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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8:02 수정 : 2005.02.11 18:02

소설을 구성하는 게 인물·사건·배경이라지만, 입버릇처럼 외는 순서에서도 밀리듯 ‘배경’은 여백을 채우는 단순 미장센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더더욱 역사적 배경 따위가 아닌 바에야 어느 마을 신작로나 그 집 앞의 낡은 가로등에 주목하며 의미를 되새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물’적 요소가 독자 앞에 놓인 거울처럼 제 현실을 투영하듯 일체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갈등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사건’만큼 인상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2>는 가히 소설 속 ‘배경’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근현대소설 안에 존재하는 건축물과 도시 풍경, 인물의 궤적 따위를 돋을새김해 원작을 재구성했다. 책을 쓴 김정동 교수(건축학 박사)는 이미 앞선 저서 <일본 속의 한국 근대사 현장을 찾아서 1, 2>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따위에서 미시적 관찰을 통한 시대와 문화 읽기를 줄곧 이어왔다.

가령 이인직의 <귀의 성>을 보면 이렇다. 1900년대 전후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이 신소설에서는 춘천-서울-부산-원산을 거쳐 급기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인물의 발자국이 새겨져있다. 몰락한 양반인 춘천의 강동지는 무남독녀를 서울 김 승지의 첩으로 보낸다. 돈 욕심은 물론이거니와 딸 덕에 서울 구경도 하고 싶었던 요량이었다. 그 때 서울은 “만호천문(萬戶千門)이 낱낱이 열리고 구매 장안에 사람이 물 끓듯 하는 곳”이라질 않던가. 그러나 남산 도동에 터를 잡은 딸 길순이는 김 승지 본처의 계략에 의해 살해당한다. 당시 남산 쪽 복사골에 천지로 핀 복사꽃과 과목밭을 구경하는 사람을 그저 넋 두고 구경했을 길순이었다. 강동지가 딸의 시신을 찾아 봉은사로 가던 길은 지금 서빙고에서 반포대교를 건너는 길이다. 아셈타워를 비롯해 마천루가 즐비한 그 일대, “고목이 굼틀어져 하늘을 닿았고 봄풀이 우거졌던 곳”이었다. 강동지는 서울, 부산을 오가며 살해자들을 응징하는데, 복수의 시간을 줄인 건 때마침 개통(1905년)한 경부선이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잠적하는데 법망을 피한 도주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허욕을 용서할 수 없었던 자책의 연장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망이 된 소설은 모두 ‘해방 전후’라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한설야의 <과도기>, 주요섭의 <구름을 잡으려고> 등부터 해방 뒤 황순원의 <술>,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까지 공간의 흐름을 좇으면서 지은이는 20세기 초 60여년의 한국 풍경사를 이야기한 셈이다. 찰나에 고깃고깃 우리의 근대화가 강제될 때 풍경은 혼재하고 급변했다. 마치 덕수궁과 운현궁이 결혼식장으로,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댄스장이 들어섰던 것처럼. 지은이는 120여장의 사진과 함께 개인적 이야기도 양념처럼 넣어 구술하듯 문장을 잇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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