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2 17:14
수정 : 2005.01.12 17:14
성직자들이 영혼을 깨우는 말씀을 전하는 ‘영혼의 한마디’를 신설합니다. 가톨릭 신부, 불교 스님, 개신교 목사 등이 차례로 쓰는 이 난은 성직자의 한마디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해는 하느님께서 지상에 선사하는 행복의 시간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이유는 행복의 에덴동산이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필요할 때마다 하루만 사용할 수 있는 해를 만들어 지상으로 보내신다.
오늘만이 진실한 시간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음을 인정해 주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오늘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어제 저문 해가 돌아와 동쪽에서 뜨는 줄로 안다. 당연히 내일 다시 뜰 것으로 속는다. 그러므로 오늘이란 행복을 선사받고도 번뇌와 고통으로 탕진해 버린다. 어제 일어난 엎질러진 일로 괴로워하고 내일 다가올 일로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나는 지금 마을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 고구마를 물고 코를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네 아이의 눈은 평화롭다. 고구마 하나를 먹을 수 있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먹을 것이 가득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도 불안하다. 이미 지나와버린 동구 밖 장승이 나를 따라와 괴롭히고, 마을을 지난 고갯길 서낭당에 휘날리는 헝겊 조각이 나를 두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포박되고 아직 보장 없는 내일에 속아 살면 ‘오늘’이라는 선물을 챙기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 걱정은 내일 겪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하셨는데, 소유의 집착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오늘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일 필요할 것 같은 안전 대책 때문이요 용서하지 못한 이유도 똑같은 모양의 반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은 오직 새 해이며 새 날이다. 나에게 새로운 해오름이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날마다 소중한 하루가 되시기를….
박기호 서교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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