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요리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아 다녀온 정관 스님이 지난 1일 오후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이 출연한 미국 엔터테인먼트사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셰프의 테이블>(시즌 3)이 베를린영화제 다큐 부문 후보작으로 초청되면서 베를린영화제에 다녀왔다. 장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사찰요리로 베를린영화제 다녀온 정관 스님
사찰요리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아 다녀온 정관 스님이 지난 1일 오후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이 출연한 미국 엔터테인먼트사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셰프의 테이블>(시즌 3)이 베를린영화제 다큐 부문 후보작으로 초청되면서 베를린영화제에 다녀왔다. 장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일상에 내몰린 현대인은 밥을 열량의 건전지쯤으로 생각합니다. ‘먹는다’는 동사는 ‘때운다’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찰요리는 진흙에 핀 연꽃 같습니다. 그 짙은 향기를 우리보다 서양인이 먼저 알아봤습니다. 2월 베를린영화제를 다녀온 정관 스님과 전남 장성군 천진암에서 점심공양을 함께해보았습니다. 깨달음의 밥상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오묘했습니다.
탐식의 시대다. 원초적 본능을 감추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갔다. 남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요염하게 클로즈업하는 ‘먹방’이 대세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먹방이 산해진미를 논할 때 많은 이들은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의 포장을 뜯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반치킨과 피자가 특별식인 시대다. ‘먹는다’는 동사는 ‘때운다’에 자리를 양보했고, ‘집밥’은 ‘순수’나 ‘영원’처럼 주변을 숙연케 하는 단어가 됐다.
사찰음식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보면 참 낯선 음식이다. 음식이 단순히 열량을 채우거나 자기과시의 도구로 쓰이는 시대에 깨달음을 좇는 사찰음식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맵고 짠 맛에 길든 사람들은 그 맛이 밍밍하다고 투덜댈지 모른다. 백양사 천진암을 총괄하는 정관 스님은 그런 낯선 음식을 만드는 사람 중 한명이다. 내 집의 파랑새를 몰라보듯 사찰음식의 가치는 우리보다 서양인이 먼저 알아봤다.
정관 스님은 지난 2월 베를린을 다녀왔다. 그가 출연한 <셰프의 테이블>(시즌 3)이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서다. 음식전문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드 겔브가 제작·연출한 미국의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 각국의 요리사를 만나 요리와 인생 그리고 철학을 조명해왔다. 이 작품은 에미상 후보로도 올라 있다.
정관 스님은 요리책도 쓴 적이 없고 사찰음식점을 연 적도 없다. 요즘 먹방의 셰프들처럼 다투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세계 최대 영상회사인 넷플릭스는 그런 정관 스님을 어떻게 선택한 것일까? 그의 요리가 어떤 점이 특별했기 때문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1일 전남 장성군 백암산 아래에 자리잡은 천진암을 다녀왔다.
큰 바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741m 백암산은 기운이 넘쳐났다. 천진암은 주봉인 백학봉 아래 있었다. 암자 뒤로는 100년이 족히 넘었을 비자나무숲이 있었다. 암자 동쪽 계곡을 끼고 있는 선방 돌담 끝 언덕으로는 대나무숲이 이어져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에 대나무가 노래를 불렀다. 신발을 벗고 대숲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굳이 음식을 먹지 않아도 기운을 북돋아주는 곳이었다.
넋을 놓고 있는 서울촌놈에게 스님은 인도네시아 커피인 만델링을 내놓았다. 만델링은 바디감이 좋은데다 독특한 향기가 나서 바리스타의 능력을 보여주는 커피의 하나다. 스님의 만델링에서는 구수한 집간장 맛이 났다. 제대로 내린 만델링 맛이었다.
셰프 아니라 수행자인 정관 스님 베를린영화제 다큐부문 초청받아 미 스타 셰프 리페르와 인연으로 ‘셰프의 테이블 3’에 출연 계기
자신 드러내는 일반 셰프와 달리 깨달음 향한 수행자 음식 보여 “음식, 몸과 마음 하나로 잇죠” 평론가 “숭고한 철학자의 요리”
꼬리를 문 인연, 다큐 출연으로 이어져
-<셰프의 테이블>에는 어떻게 출연하시게 된 건가요?
“먼저 미국 요리사 에리크 리페르(52)를 이야기해야 돼요. 2014년 9월 그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소개하는 미국 피비에스(PBS) 방송 <아베크 에리크>(Avec Eric)라는 다큐멘터리를 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 6개국을 돌며 촬영 중이었어요. 그는 불교 신자예요. 그래서 한국 사찰요리에 관심이 있었죠. 맨 먼저 한국관광공사가 이를 알려왔고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백양사 천진암과 통도사·진관사를 에리크에게 소개해줬죠. 그래서 그가 천진암에 오게 됐죠.”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리크 리페르는 17살 때부터 프랑스의 400년 전통의 레스토랑인 ‘라 투르 다르장’(La Tour d'Argent)에서 요리를 시작해 1994년부터는 미국 뉴욕의 ‘르 베르나르댕’(Le Bernardin)에 합류해 이곳의 대표 겸 요리사로 일해왔다. 그의 식당은 미슐랭의 최고점인 별 세 개를 받았고 그는 ‘요리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았다.
-리페르가 천진암에 대해서는 ‘어머니 같은 원초적인 전통을 느꼈다’고 평가했더군요.
“에리크는 천진암에 3일 있었어요. 같이 텃밭에서 채소를 캐고, 그리고 음식 재료 다듬고 요리를 했죠. 엿기름으로 조청도 직접 만들고 제가 담근 된장·간장을 보여줬죠. 텃밭은 5년 전 제가 산비탈을 직접 개간한 거예요. 울타리도 없어 멧돼지가 가끔 파헤치고 벌레도 안 잡는 그런 밭이에요. 비료도 약도 안 쳐요. 그런 밭에서 채소를 직접 키워서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고 모태 같은 음식이라는 말을 했을 거예요.”
-사흘 동안 무슨 말씀을 나누셨나요?
“불교 이야기를 했죠. 해산물 레스토랑을 하는 에리크는 생업으로 생명을 앗는 행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불교에 귀의했고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죠. 그는 ‘당신은 살생을 하지 않지 않느냐’며 사찰요리를 하는 저를 부러워하더군요.”
-스님들은 살생을 안 하잖아요?
“아니죠. 저희도 살생을 하죠. 풀도 생명이니까요. 뽑는 순간 시들해지니까. 우리는 모두 생명을 먹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에리크에게 나도 눈을 마주쳐야 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살생의 연을 짓고 있는 거다. 그러니 당신이나 나나 참회하고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식물도 생명이며 나도 살생을 하니 참회하며 수행해야 한다. 속세의 범부가 듣기에도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다. 매일 명상을 하는 불교 신자 리페르는 아마 더 많은 걸 느꼈을 것이다. 리페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관에게 음식 재료에 대한 존중과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웠다”며 “그를 만난 뒤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리페르는 그 다음해 2월 <아베크 에리크>가 완성된 뒤 정관 스님을 자신의 뉴욕 레스토랑으로 초청했다. 도반의 초청에 정관 스님은 흔쾌히 응했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이 과정을 좀더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정관의 요리에 압도된 에리크는 친구들에게 정관을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미국의 유명 셰프인 에리크 리페르는 2015년 8월 정관 스님과 함께 천진암에서 머물며 함께 요리하며 불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정관에게서 요리 기술보다는 음식을 대하는 철학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에리크 리페르 인스타그램 갈무리
-뉴욕에 가서는 무슨 요리를 하셨나요? 특별히 준비한 레시피가 있었나요?
“아뇨, 여기서 똑같이 했죠. 천진암 탱자나무의 탱자로 만든 청을 가져갔어요. 그 청을 고명으로 얹은 국수하고 장아찌 등 몇가지 음식을 내놓았죠.”
-외국인들은 우리랑 입맛이 다를 텐데 반응이 어땠나요?
“재미있는 게 외국인이라도 반응은 같아요. 입맛은 하나예요. 내가 맛있으면 다른 사람도 맛있어요. 그날 온 외국인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일단 제가 가져간 탱자청이 천진암에 있는 500살 나무에서 자란 탱자를 청으로 담가 3년을 묵힌 거예요. 된장·간장도 전부 직접 담가 몇년씩 묵힌 것이었죠. 거기다 불교요리의 전통이 1700년이 넘었으니까요. 이런 스토리가 그들을 매료시킨 거 같아요.”
외국 평론가들, 사찰요리의 스토리에 취하다
리페르가 셔터를 내리고 초대한 20명 가운데는 <뉴욕 타임스> 기자였던 제프 고디니어가 있었다. 그는 정관 스님의 음식을 먹자마자 “한국에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2015년 여름 아일랜드 출신의 사진작가와 함께 4박5일 천진암에 머물다 돌아가 2015년 10월 중순 <뉴욕 타임스>에 기사를 썼다.
고디니어는 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요리를 먹으려면 뉴욕이나 덴마크로 갈 게 아니라 천진암으로 가라”고 평했다. 정관 스님의 요리를 ‘철학자의 요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맨 처음 리페르가 뉴욕 레스토랑으로 정관 스님의 요리를 먹으러 오라고 했을 때 물기 많은 콩국쯤으로 뻔할 것이라 생각하고 거절했다. 리페르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정관의 요리를 접했던 그는 “관(정관의 정을 성으로 생각한 듯하다)의 요리가 너무 우아해 초대받은 사람이 아무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입안에 넣어보면 확실한 맛이 긴 여운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겔브는 그 기사를 읽고 그 다음해 5월 천진암에 와서 다큐를 찍었다. 인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셈이다.
-서양인들이 스님 요리를 왜 좋아할까요?
“선미(禪味)죠. 내 선험적인 관념에 나중에 느낀 에너지와 생각을 섞은 게 나잖아요. 내가 아직 법은 통하지 않아 법 이야기는 하지 못하지만 기도하고 목탁 치면서 느낀 건 이야기할 수 있죠. 내가 한 음식으로 그 선맛을 이야기하죠. 서양인들도 이심전심으로 그걸 느끼는 거죠.”
-수행자로서 다큐 촬영을 꺼리지는 않았나요?
“꺼리지는 않죠. 저는 인연 관계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는 않아요. 다만 겔브 감독이 연락을 했을 때 나는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거절했었죠. 그래도 다큐를 찍겠다면 4월 초파일에 찍자. 암자에서 먹는 발우는 수행자의 음식이고 초파일은 대중음식이니까 이걸 다 찍으면 진짜 사찰음식을 찍는 거라고 이야기했죠. 제 요리보다는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죠.”
<셰프의 테이블>(시즌 3) 예고편. 정관 스님의 발우공양이 첫 화면으로 쓰이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셰프의 테이블> 제작진은 지난해 5월 부처님 오신 날 전후로 보름 동안 천진암에 머물며 정관 스님의 음식을 기록했다. 58분 동안 이어지는 그의 에피소드는 <셰프의 테이블 3>의 첫 에피소드로 소개됐다. 이번 시즌 3의 포스터는 스님이 만든 연잎차 사진이다. 넷플릭스 누리집에 있는 <세프의 테이블> 시즌 1, 2의 포스터도 이 사진을 쓰고 있다. 그의 에피소드의 무게를 알게 한다.
정관 스님이 만든 3색 연근장아찌.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3> 화면 갈무리
정관 스님이 세계 요리사들에게 놀라움을 준 까닭은 자신이 직접 밭을 일구고 채집한 재료로 만드는 과정과 맛 때문만이 아니다. 보통 요리사들은 요리를 통해 자신(에고)을 강렬하게 드러내지만 정관은 반대로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는 어떤 경쟁도 하지 않는다. <셰프의 테이블 3>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무힌이나 독일의 팀 라우에와는 다르다. 특히 독일 베를린 빈민가 뒷골목 출신인 라우에는 “요리는 한방이 있어야 하고 도발적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17살에 출가해 1975년에 사미계를 받고 40년 넘게 수행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음식이 왜 중요한가요?
“참선하는 사람은 예민합니다. 몸이 편해야 고요히 앉아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요. 속이 불편하면 몸이 뒤틀립니다. 음식은 정신과 육체를 합일시킵니다. 불교 계율의 3분의 1은 탐식을 경계하는 내용입니다. 수행의 70%는 음식입니다. 도는 음식과 함께 가는 겁니다.”
-현실의 대중들은 탐식에 빠져 있습니다. 맵고 짠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는 먹는 거, 사는 거에 치열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예요. 음식도 치열하죠. 그러니까 먹방이 나오고 탐식을 하게 되는 거죠. 음식이 나의 마음과 정신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스턴트 음식을 세끼에서 두끼로, 두끼에서 한끼로 줄여야 합니다.”
먹기만 해도 착해지는 스님표 공양
정관 스님과 함께 점심공양을 했다. 스님 요리는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소박했지만 반들반들 윤이 났다. 메밀옷을 입힌 곰피전과 물김된장국은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갓을 넣어 보랏빛을 이끌어낸 물김치는 색깔만큼 상쾌했다. 미식가들이 따지는 돌산갓이냐 아니냐는 스님의 밥상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도시의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혀의 허물이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밥상은 철학자의 현학적인 맛도, 엄마밥의 그리운 맛도 아니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섬세한 맛이었다.
공양을 마친 뒤 정관 스님의 간장 맛을 보고 싶다고 청했다. <뉴욕 타임스> 고디니어는 다큐에서 “마늘도 유제품도 고기도 쓰지 않는 사찰요리의 맛의 비밀은 시간”이라며 “수백년의 지혜인 발효음식 간장·된장·김치가 강렬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정관 스님 역시 간장을 중요시한다. 간장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고 고백할 정도다. 심지어 그는 간장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그가 생명줄이라고도 부르는 간장을 맛보고 싶었다.
스님과 함께 표고버섯을 키우는 참나무 밑동이 놓인 비자나무숲을 지나 공양간 옆 장독대에 올랐다. 장독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마침 절 살림을 도와주는 중년 여신도가 10년 묵은 간장을 깔때기를 이용해서 2.0ℓ 삼다수 병에 담고 있었다. 여신도가 간장을 다 담고 독의 뚜껑을 닫고 장독대에서 내려간 걸 확인한 정관 스님은 장독 뚜껑 위에 떨어진 간장 방울을 “이 아까운 걸”이라며 약지로 찍어 먹었다. 나도 함께 손가락으로 그 간장을 맛봤다. 다른 집간장과 달리 맛이 달았다. 간장인데 간장이 아니었다. “스님, 간장이 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소리에 정관 스님이 껄껄 웃었다. 천진암 장독 뚜껑 위 간장 방울에서 진한 봄꽃 향기가 났다.
장성/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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