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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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심주의’난도질 티모시 브룩의 <쾌락의 혼돈>이 근현대 이전 중국이 세계 최고수준의 선진국이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라면, 영국의 국제관계학자 존스 엠 홉슨의 책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를 넘어 서양, 곧 유럽 이외의 지역들이 오랫 동안 서양보다 한 수 높은 문명을 유지해왔으며 유럽은 이들이 전해준 문명의 과실을 얻어먹어온 후진지역이었음을 역설하는 책이다. 홉슨은 유럽은 능동적이고 합리적·민주적인 반면에 동양은 수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전제적인 체제 속에서 낙후되고 말았다는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첨병이 바로 ‘유럽 중심주의’, 그리고 이 유럽 중심주의가 만들어내 전세계에 퍼뜨린 ‘조작된 역사’라고 주장한다. 1500년께 서양은 세계를 주도하는 지역으로 떠올랐고, 이후 세계를 주름잡은 강국은 예외없이 유럽에서 나왔으며 그 저력의 바탕이 앞선 ‘경제력’이란 역사인식은 한마디로 유럽이 ‘침소봉대’, ‘아전인수’, ‘자가당착’으로 역사를 왜곡해 만들어낸 허상이란 것이다. 지은이는 다양한 논거를 통해 주류 역사관의 유럽 중심주의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유럽 중심주의는 15세기를 전후해 유럽인만이 막스 베버가 말한 ‘끊임없는 합리성 추구’와 ‘세계정복 윤리’를 발전시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서양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유럽 중심주의가 내세우는 것들, 곧 지금의 자본주의를 낳은 합리성과 민주주의가 16~20세기 사이의 혁신기 동안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꼼꼼하게 나열하고 있다. 동시에 이 시기 동양이 전제주의나 비합리성 때문에 무능력해졌다는 해석 역시 거짓 논리라고 논박한다. 당시 유럽 역시 전근대적이고 전제적인 정치체제와 비민주적인 사회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유럽이 최근 19~20세기에 이룬 성과를 그 이전으로 확대해 덧씌웠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돋보이는 점은 이처럼 유럽 중심주의를 반박하고 동양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중국과 일본 등 몇몇 나라만을 증거로 드는 또다른 고정관념과 중심주의를 어느 정도 탈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유럽 중심주의 역사에서 말하듯 유럽이 동양을 발견함으로써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세계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미 6세기께부터 세계화는 이뤄져 있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그 주역이 아프리카와 이슬람의 선구자들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유럽 중심주의가 그 역할을 무시하거나 역사에서 쉽게 누락시켜버리는 동남아시아 지역이 단순히 유럽-중국 무역을 잇는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 어엿한 문화교류의 주역이었던 점도 덧붙이고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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