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6 17:23
수정 : 2005.02.16 17:23
지금도 불교학계에서는 돈점(頓漸)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논쟁은 성철스님의 ‘돈오돈수’ 주장으로 비롯됐다. 스님의 주장은 마음 속에 있는 때가 묻은 거울을 말끔히 닦아서 우주만물을 온전히 비출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며 이 순간이 돈오돈수이고, 스님의 비판 대상인 보조스님의 돈오점수는 비록 때가 묻어 있는 거울이라도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단계도 깨달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계는 돈오점수론이 700년 넘은 정설이었으니 학계의 반발이나 공격이 오죽했겠는가?
“스님! 해인사 안에선 돈오돈수가 통하지만 일주문만 벗어나면 모두가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설을 최상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돈오돈수 사상이나 이에 가까운 어록들이라도 번역해 돈오돈수 사상의 울타리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드려 선림고경총서 37권을 출간하게 됐다. 그때 성철스님께서 내게 한 말씀이다.
“속담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에 어리석은 포수가 범 잡고 무식한 놈이 용맹하다는 말이 있다. 니 놈이 꼭 그렇다. 그 어려운 어록들을 누가 번역할끼고? 그렇지만 기왕에 춤을 추려면 잘 춰라. 추다 말면 그 무슨 꼴이고? 니가 하는 일이 늘 어설퍼서 하는 말이다.”
번역 일을 추진하며 고생이 많았다. 번역자를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또 출판비가 문제였다. 그래서 큰스님께 출판비 마련을 위해 회원 모집 말씀을 드렸다가 불호령을 만났다. 절집에서 출판은 시주를 받아 하고 책은 무료로 주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돈을 받고 책을 파는 형식이 되니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이, 나를 망신시키려고 아예 작심한 놈 아이가?” 하며 노발대발하신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칠년여 만에 완간하게 되고 출판기념회를 연 후 한 달 못 되어 큰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셨다. 책이 완간된 날, 큰스님께 “수고했다”는 말씀을 난생 처음 들었다.
힘든 나날들인데 큰스님 말씀처럼 춤을 추려면 잘 춰보자.
원택 겁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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