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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74년 전국적인 반유신 투쟁을 이끈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배후에 이북의 사주를 받는 인혁당(재건위)이 있다는 당국의 발표에 따라 체포된 8명이 이듬해인 1975년 4월 9일,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건을 가리킨다.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협회는 그 날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으며, 유족과 인권단체 등에서는 이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지난 3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이 사건을 다른 6개 사안과 함께 우선 조사 대상으로 발표함으로써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기도 하다.
김원일씨는 책 출간에 즈음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형된 8명 가운데 진짜 공산주의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본다”며 “그들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생각할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독재정권의 폭압을 인권의 시각에서 고발하고자 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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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혼>은 모두 6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형당한 8명(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을, 이름 가운데 글자만 바꾼 채 등장시켜 사건의 전모를 다각도로 추적한다. 관련자들 중 상당수가 대구 출신이거나 대구에 연고를 둔 이들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팔공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반식민 및 민주화 투쟁사를 그린 작품이 <팔공산>이다. <두 동무>는 이준병과 김길원이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동무가 된 이후 따뜻한 우정을 나누다가 결국 마지막 죽음의 길까지 동행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여의남 평전>은 대구 중심부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여의남이 대구 학생운동의 중심인물로 성장하고, 민청학련과 인혁당 관계자들을 ‘매개’하다가 체포되는 모습을 서술했다. <청맹과니>는 서상원을 주인공 삼아, 너나 할 것 없이 불의에 눈 감은 청맹과니의 세월을 고발한다. <투명한 푸른 얼굴>은 도운종을 중심으로 처형을 전후한 과정을 꼼꼼하게 서술하며, 사형당한 이들이 육신의 죽음 뒤에도 혼령은 살아남아 다른 동지들과 해후한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임을 위한 진혼곡>은 하시완의 부인이 남편을 추모하며 쓰는 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작품별로 서로 다른 구성과 형식을 취하도록 함으로써 소설이 다큐멘터리적 건조성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회복할 수 없는 기왕의 사실을 다루고 있는 만큼 각 작품의 마지막은 하나같이 처형장으로 귀결된다. 독자는 주인공들이 차례로 처형장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벌이는 모습을 하릴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형국이다. 그렇게 행진해 간 이들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들려 줄 법한 말이 <투명한 푸른 얼굴>의 마지막 대목을 이룬다.
“신인간으로 환생해서 무릉도원에 안착했다 하더라도 이승에서의 그 시간대가 망각되지 않는 한, 그들에게 고통의 여운은 계속될 터였다. 8명 옆 복숭아나무의 복사꽃 핀 가지 끝에 앉아 있던 앵무새 한 마리가,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살고,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살고…, 하며 사람 목소리를 되풀이하여 흉내내고 있었다.”(348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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