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7 17:39
수정 : 2005.01.07 17:39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서성대는…
지난 200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지우(42)씨가 첫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를 펴냈다.
김지우씨의 소설은 대체로 “변방의 마이너리그 인생들”(작가의 말)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 빚어진다. 노래방 도우미로 나온 이혼녀와 소매치기 전과8범인 절름발이 사내(<그 사흘의 남자>), 자동차 상해보험금을 노리는 자해공갈단원들(<디데이 전날>), 전과자인 홀아비와 시골 이발관 면도사 아가씨(<눈길>),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살아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가족(<물고기들의 집>) 등이 작가의 시선에 잡힌 변방인들이다. 이들에게 애정과 공감을 보내기 위해 작가는 우선 그들의 삶의 세목을 꼼꼼히 취재해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 주력한다.
노래방 도우미로 나선 ‘미시 아줌마’들과 그들을 찾는 사내들이 연출하는 탁한 풍속도, 자해공갈단원들의 모의와 연습, 그리고 병원과의 결탁을 그리는 작가의 필력은 힘차고 적확하다. 대상은 다르지만, 이른바 ‘원정출산’에 나서는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역시 작가의 치밀한 취재를 짐작케 한다.
표제작은 <그 사흘의 남자>나 <디데이 전날>보다는 <해피 버스데이 투 유>에 가까운 작품이다. 경제적으로 크게 군색하지 않은 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돈만 있으면 귀신도 사귀고 부리는 세상”(44~45쪽)이라 믿는 아버지와 권력에 빌붙어 출세한 모교의 교장선생님을 상대로 두 개의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수술을 앞두고 의사에게 거액의 촌지를 건네라는 아버지의 요구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응하는 듯하다. 그러나 교장에 대해서는 “나는 날개를 달아줄 생각이 없다”(70쪽)는 말로 단호히 내치거니와, 불의에 대한 이런 비타협적 태도야말로 김지우 소설의 알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소설집의 주류라 할 변두리 인생들 얘기에선 그처럼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에 소설은 절망도 희망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끝을 맺는다. 등단작인 <눈길>의 마지막 문장이 대표적이다.
“한정없이 퍼부을 것 같던 눈이 그친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으나, 인날 궂은 일진이 예서 멈출지는 더 두고 볼 일이었다.”(215쪽)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불안스레 흔들리는 중심. 김지우씨의 사실주의와 휴머니즘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거기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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