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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4 17:36 수정 : 2005.01.14 17:36

허우적댈수록 빠져드는 늪, 그것이 고향

‘소설가 김훈’을 구성하는 신화 가운데는 그가 처음 쓴 단편으로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1977년에 시작된 이상문학상의 30년 가까운 역사에서 이 기록은 처음이다. 지난해 그의 소설 <화장>을 표제로 내세운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자선 대표작’으로 세 편의 산문이 실렸다. 고르고 말고 할 다른 중단편 소설이 없기 때문이었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에 이어지는 그의 다음 장편이 궁금한 것 못지않게, 그의 단편 데뷔작 <화장>의 뒤를 이을 중단편은 어떤 것일까 또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런 점에서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한 두 번째 단편 <머나먼 속세>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머나먼 속세>는 물론 무난한 작품이었지만, <화장>의 후속작으로서는 다소 역부족이었다고나 할까.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고향의 그림자>는 김훈씨의 세 번째 단편이다. 그리고 진정 ‘김훈다운’ 작품이다. ‘김훈답다’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읽어 보시라, 할밖에.

주인공은 강력반 형사 수철. 그는 택시 강도를 저지르고 어부로 위장해 배를 탄 조동수를 체포하러 항구도시인 고향 ‘P항’에 내려간다. 그에게 “고향은 끊어버려야 할 족쇄이거나 헤어나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었다.” 그 늪을 상징하는 존재가 치매에 걸린 채 요양원에 위탁된 어머니다. 소설은 이제 막 소변을 가리기 시작하는 수철의 어린 딸과, 거꾸로 변을 가리는 능력을 잃어버린 어머니를 대비시키며 신생과 소멸의 순환하는 질서를 돋을새김한다.

수철은 또한 조동수의 강도짓이 가난한 어머니에게 몇 근의 고기를 사 드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그를 태아 상태에서 버려진 형제라 상상하기도 한다. 소설 제목의 ‘그림자’는 어머니의 치매와 그에 이어질 죽음일 수도 있고, 조동수의 가난일 수도 있게 된다. 수철은 결국 조동수를 체포하기를 포기하고, 상부에 허위 보고를 했다가 들통이 나서 옷을 벗는다. 소설의 마지막은 개인택시 기사가 된 수철이 취객들을 피하며 심야의 도로를 달리는 장면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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