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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1 19:00 수정 : 2005.03.11 19:00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새삼 충격받는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한탄했고, 소설가 시몬 드 보봐르는 “노년만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도 없지만, 또한 노년만큼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없다”고 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그림동화 작가인 존 버닝햄(68)도 그랬던 모양이다. 경로우대증을 받을 나이가 된 것이 그에게는 “충격적인 이정표”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삶이 돌려줘야 할 무엇이 되어 버린 것”처럼 생각됐다고 한다. 평생 어린이들을 위한 천진한 꿈을 그려온 버닝햄에게, “정신연령은 다섯 살”이라고 스스로 웃던 그에게도 노화가 찾아오고만 것이다. 갑자기 ‘나이듦’이란 주제와 직면한 버닝햄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나이 듦에 관한 책을 만드는 것. 이 책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버닝햄은 우선 많은 이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글로 써 달라고. 심지어 종신형을 받고 복역중인 사형수에게까지 편지를 썼다. 또 직접 인터뷰도 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고금의 책을 뒤져 나이듦에 대한 좋은 글귀를 찾았다. 이렇게 여러 조언과 견해, 그리고 옛 글을 모은 뒤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려 책으로 엮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계로록(戒老錄)들처럼 나이 듦에 대비하는 ‘경계’를 강조하지 않고 유쾌하고 솔직담백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통해 나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또한 새로운 삶의 과정임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그리고, 나이 듦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이라고 충고한다.

불쑥 다가온 노년의 충격 그림책 작가 버닝햄이 엮은 “행복한 늙음에 관하여”
“한탄도 슬퍼도 말라 변하는 건 겉모습일 뿐 인생은 언제나 전성기임을”

%%990002%% 나이 듦은 분명히 “해가 갈수록 크리스마스가 점점 더 싫어지는 것”이기도 하며, 일명 ‘안경 찾아 삼만리’라는 한가지 운동밖에 못하는 현실일 수도 있다. 또는 후손 숫자가 친구 숫자를 추월하는 것, 젊은 애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하는 것, 점점 심술과 심통이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등장하는 ‘선험자’들은 “많은 것이 변하지만, 더 많은 것이 그대로 남는다”는 프랑스 속담이 노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이상하게도 현재의 나이란 것은 항상 받아들일 만하며, 나이 들어 유일하게 줄어드는 것은 성생활뿐, 겉모습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내적 모습이 주는 만족감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귀띔한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더 좋아지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역시 세계적 동화작가인 레이몬드 브리그스는 “젊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축복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고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관대로 노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소포클레스가 아흔이 다돼서 최고의 작품을 썼다는 교훈을 따르며 맞을 수도 있고, 더이상 야망을 가질 필요 없으니 분명한 현실 앞에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맞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라진다는 것이다. 영국 작가 헨리 오스틴 도브슨처럼 “시간은 머물러 있는 것, 흐르는 것은 우리인 것을”이라고 푸념할 수는 있어도, 셰익스피어가 희곡 <리처드 2세>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라고 탄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이란 언제나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피어스 브랜던이 말했듯 “생명없는 화석보다는 노망 든 노인네가 더 났다”. 그것은 “아무리 모양새가 우스워져도, 그 부조리함을 웃어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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