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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6:57 수정 : 2005.01.21 16:57


40대 중반의 남성 작가 세 사람이 나란히 소설집을 묶어 냈다. 이승우(46)씨의 <심인광고>(문이당)와 성석제(45)씨의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창비), 위기철(44)씨의 <껌>(청년사)은 개성 넘치는 필치로 새해 문단을 열어젖힌다.

이승우 ‘심인광고’
비인간적 조직 고발등
어둠에 드리운 삶 그려

이승우씨의 소설들은 여전히 삶의 어두운 심연에 탐침을 드리우고 있다. 삶이란, 그리고 인간이란 겉으로는 화사하고 안정되어 보여도 속내는 무수한 균열과 모순의 생지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확고한 믿음으로 보인다. 소설집 앞머리에 수록된 <사령(辭令)>은 낯설고 두려운 근무지로 발령 받은 회사원 사내를 통해 조직의 비인간적 생리를 고발한다. ‘사회로 가라’는 짧고도 모호한 회사의 명령은 이 사내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사태로 바뀌게 된다. 소설 속에서 ‘사회’란 공포의 전염병 때문에 바깥 세계로부터 차단된 특정 지역의 이름이지만, 작가는 인간들의 집합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를 부러 씀으로써 회사와 사회의 악의적인 공모를 고발하려는 듯하다.

<사해> <오토바이> <터널> 등의 작품에서 ‘어려서 어머니(또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모티브가 되풀이 등장하는 것은 주목된다. 버림받음은 버림받음으로 끝나지 않아서 장년이 된 자식은 이제 늙고 노쇠한 부모와 재회하게 되는 것인데, 버림받음에서 오는 원한과 분리의 세월은 자식의 내면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복합적인 무늬를 아로새긴다.

성석제 ‘어머님이…’
‘꼬리표’웃음은 사라지고
슬픔과 회한이 출렁출렁


성석제씨의 새 소설집은 ‘성석제표 소설’의 표지와도 같은 웃음이 줄어든 대신 예전에는 그 웃음의 이면에 가려져 있던 아련한 슬픔 곧 페이소스가 전면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가령 <잃어버린 인간>에서 그는 시대의 격랑에 떠밀려 사회주의와 독립운동에 가담했지만 한낱 이름없는 존재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간 인물의 생애를 회한 어린 어조로 재구성한다. 블랙홀처럼 인간을 빨아들여 형체도 없이 삼켜 버리는 역사의 탐식성에 대한 고발은, 화자 자신의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맞물려 둔중한 울림을 준다. “우리 사는 기 사는 기 아이민서 사는 기네”라는 <본래면목> 주인공의 자탄, “뭔지 모르게 서럽고 분했다”는 <저녁의 눈이신>의 주인공 소년의 심사, 그리고 고전소설 <추풍감별곡>의 이야기를 액자처럼 짜 넣은 표제작의 마지막 문장 “슬프다, 명진의 회포와 재희의 정이 지금은 과연 어떠하리”에서 슬픔의 정조는 소설 밖으로 넘쳐 흐를 듯 출렁거린다.

위기철 ‘껌’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위…
잃을지라도 잊지는 말라

<껌>은 <아홉살 인생>의 작가 위기철씨의 첫 소설집이다. 책에는 1986년에서 2004년까지 18년의 시차를 두고 쓰여진 단편 여덟이 묶였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위와 프락치처럼 어느새 지난 시대의 풍경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세목들이 독자를 맞는다. 소설집에는 <잊음이 쉬운 머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단편도 들어 있거니와, 잊음에 대한 경계와 고발에 작가의 방점은 찍혀 있는 듯하다. 단편 <돌>의 한 인물은 “진짜 두려운 것은 상실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통찰을 보인다. 노동운동에 매진하다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만 여주인공이 운동의 초심을 돌아보며 자책하는 <봄나들이>의 문제의식 역시 잊어도 좋을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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