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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7 18:22 수정 : 2005.01.07 18:22

세계로 가는 중국 잡종문화 읽기
우리는 순혈주의에 움츠리진 않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유난히 ‘새로운 인식’, ‘새로운 상상력’이란 말을 많이 생각했다. 출판 역시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현실에서 우리와 같은 작은 인문 출판사의 돌파구가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험한 세상에 새롭지도 않으면 어떻게 얼굴을 내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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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년에 겨우 10여 종 정도의 책을 내지만 늘 그 안에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노력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했을 때는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한편으로는 결과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남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2004년 초에 낸 <사랑의 중국 문명사>도 중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읽어냈지만 창고 신세만 지고 있는 안타까운 책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당시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그 문제의 배경의 한 측면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기대를 품기도 했으나 실망감만을 맛보아야 했다.

오늘날 세계의 시장이자 공장인 중국, 세계의 블랙홀인 중국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중국이 궁금했다. 중국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나 공부를 한 선생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래도 나는 중국과 중국문화의 참모습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 후 도쿄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메이지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중국인 장징(張競)이 쓴 <사랑의 중국 문명사>를 보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중국 문화’를 다양한 문화가 복합된 ‘잡종문화’로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책은 중국이 정치적으로 분열을 거듭해왔는데도 통일을 유지하고, 중국문화가 장기적으로 활력을 가지고 지속되고, 한족이 여러 차례 이민족에게 정복을 당했는데도 멸망하지 않은 이유를 한족이 끊임없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새로운 혈액을 공급받음으로써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곧 한족은 하나의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 ‘잡종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화주의적 문화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중국인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잡종문화론’을 주장하는 장징의 학문적 용기를 높게 평가한다. 장징은 중국문화는 한족이 일방적인 우월적 지위에서 소수민족의 문화를 수용하고 억압한 것이 아니라 한족의 문화와 소수민족의 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 변화를 겪으면서 거대한 하나의 잡종적 문화를 형성해왔다고 본다. 장징은 단일하고 순수한 문화란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는 앞으로도 그런 잡종성의 확대에 의해 중국문화가 세계 문화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이 책을 만드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반만년 역사의 단일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중화주의 못지않은 한국의 문화적 민족주의였다. 잡종적인 중국과 달리 우리는 계속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가운데 스스로 움츠러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수천 년 중국 역사와 중국인의 정신과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그 ‘잡종성’을 읽음으로써 오늘날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의 깃발을 꽂고 있는 중국과 중국인의 참모습의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징이 1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중국문화를 ‘잡종성’으로 읽어냈으니 그 인식과 상상력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강동권/이학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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