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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7:28 수정 : 2005.02.11 17:28

흙 한줌에 깃든 ‘생명의 갈래나무’
교과서속 통설 헤집는 유쾌한 뒤집기

좋은 책은 결국 독자가 알아본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에선, 과연 그러냐고 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좋은 책과 독자, 좋은 책과 시장은 어떤 관계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 팔리는 책은 잘 팔릴 이유가 너무도 많아 보이고, 안 팔리는 책은 안 팔리는 까닭이 또 너무 많아 보인다. 나중에 말이다. 사람들은 곧잘, ‘그 책, 너만 좋아하는 책 아냐?’ 하고 묻는다. <흙 한 자밤의 우주>(데이비드 울프 지음)는 나도 좋아하고 너도 좋아할 책이라고 믿었다.

자밤.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낱말은 수줍은 표정에 나직한 목소리의 옮긴이 염영록 선생에게 처음 배웠지 싶다. 자밤이라. 울림이 좋네. 자밤, 자밤. 원제 ‘땅속 세계 이야기’는 그 순간 ‘흙 한 자밤의 우주’가 되었다.

한겨울이라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뒤뜰에 나가 풀뿌리 언저리에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쑤셔넣고 흙 한 자밤을 집어올려 보라. 여러분은 아마 거의 10억 마리에 달하는, 하지만 우리에게 단 1퍼센트도 알려져 있지 않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을 들고 있는 셈이다. 그것들은 1만 개 정도의 서로 구별되는 미생물 종일 것이고, 그 대부분은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거나, 채 분류되지도 않았거나, 제대로 이해되지도 못한 미생물들일 것이다.”

비옥한 흙 한 줌에는 지구상의 사람 수보다 많은 생물체가 산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요사이 한국에서 무척이나 바쁜 일정을 보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한마디. “우리는 발 아래 흙에 대해서보다 천체들의 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땅속으로 빠져든다면, 먼저 생명체가 태양에너지에 의존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유기체라면 삶은 달걀처럼 요리되고 말 고온고압에서도 번식을 계속하는 호극성(好極性) 생물을 살필 일. 토양미생물학의 연구성과로는, 생명의 기원이 교과서의 통설처럼 ‘얕은 바다’가 아니라 땅속 깊은 곳이었으리라는 것. 달과 화성과 태양계를 가로지르며 생명의 기원을 묻고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 인류의 노력은 어쩌면 바로 우리 발밑의 땅속에서 새로운 전기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흙 한 자밤의 우주>는 나아가 식물계와 동물계, 그리고 그 ‘나머지’ 미생물로 나누었던 ‘생명의 갈래나무’를 뒤집어 다시 그린다. ‘나머지’가 주인이고, 주인 행세를 해온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은 그 나무의 스무 개 가지 중 진핵생물 영역의 잔가지 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유쾌한 전복. 천문학에서 우주와 지구, 인간의 관계를 뒤집어놓았던 코페르니쿠스는 지금 마그마가 끓는 땅속 깊은 곳의 상상하기 어려운 압력과 온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생명의 개념을 뒤집고 있다는 말씀이다.

생명. 언제나 가장 큰 것. 한겨울, 옮긴이의 말처럼 땅 위로 뻗은 가지보다도 겯게, 땅 위로 솟은 키보다도 깊게 땅속을 뻗어 있을 뿌리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계절. 한 생명이 온 생명을 대신하여 마를 때, 나는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에서 파릇한 봄빛 머금은 흙 한 자밤을 들어올린다.

답의 원소거나 부분집합이겠지만, 좋은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찾아주는 책이다. 그런 책은, 그래서 안 아깝다. 돈도 시간도. 으음, 그래도 이 책이 조금 안타깝긴 하다. 몇 자밤이나 되나 싶은 반향이. 하지만, 한 자밤에 우주까지 담겨 있다는데? 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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