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7 16:21
수정 : 2005.01.0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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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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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장애물에 둘러싸인 철학자다. 지나치게 난해한 사유 내용이 일차적 장애물이라면, 그의 나치 참여 경력은 그에게 다가가기를 꺼리게 만드는 이차적 장애물이다. 그의 철학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나뉜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장애물로 서 있다. 하이데거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플라톤 이래 2500년 서양 철학의 뿌리를 뒤엎은 최고의 사상가’이고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요구하는 시대착오적 낭만주의자’일 뿐이다.
국내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대부분 하이데거를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박찬국 서울대 교수도 하이데거의 위대성을 높이 받드는 학자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하이데거 전공자들이 이 ‘위대한 학자’의 나치 참여 사실을 애써 에두르면서 철학사상의 내용만을 천착하는 것과는 달리, 박 교수는 하이데거의 나치즘을 정면으로 문제 삼아 그 논리와 과오를 철저히 해명하려 했다. <하이데거와 나치즘>이 그 문제의식을 파고든 저작이다. 하이데거는 ‘기계들의 소음’을 혐오한 반근대주의자로서 나치에 가담했는데, 나치는 그 기계들의 소음을 문명 승리의 찬가로 떠받든 급진적 근대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새로운 정치혁명으로 실현하려 했던 꿈을 좌절당한 셈이었다.
박 교수의 새 하이데거 해설서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는 하이데거 사상의 전체 윤곽을 선명하게 그려 비교적 알기 쉽게 들려주는 책이다. <하이데거와 나치즘>을 비롯해 전작 <하이데거>(이수정 공저)에서 꼼꼼하게 파고들었던 하이데거 철학을 하나의 풍경을 조망하듯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이데거의 삶을 간략한 평전 형식으로 펼치면서 그 사상의 전개 양상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상학과 생철학의 사상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 나치즘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보가 흐트러지고, 2차대전 종결 이후 다시 고요와 정적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하이데거 사유의 내면 풍경의 배경이 된다.
하이데거 철학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지만, 그는 그 난해한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어를 독일인들이 쓰는 일상어에서 빌려 왔다. ‘고향’, ‘대지’ ‘들길’ 따위의 시적 언어가 그대로 철학 용어가 된 것이다. 그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어인 ‘존재’는 우선은 인간의 현존을 가리킨다. 그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우려와 걱정과 관심과 돌봄의 눈길로 문제 삼는 존재자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을 두고 하이데거는 ‘실존’이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에게 존재란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소박한 자연’을 지칭한다. 한 마디로 줄이면 ‘고향’이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현대 세계는 기술 문명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존재 의미를 상실해버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도구가 되어 버린 불안과 공허와 권태의 세계다. 하이데거는 그 고향의 들길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현대 기술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계기도 보이지 않는 이 때에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하나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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