어 최근 톰보이 키즈 브랜드인 톰키드 등 부진한 브랜드를 정리하는 중이다.

세 곳 모두 브랜드를 정리하고 온라인몰 강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사촌 간이면서 대학에서 모두 디자인을 전공한 이서현 사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서로의 전통적인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의류 제조 기반의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유통에, 해외 브랜드 소싱 등 유통에 바탕을 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제조에 손을 뻗치고 있다. 의류 제조업과 유통업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최근 의류업계의 경향과도 유사하다. 글로벌 유통업체 아마존도 지난해 주문형 의류생산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제조업에 유통의 디엔에이(DNA)까지 더하려는 시도는 이서현 사장이 주도했다. 2012년 2월 론칭한 스파(SPA, 제조·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는 브랜드와 매장 콘셉트, 제품 디자인까지 이서현 사장이 관여하고 애정을 쏟았다. 더불어 오프라인 편집숍인 비이커를 선보였고, 이어 자사몰인 에스에스에프(SSF)샵을 비롯한 온라인 유통망도 강화했다. 이 가운데 이서현 사장의 야심작으로 꼽히던 에잇세컨즈는 2012년 브랜드 론칭 뒤 첫해 약 6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그 다음해 매출은 2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그 뒤 성장세는 주춤해 지난해 에잇세컨즈 매출은 1800억원 수준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패션과 상사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포부도 희미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상황은 나빠졌다. 중국 사업도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영향을 받아 고전하는 중이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수십억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패션 마케팅 전문가는 “에잇세컨즈는 선진적인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유통에도 노하우를 쌓았어야 했는데, 그 부분의 전략과 인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에잇세컨즈의 부진은 안팎에서 모두 다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이서현 사장이 만든 브랜드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에잇세컨즈는 지난해 중형 매장(180~200평) 출점을 강화하면서 효율적인 브랜드 운영을 지속했고, 이 영향으로 지난해 매출이 15%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20%가량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글로벌 스파도 생산망과 영업망을 갖추려고 수십년을 노력했다. 에잇세컨즈도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하는 면이 있는데, 무조건 몇년 안에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다”며 “올해에도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빠른 안착과 정상화를 위해 힘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백화점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정 총괄사장은 2009년 신세계백화점 경영에 합류한 뒤 수입 의류 브랜드의 유치에 힘을 쏟아왔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백화점 등에 공급하는 해외 브랜드 운영 등을 도맡고 있다. 최근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수입 브랜드 유통에 더해 제품 기획과 제조에도 적극적이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 상품인 데이즈의 오디엠(ODM, 제조업자 개발생산)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맡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의류부문 중 제조 매출 비중이 70%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또 백화점의 자체 브랜드 상품 영역을 속옷까지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유통과 국외 브랜드 소싱(구매)에 전문성을 둔 신세계그룹이 제조에까지 손을 뻗치는 것은 당장 매출 규모를 늘리기에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성장의 ‘질’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기업 계열의 패션업체에 20년가량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데이즈 등 자체 브랜드 공급 물량이 꾸준히 늘어 매출은 늘겠지만, 신세계인터내셔날 입장에서는 이마트 등에 납품하기 때문에 충분한 마진(이익)을 확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이마트와 공동으로 기획하는 과정에 수익 구조에 대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거나, 이마트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달리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구본걸 회장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의류기업들이 부진한 브랜드의 효율화에 나선지는 최근 1~2년 사이지만, 엘에프는 그보다 앞서 5년여 전부터 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움직임은 ‘재무통’인 구본걸 회장의 판단이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회장은 미국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했던 적이 있어 ‘숫자’에 밝고, 패션시장의 하락세를 보다 빨리 감지해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엘에프는 온라인 쇼핑몰 구축에 주력해왔고, 이는 업계의 선구자적 투자였다”며 “2017년 엘에프의 매출 가운데 온라인몰 비중은 22%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이 가운데 70%는 자사몰(엘에프몰) 비중으로 의류업계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엘에프는 자사 온라인몰 성과가 고무적이자 최근에는 생활용품으로까지 취급 품목을 확대하는 중이다. 엘에프 관계자는 “영업이익 증가는 ‘많이 생산해 많이 팔기’보다 ‘적게 생산해 많이 팔자’라는 기조 변화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며 “부진한 브랜드를 철수해 고정비가 많이 드는 매장을 줄이고, 적기 생산 시스템을 가동해 온라인몰의 경쟁력을 강화해 얻을 수 있었던 결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성적에 대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은 크리에이티브디렉터(패션기업에서 디자인·전략 등 총괄 담당), 정유경 총괄사장은 바이어, 구본걸 회장은 경영자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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