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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5 17:29 수정 : 2005.02.15 17:29


[알림] 한·일 남녀작가 소설 합동 연재

작가 공지영씨와 쓰지 히토나리의 합동소설 연재는 지난해부터 준비되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착잡한 과거사가 몇 개의 ‘돌/주년’으로 맞아떨어지는 2005년을 문학적으로도 기념해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두 작가는 연재 기획이 확정된 지난해 10월 이후 전자우편을 통해 연재 소설과 관련한 협의를 계속해 왔다.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 사이의 사랑을 그리되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와 현재의 관계를 바탕에 깐다는 데도 합의했다. 소설의 이름이 될 제목은 시간을 두고 더 논의하기로 했다.

연재 기간 동안 두 작가 사이의 의견 교환, 원고 번역 등 실무 진행과 연재 후 단행본 출간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출판한 소담출판사(대표 이태권)가 맡을 예정이다.

이달 초엔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는 쓰지가 한국을 방문해 공지영씨와 첫 대면을 하고 소설 무대 등을 함께 답사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2박3일 일정을 마친 뒤 두 사람은 <한겨레> 독자들을 위해 합동 소설 연재에 관한 대담을 나누었다.


한일 남녀 예쁜 사랑얘기, 청춘다툼에 과거사도 녹여

공지영(이하 공) = 책에 실린 사진만 보다가 직접 만나 보니 장난꾸러기 소년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워낙 일본과 한국 사람이 닮기도 했지만, 쓰지씨는 외국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네요. 일본인 치고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말도 솔직하게 하는 편이고요. 뭐랄까, 무국적자 같다는 느낌이에요.

쓰지 히토나리(이하 쓰지) = 공지영씨는 학생운동과 페미니즘 쪽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나 보니 대륙적이랄까 시베리아 벌판을 생각하게 하는 느낌을 줍니다.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죠. 그런 인물을 소설에서 쓰고 싶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공=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으로 알고 있는데, 느낌이 어떠셨어요?

쓰지=한국에는 거의 20년 전에 처음 왔습니다. 10년 전에 두 번째로 왔고 이번이 세 번째죠. 올 때마다 너무 변화가 빨라서 옛 기억과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느낌도 소설에 담았으면 해요. 사실 저는 태어나기는 도쿄에서 났지만, 본래 집안은 후쿠오카예요. 거기서는 도쿄에 가는 것보다 서울에 오는 게 훨씬 가까워요. 한글 간판도 많아서 어릴 때부터 한글에는 익숙했던 편이죠.

공=저도 <한겨레>에 <착한 여자>를 연재하던 1996년 봄에서 여름에 걸쳐 일본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습니다. 올 4월에 벚꽃이 필 때쯤 도쿄로 취재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고요.

쓰지=한국어는 전혀 못하지만,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로 나뉘는 작별 인사법이 흥미롭더군요. 일본어로는 그냥 ‘사요나라’ 하나인데 말이죠.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섬세하게 구분하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섬세한 뉘앙스 차이를 참조하면 거기서 좋은 소설 제목이 나오지 않을까요?

소설 제목 확정 안돼…협의 좀더해야

공=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불행한 과거사가 개입돼 있지만, 따져 보면 거리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게 두 나라 아닌가요? 외국에 나가 보면 유학생들이나 현지 교민들이 가장 가깝게 지내는 게 일본 사람들이에요.

쓰지=저 역시 파리에 살면서 일본 사람들보다는 한국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편이에요. 제가 또 고추장과 김치를 무척 좋아해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꼭 한국 식당에 가거든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공지영씨 얘기를 했더니, 적극 찬성하더군요.

“장난꾸러기 소년 만난듯… 첫 연애소설 설레임도 커… 같은사건 따로쓰기 매력적”
공=저로서는 사실 처음으로 사랑 얘기를 쓰는 셈이에요. 그래서인지 설레기도 하고, 이 소설 생각만 하면 즐거워지고 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죠. 연애한 기억이 하도 오래돼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죠.(웃음) 그런데 쓰지씨랑 이메일을 주고받고 또 이렇게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새삼 연애 감정이 되살아나는 게, 조짐이 좋은 것 같아요.

쓰지=제가 본래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죠.(웃음) 일본어가 딱딱하게 끊어지는 말투인데, 한국어는 불어처럼 리듬감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줘요. 특히 공지영씨의 말은 부드럽고 애교있게 들리는 것 같아요. 저도 조짐이 좋습니다.

공=소설은 물론 두 나라 젊은이의 예쁜 사랑 이야기지만, 한 번은 두 사람이 크게 싸우는 장면을 넣기로 했죠. 쓰지씨가 먼저 그렇게 제안해서 반가웠어요. 그 장면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할 수 있는 비판과 공격 같은 걸 다 쏟아부어 달라고요. 보통의 일본인들은 가해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소홀할 수 있으니까, 소설 속에서나마 그에 대해 반추해 볼 기회를 갖고 싶다는 거였죠. 물론 싸우는 과정에서 일본인 쪽에서 할 수 있는 얘기도 나올 거고요.

쓰지=동료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와 ‘커플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작업을 함께 한 뒤, 이번에는 일본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비슷한 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어요. 미국이나 프랑스 쪽도 가능하겠지만, 어느 모로 보나 가장 가까운 한국 작가와 함께하고 싶었죠. 불행한 역사적 관계를 비롯해 서로 공유할 만한 문제의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소설이 단순히 문학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양국 관계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공=이번 연재소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사실 1980년대의 ‘집단 창작’을 떠올렸어요. 익명의 다수가 함께 토론하고 글도 함께 써서 하나의 작품을 생산하는 방식이었죠. 제게도 당시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저는 거부했거든요. 작가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문체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여서요. 그런데 이번 소설은 동일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반대로 사건과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전적으로 혼자 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점도 있죠. 동일한 사건과 상황에 대해 상대방은 어떻게 느끼고 글로 풀어낼까 하는 작가적 호기심도 있었고요.

‘냉정과 열정 사이’ 집필경험 확장

쓰지=글쓰기란 물론 고독한, 혼자만의 작업이죠. 그러나 지금처럼 문학작품이 안 읽히는 시대에는 혼자 힘보다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힘을 합할 때 무언가 새롭고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식의 합동 작업이 더 널리 확산됐으면 합니다. 그게 ‘문학의 위기’에서 벗어날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사실 독자들이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으로나 기억한다는 건 작가로서는 슬픈 일입니다. 저는 다른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소설 자체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소설의 르네상스를 꿈꿉니다.

공=소설말고도 영화배우와 감독으로도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뜻밖이네요. 사실은 저도 쓰지씨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영화로 만들어졌죠. 그 뒤로 제 소설을 영화화하자는 제의가 몇 번 왔지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이 영화로 바뀌고 나면 무언가 글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아우라가 훼손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쓰지=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더군요. 이번에 한국에 오느라 일본을 경유하면서야 ‘욘사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저는 사실 우리의 이번 작업이 ‘한류’를 뒤따라가는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저로서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인데요.

공=텔레비전 드라마와 음악 같은 대중문화 쪽에서는 ‘한류’ 열기가 대단하지만, 문학 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에는 일본 소설이 활발히 소개되고 있는데,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아닌가요?

쓰지=정말 그래요. 유감스럽게도 저 역시 한국 소설은 거의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문예지에 이따금씩 단편은 실리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건 많지 않아요. 출간됐다 해도 일반 서점에 진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이번 합동 작업을 계기로 한국 소설이 일본에 더 많이 소개됐으면 합니다.

공=어쨌든,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해 <한겨레> 지면을 통해 쓰지씨와 함께 연재를 한다는 게 저로서는 새로운 시도인 동시에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발을 빕니다. 저도 물론이고요.

쓰지=공지영씨와 함께 작업을 하게 돼서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서로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 공지영씨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88년 <창작과 비평>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장편소설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봉순이 언니> 등이 있다. ‘21세기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한국 소설문학상’(?) 등을 받았다.

공지영씨의 소설은 이른바 ‘386 세대’의 정체성과 지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소설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항거,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호소력 있게 표현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여성에 대한 편들기는 그의 이런 보편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90년대 이후 문단 안팎에 휘몰아친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합리적 핵심’을 지켜 가고 있는 뚝심의 작가이기도 하다. 최재봉 기자

■ 쓰지 히토나리는 1959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89년 처녀작 <피아니시모>로 ‘스바루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97년 <해협의 빛>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으며, 99년에는 <백불>(흰부처)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프랑스 굴지의 페미나상 외국소설 부문 상을 받았다.

쓰지는 자신을 ‘순수’와 ‘대중’의 사이에 있는 ‘중간적 작가’ 또는 주류 바깥의 아웃사이더로 규정한다. 그는 등단하기 전에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는가 하면, 지금은 영화 감독과 배우로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대중문화에 친연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평단에서는 독자적인 문체와 문제의식을 아울러 갖춘 진지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소년 시절을 그린 에세이집 <거기에 내가 있다>의 일부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함께 작업했던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장편소설 <우안과 좌안>을 4년째 연재 중이다.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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