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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5 14:24 수정 : 2019.10.05 14:33

[토요판] 인터뷰
한국방송(KBS) ‘동네 한바퀴’ 김소현 작가

탤런트 김영철의 동네여행
시청률 6~8%, 40대 시청층
제면소·콩나물밥집 일상 풍경
“보석 같은 감동은 우연에서”

“걸으며 소중한 것들 되찾기”
5개팀이 한달에 한번씩 촬영
하루 12시간 1만9천보 걸어
“동네는 소리와 냄새로 기억”

한국방송(KBS) <동네 한바퀴>를 제작하는 허브넷의 김소현 작가가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본사 3층 화단에서 공덕동 골목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중랑구 한 골목길. 60년 된 제면기가 둔탁한 기계음을 내며 힘겹게 돌아간다. 올해 여든인 이광희씨는 기계에서 나온 흰 국숫발들을 나무 대에 걸쳐 가게 앞에 내건다. 국수가게를 인수한 지 40년. 이 시간을 오롯이 이 기계와 호흡을 맞춰왔다. 이씨와 기계가 국수를 뽑아내면 이제 남은 건 햇살과 바람의 몫이다. 골목의 정취는 양념이다. 다 건조한 국수는 일정한 길이로 자른 뒤 신문지에 돌돌 말아 쌓아 놓는다. 잠시 쉬는 시간, 삐걱대는 기계에 기름칠하던 이씨에게 탤런트 김영철씨가 묻는다. “이제 바꿀 때 되지 않았어요?” 기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씨가 겨우 말을 꺼낸다. “이 기계를 보면 ‘같이 늙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이거를 내가 하지 않으면, 이 기계도, 이 기계도….” 여든 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이제 끝이 나겠죠.”

지난 6월 방영된 <한국방송>(KBS)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이하 ‘동네 한바퀴’) 중랑구 편의 한 장면이다. <동네 한바퀴>는 탤런트 김영철씨가 도시의 어느 동네를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네여행 프로그램이다. 특별하지 않은 우리 이웃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감동을 전파하며 일상에 지친 시청자의 몸과 마음을 힐링해준다. 지난해 11월24일 첫 정규방송부터 최근까지 시청률 6~8%(최고시청률 9%)를 유지하고 있다.

<동네 한바퀴>는 외주 프로덕션 허브넷이 제작한다. <동네 한바퀴> 콘셉트에 처음 착안한 기획자는 <한국방송> 프로그램 <티브이(TV)동화 행복한 세상> 작가이자 <브이제이(VJ)특공대>를 만들어낸 허브넷 이미애 대표다. 이 대표의 구상을 전달받은 허브넷 기획본부장 김소현 작가가 제작본부장 김선우 피디(PD)와 손을 잡고 <동네 한바퀴> 첫 편(중림동·만리동)으로 구현해냈다. 김 작가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9월7일~11월10일) 도시건축 부문 특별강연에 초청돼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동네 한바퀴와 도시 이야기’를 주제로 오는 12일 강연한다. 김 작가를 지난달 25일 만났다.

―시청률이 잘 나온다. 주요 시청자층은?

“40대가 많이 본다. ‘동네’에서 자란 세대들 아닌가 싶다. 우리 프로그램이 올드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여행하는 콘셉트다.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여행 그림지도를 넣어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더라도 돌아볼 만한 동네들을 소개해 좋아하는 것 같다.”

―40대가 왜 많이 본다고 생각하나?

“40대는 가정에선 한창 아이를 키우고 사회에선 중심 역할 하느라 바쁜 세대다. 다 변하지만 안 변하고 남은, 20~30년 전 자신들이 머문 옛집들을 다시 둘러보며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것 같다. 선배 작가들이 <동네 한바퀴>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다’고 하더라. 특별하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특별한 감동을 빚어낸다고 한다. 사실 다른 방송이면 전부 불방용 인물들이다.(웃음)”

―사실 심심한 재료로 맛을 내기 더 어렵다.

“눈에 확 띄는 인물이나 사연이 있으면 쉽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감동을 내는 건 힘들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동네 한바퀴>를 만들어준다. 첫 방송 때 김영철씨가 한 그릇 3천원짜리 콩나물밥집을 우연히 발견했다. 주인어머니가 솥에서 커다란 누룽지를 긁어내는데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고는 가게 안쪽에 방 한 칸이 있어 보니 아들 대학 입학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평생 콩나물밥 지어온 어머니에게 아들 사진은 일종의 훈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들 사진과 누룽지로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촬영 일정상 사전에 준비하는 장소도 가지만, 보석 같은 감동은 우연에서 나올 때 훨씬 크다.”

―영상이 특별하다는 평가가 많다.

“남루한 동네 풍경을 시청자 마음에 남는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피디들의 공이 크다. 함께 제작하는 김선우 피디표 영상이 <동네 한바퀴>만의 톤과 색깔을 만들어냈다.”

망원정과 희우정의 차이

김영철씨는 촬영날인 매주 목요일 오전 7시30분부터 오프닝 장면을 찍기 시작해 저녁 7~8시까지 꼬박 12시간 동네 산책에 나선다. 제작진이 촬영날 측정한 걸음 수는 보통 1만9천보가량으로 50층 건물을 올라가는 이동거리라고 한다.

―김영철씨를 내세운 이유는?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씨보다는 약간 젊으면서도 연륜이 있는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영철씨가 교양 프로그램의 로망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우리가 제안해 맞아떨어졌다. 드라마, 영화 외에는 처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종일 동네를 걷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김영철씨가 굉장히 즐겁게 촬영한다. 촬영 앞두고는 술 약속도 안 잡고 일찍 잔다고 한다. 수요일 촬영구성안 읽고, 목요일 촬영하고, 금요일 녹음하니 사흘은 온전히 매여 있다. 김영철씨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선 조폭으로, 드라마 <태조왕건>에선 궁예로 나와 무서운 이미지였지만 <동네 한바퀴> 찍으며 친근한 이미지로 바뀌었다며 좋아한다.”

―기획 의도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살았던 동네의 아름다움, 그리고 보석 같은 사람들을 찾아 도시가 품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것이다. 어떤 동네가 빛나는 건 그 동네에서 성실히 아이들 키우고 자기 일하며 살아온 토박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인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의 한 장면은 무엇인가?

“어릴 때 청파동 골목집에서 자랐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집이 보였다. 어느 날 학교 체육관 5층에서 수업하다 어머니가 마당에서 빨래 너는 모습이 보여 ‘엄마, 엄마’ 하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또 딸기 철이 지난 초여름 엄마가 딸기를 싸게 사서 커다란 다라이(대야)에다 넣고 잼을 만들 때의 딸기잼 향기도 떠오른다. 나에게 동네는 소리와 냄새로 기억된다. 김영철씨도 중림동 호박마을을 다닐 때 그러더라. 이런 곳을 지나가면 ‘영철아, 밥 먹어라’ 하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고.”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5개 팀(각 4명)이 한주씩 돌아가며 만든다. 한 프로그램 만드는 데 딱 한달 걸린다. 윤진규 <한국방송> 피디가 시사 및 정리 등 제작 마지막 단계를 책임진다. 김영철씨 동선은 30분 단위로 움직이고, 한 회당 10개 아이템을 찍는다. 촬영은 사전 섭외도 있고, 현장 섭외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제작진이 고생한 만큼 시청자 눈에 보이는 방송은 더 편안해지는 것 같다.”

―생각보다 어딘가를 천천히 걸을 일이 많지 않다.

“차 타고 다니면 앞만 주시하니 옆을 못 본다. 놓치는 게 많다. 가까이 있지만 지나치고 살게 된다. 하지만 항상 그것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소중한 것들을 되찾게 하고 싶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 보면 오른쪽에 망원정이 나온다. 그런데 반대편 주택가로 올라가면 기쁜 비가 내린다는 뜻의 ‘희우정’이란 현판이 있다. 세종이 가뭄으로 근심할 때 이곳에 오르자 단비가 내려 기쁜 마음에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걷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생긴다.”

탤런트 김영철씨가 지난해 11월 방영된 <동네 한바퀴> 마포구 망원동 편에서 망원시장 한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구입한 뒤 검은색 비닐봉지를 건네받고 있다. 김씨는 일주일에 사흘을 <동네 한바퀴> 제작 참여로 보낸다. 허브넷 제공

김영철씨 별명은 ‘면돌이’

―동네 섭외 기준은?

“콘셉트가 도시기행이니까 서울을 비롯해 전국 도시를 한 회 약 2~3개 동네 범주로 돈다. 옛 정취가 살아 있으면서도 변화 중인 동네의 원도심이 우리 프로그램의 주무대다. 김영철씨는 그런 동네에서 오랫동안 성실히 장사해온 작고 소박한 집을 좋아한다.”

―먹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밥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행복을 준다. 우리 프로그램에는 세련된 밥집보다는 어머니가 해주는 노포가 많이 나온다. 물론 젊은 사람이 하는 밥집도 스토리가 있다면 좋다. <한국인의 밥상>이 공간의 밥이라면, <동네 한바퀴>는 시간의 밥이다. 돌이켜보면 밥보다 면 식당이 많이 나온다. 김영철씨 별명이 ‘면돌이’라서 그렇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대구 칠성동의 100년 된 집에 살던 88살 어머니다. 일요일 오전 9시에 골목길을 다니다가 이층 창문이 붓글씨를 쓴 한지로 도배되다시피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벨을 눌렀더니 그 어머니가 나왔다. 7남매 출가시키고 미혼인 막내아들과 사는 그분은 주민센터에서 서예를 배워 열심히 붓글씨를 쓴다고 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평생 자식 키우다 나이 들어서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어디서 배울 기회도 없다. 그분을 보다가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느 날 딸이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며 사진을 보내줬는데, 생각보다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 원래 꿈이었다고 하시더라. 나는 그때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동네 한바퀴> 마지막 장면은 늘 김영철씨가 찾은 장소들을 한장의 그림지도로 내보낸다. 그걸 우리 어머니에게 맡겼다. 프로그램 말미 스태프 자막에 일러스트로 어머니 이름이 올라간다. 어머니는 요즘 그림지도 그리는 작업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한다. 무언가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행복감 아닌가 싶다.”

―<동네 한바퀴>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동네를 묵묵히 지키며 늙어가는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 그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 그 아이들이 또 부모가 돼 낳은 아이들, 그런 풍경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게 우리 프로그램이 해야 할 일이다. 큰 길가에서 몇 발자국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대로로 표상되는 서울 풍경은 굉장히 발전해 있지만 그 이면의 골목길은 옛날 모습 그대로인 곳이 많다. 자식을 키워 좋은 곳에 보내놓고 아직 ‘이 동네가 좋다’며 옛집을 지키는 분들이 위대해 보인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속도의 시대, 느림의 재미

2009년 노르웨이에선 공영방송 <엔에르코>(NRK)의 <베르겐 기차 여행>이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 맨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기차가 달리는 7시간 동안 찍은 장면을 통째로 내보냈다. 뜻밖에 시청률이 15%까지 치솟았다. 갈등도 자극도 없었지만 일상의 속도로 흘러가는 기차 여행에 시청자들이 자신을 투영해 편안함을 갖게 된 효과가 인기 비결로 꼽혔다.

<베르겐 기차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 이웃의 삶 또는 일상의 풍경을 진행자가 찾아 나서거나, 관찰카메라로 날것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프로그램들이 시청자 관심을 끌고 있다. 궁금하지만 어색해서 다가가지 못했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 속도의 시대에 잠시 쉬어 귀 기울이는 다른 사람의 삶이 재미를 주는 요소다. <한국방송>(KBS)에는 <동네 한바퀴> 외에 <한국인의 밥상>, <다큐멘터리 3일>이 있다. 2011년 1월6일 처음 방송한 <한국인의 밥상>(시청률 6~8%)은 탤런트 최불암씨가 지역 음식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문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푸드멘터리’다. 올해로 13년째를 맞는 <다큐멘터리 3일>(시청률 3~5%)은 특정한 공간에서 72시간 동안 촬영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대의 자화상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다. <티브이엔>(tvN)의 <유 키즈 온 더 블럭>은 방송인 유재석·조세호씨가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는 사람 여행’이란 콘셉트로 특정 공간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뒤 퀴즈를 맞히면 상금을 준다. <제이티비시>(JTBC) <한끼줍쇼>는 방송인 강호동·이경규씨가 저녁 시간에 평범한 가정에 예고 없이 찾아가 밥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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