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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겨울을 무사히 견딘 매화가 그 꽃망울을 금방이라도 터뜨릴 듯 팽팽하게 부풀었습니다. 햇살이며 바람, 들녘의 싱그러운 흙빛들이 어제의 그것이 아닙니다.
작년 여름, 저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열리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평양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사실 때문에 설레는 가슴 속에서 둥둥 북소리가 났지요. 평양과 백두산을 생각하며 남쪽의 문인들은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듯싶었습니다.
민족작가대회 일정이 잡히면서 어떤 분은 예정된 해외여행을 포기했고, 어떤 분은 북으로 가져갈 선물을 일찌감치 준비해서 빵빵하게 짐을 꾸려 놓기도 했지요. 저한테 적지 않은 거금을 맡기면서 북녘 아이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었고, 대전에 계시는 선생님의 형 오승재 교수께서도 북의 동생에게 편지와 책을 전해 달라며 저한테 소포를 보내오셨습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을 들를 때마다 저는 마음 한쪽이 쓰립니다. 북으로 가져갈 기념품들, 책이며, 가방이며, 의약품이며 하는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널려 있어서입니다. 마치 이사 떠날 집에 들른 것처럼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곳의 박세옥 시인도 편찮다 하시고, 리호근 시인도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민족이 아파서 작가가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분들은 분단의 현실을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작가들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만남이 점점 미루어지는 사이 병세가 더 악화되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선생님, 저 휴전선은 아직 그대로 우리를 갈라놓고 있지만 우리 작가들 사이에는 이미 휴전선이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같은 모국어로 창작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과 북의 작가들은 동료요 형제자매입니다.
몇 해 전 평양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 저는 <주름>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습니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난 오영재 시인은 앞에 놓인 도시락을 열지 않았다 룡성맥주만 연거푸 몇 잔 들이켰다 8월의, 나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나무 그늘 아래 우리는 둘러앉아 있었다 젓가락으로 밥덩이를 뜨면서 나는 나무 그늘의 주름 사이를 천천히 건너가는 선생의 목소리에 내 귀를 걸어두고 있었다/북의 계관시인은 남쪽에 사는 피붙이들과 시인들에게 전해달라면서 두어 장 메모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처럼 손이 하얗지는 않았다 울음 그친 매미들이 필체를 힐끗 보다가 다시 세차게 울었다 선생도 웃는 듯 우는 듯하였다 그때마다 이마의 주름이 펴졌다 접혀졌다 하였다 한반도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던 주름의 골짜기가 거기 다 들어 있었다”
중국 선양에서 민족작가대회 재개를 위한 실무 접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한반도의 주름을 작가들이 펼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아니 하루라도 빨리 만났으면 합니다. 저 남녘 끝에서 북상하는 봄꽃 소식을 가득 싸서 올라가겠습니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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