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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7:32 수정 : 2005.02.11 17:32

쾌락의 혼돈 \

돈 부자 사회 쾌락 탐욕…
도덕 압도한 ‘물신의 시대’
지방지 편찬자 눈 빌려
명조 흥망성쇠 내면탐사
중국 암흑기 주장 뒤집어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명 제국이 해외에 등을 돌림으로써 세계 패권을 유럽에 넘겨주었다고 논한 바 있다. 개빈 멘지스도 케네디의 견해에 동조한다. 그는 <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사계절)에서 해상제국을 꿈꾸었던 영락제의 치세가 막을 내린 후 중국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오랜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고 말한다. 그는 장담한다. 만일 영락제를 계승한 황제들이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았다면,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연구소 중국학과장인 티모시 브룩의 책 <쾌락의 혼돈>은 이런 주장들을 뒤집는다. 브룩은 쩡허(정화·鄭和)의 해외원정이 종말을 고한 후에도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여전히 중국이었다고 못박는다. 명 제국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방불케 할 만큼 극단적인 상업문화가 만개했다. 성을 비롯한 만물이 상품화되었고, 쾌락과 사치 그리고 탐욕이 활개쳤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게 멀었고, 도덕은 돈을 향한 광기에 굴복했다. 멘지스가 말한 것처럼 명대는 절망적인 암흑기가 아니라 휘황찬란한 물신의 시대였다.

이 책은 명대 상업과 문화의 장기지속적 구조를 그려나간다. 한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면서도 다른 통사처럼 앙상한 뼈대만 대충 훑고 지나가지 않는다. 미시사에 버금갈 만큼 현장감과 생동감이 살아 있다. 그 비법은 이 책의 독특한 서사전략에 있다. 저자는 서현 지역의 지방지를 편찬했던 장타오의 눈을 빌어 명대의 내면을 탐사한다. 왕조의 부침을 계절에 빗댄 장타오의 은유에 따라 명대를 전기(겨울), 중기(봄), 후기(여름)로 나누고 왕조의 종말을 가을로 배치했는데, 이 책에 근사한 문학적 색채를 입힌다.

장타오에게 명조의 겨울은 자급자족적인 농촌공동체의 이상에 가까웠다. 태조 홍무제는 자연촌락을 조직하고 교통·통신수단을 정비하면서 국가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국가의 뜻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땅을 찾아 나섰고 굶주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떠났다. 떠돌이 소매상들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잘 짜여진 수송체계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과 상업발전을 뒷받침했다.

봄이 다가오자 농촌 공동체의 질서는 금이 갔다. 세금이 은납으로 바뀌고, 상품의 이동과 부의 유동성이 증가했다. 경제적인 잇속을 챙기는 무리들이 거리의 풍경을 바꾸었다. 국가는 상업의 성장을 방치했다. 도시의 생활양식이 농촌을 압도해갔다. 과거를 통해 지식 엘리트로 자리잡은 신사층은 유교적 도덕질서가 무너져 가는 세태를 푸념하는 데 열을 올렸다.

왕조의 여름은 쾌락과 사치와 물신에 대한 열정으로 지글지글 타올랐다. 은이 세상의 독재자로 군림했고, 세련된 문화취향에 대한 갈망이 엘리트 계층을 유혹했다. 상인과 신사층은 지위경쟁에 돌입했다. 수만 권의 장서, 우아한 정원, 고급 가구, 품격 있는 도자기 등이 신분의 상징으로 포장되었다. 성적 욕망도 한몫 거들었다. 매춘이 성행했을 뿐만 아니라, 낭만적 사랑에 대한 숭배열이 뜨거웠고, 동성애가 지위 과시의 수단으로 탈바꿈했다.


명 왕조의 몰락기인 가을에는 장타오의 말처럼 ‘배신의 악마’인 ‘귀역’이 도사리고 있었다. 명 제국은 만주족의 급습과 리쯔청(이자성·李自成)의 반란에 무릎을 꿇었지만, 신사층은 극한적인 왕조 교체기에도 살아남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 연결망을 이용해 시장경제에 적응했고, 상인층과 결합하면서 다음 왕조에서도 지배권을 이어갔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지식 엘리트와 상업 엘리트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찰한 대목이다. 신사층은 무절제한 이익과 쾌락의 추구를 개탄했지만, 상업 번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과시적 소비와 구별짓기 전략으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경쟁자와 선을 그으려 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간파한 것처럼, 예술취향과 문화소비가 사회 계급적 차이를 정당화했다.

황런위는 중국이 수량적으로 관리될 수 없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지식세계에도 적용될 법하다. 규모를 짐작할 수 없는 영토와 인구, 기록은 거기에 접근하는 이들을 좌절시킬 만한데, 이 책은 능란한 솜씨로 한 시대의 정신을 추체험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처럼 유려한 필치로 우리 역사를 증언할 역사가를 만나게 될까? 이 책이 부럽기만 한 까닭이 여기 있다. 박천홍/출판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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