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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8:07 수정 : 2005.02.11 18:07

정신현상학1·2 \

서구 근대 철학이 구현한 ‘근대성’의 정점에 있는 것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0)이다. 헤겔 철학은 근대성을 철학으로 체험할 때 반드시 등정해야 할 거대한 산맥이다. 그 산맥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게 솟은 봉우리가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이다. 이 압도적인 사유의 구조물이 국내 헤겔 연구의 권위자 임석진 명지대 명예교수의 새로운 번역으로 나왔다. 임 교수는 과거 두 차례 〈정신현상학〉을 번역한 바 있다. 1980년에 지식산업사에서 첫 번역본을 냈고, 1987년 한길사에서 개정판을 냈다. 초판본이 직역 중심이었다면, 개정판은 의역 중심이었다. 이번에 나온 세 번째 번역본은 직역과 의역의 두 번역 방식을 절충하고 종합하는 제3의 방식을 택했다. 25년에 걸친 연구와 고투 끝에 나온 ‘한국어 결정판’이라는 평가가 한국헤겔학회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번 번역판의 특징은 그동안 반성 없이 수용해 왔던 일본어 번역 용어들을 한국인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들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일본어 번역어로 통용돼 오던 ‘즉자’(Ansich), ‘대자’(F rsich), ‘즉자대자’(An-und-f rsich)와 같은 핵심 개념어를 일상어로 풀었다. ‘즉자’는 자기의 능력·소질이 아직 발현·전개되지 않은 무자각의 상태라는 본디 뜻을 살려 ‘본래적인 것’ ‘자체적인 것’ 따위로 바꿨고, ‘대자’는 구별·분열·모순·부정·소외와 같은 다양한 자기 변화와 생성의 계기를 지닌 자각적 상태를 가리키는 만큼, ‘자각적인 것’ ‘의식화된 것’ 따위로 옮겼다. 이 두 요소가 종합되고 지양된 상태를 이르는 ‘즉자대자’는 ‘완전무결한 전체적·절대적인 것’ 등으로 바꾸었다. 또 주요 구절마다 그 의미를 풀어주고 다른 것과 연결짓는 1000여개의 꼼꼼한 옮긴이의 각주도 헤겔 철학 이해를 돕는다.

헤겔은 1807년 독일 예나 전투 당시 백마를 타고 예나 시내로 진군해오는 나폴레옹을 살아 있는 세계정신으로 환영하며 〈정신현상학〉을 탈고했다. 프로이센의 부패한 정치를 혐오했던 그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뒤엉켜 대립·갈등·분열하는 그 시대를 철학적으로 조망해 그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찾으려 했다.

특히 이 저작에서 그가 대결하는 사상은 당대를 풍미하던 ‘낭만주의’였다. 낭만주의 운동은 직관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정신현상학〉은 이런 통념을 내파하려고 했다. 그의 비판은 신랄하고도 가차없다. “사유한다고 자처하면서도 추상적인 명제나 더욱이 명제들 사이의 연관성을 투시할 만큼의 사유도 행하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형식도 품위도 갖추지 않은 저속한 무리들이 자신들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로움과 관용을 터득한 천재라는 따위의 장담이나 하고 다니는 풍이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헤겔은 또 이렇게 말한다. “참다운 사상과 학문적 통찰은 오직 개념의 노동 속에서만 얻어진다.” 그것은 개념적 사유의 고투를 생략한 낭만주의의 ‘직관적 직접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에게 부정은 언제나 긍정의 계기 속의 부정이다.

헤겔은 당대의 또다른 지적 조류인 계몽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그는 낭만주의와 계몽주의가 서로 반목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의 대립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통합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단지 목적이나 결과로만 보지 않고 그 과정 전체로 이해하는 헤겔 특유의 발상이다. “진리는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것으로서, 이는 자기의 종착점을 사전에 목적으로 설정하고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중간의 전개과정을 거쳐 종착점에 다다를 때라야 비로소 현실적인 것이 되는 원환과 같은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그것은 의식, 곧 정신이 자기 스스로를 전개하여 절대지에 도달함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 그리하여 애초의 본질이 풍부하고도 철저하게 실현돼 완전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고 마침내 열매가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진리란 그 전체 과정을 가리킨다. “진리는 곧 전체다. 그러나 전체는 본질이 스스로 전개되어 완성된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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