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28 16:28 수정 : 2005.01.28 16:28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내가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까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책이 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들쳐보아도 여전히 감탄할 수 있는 책, 몇 년이 지났다 해도 내 눈을 가슴 아프게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책,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늘 그 책에 대해서만 몰입하는 나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책, 좀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한 개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준 그런 책 말이다.

철학자 김용석 교수의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은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텍스트로 그 풍성한 인문학적 컨텐츠를 펼쳐내 보이는 책이다. 몇 년 전부터 ‘문화 철학’이 관심을 끌면서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텍스트가 유행처럼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애니메이션이 철학에게 본격적으로 말을 건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 <인어공주> 등 단 4편의 작품을 선택하여 400쪽이 훌쩍 넘는 지면에다 섬세하고 깊이 있게, 혹은 우직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게다가 철학책은 으레 어렵고 딱딱하다는 통념을 깨고 처음부터 끝까지 경어체를 사용해 독자에게 어깨를 낮추고 다가가는, 보기 드물게 친절하고 세련된 글쓰기는 어떤가. 김용석 교수의 글쓰기는 그의 첫 번째 저작인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서도 보여주었듯이, 다분히 ‘양서류’적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무거움과 가벼움, 깊이와 피상, 학문적 지식과 대중적 상식, 어른의 관심과 아이의 호기심을 아우르는, 전문성과 대중성이 절묘하게 황금분할된 글쓰기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사실 아깝지 않은 책은 별로 없지만, 이 책은 특히나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잃는 슬픔’도 꽤 크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누군가는 철학과 대중문화를 접목시킨 그 방대함과 깊이가 신선하였지만, 그 만큼의 낯섦은 독자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고, 누군가는 만만찮은 각주의 향연이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표상으로서 기능하기보다 학제적 보고서의 버거움으로 다가서게 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또 누군가는 암호처럼 다소 모호한 제목과 밋밋한 표지에 그 혐의를 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계속 모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조금은 우직하고 용감한(?) 이 책에 독자들이 좀 당황스러웠던 거라고, 그러므로 이 책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말을 걸 수 있으리라고 아직도 굳세게 믿고 싶은 것일까?

실제로 이 책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은 있으나 여전히 작품을 만들어낼 컨텐츠가 부족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꼭 필요한 지적 자극제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디 애니메이션뿐인가?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국 영화를 비롯한 우리의 대중문화도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총체적인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애니메이션 작품과 인문학 컨텐츠’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증명하고 있는 이 책이 출간 후 4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지점과 만난다. 김용석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 저패니메이션, 유럽 애니메이션 작품과 인문학 컨텐츠의 만남을 독자들에게 주선할 계획이라 한다. 나는 다시 가슴이 뛴다.박선경/푸른숲 논픽션팀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