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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7:48 수정 : 2005.02.04 17:48

‘보르헤스 문학전기’ 낸 김홍근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중남미 문학을 세계 문학의 꼭대기에 올려놓은 20세기의 대표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르케스가 ‘마술적 사실주의’(레알리스모 마히코)로 소설 창작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 보르헤스는 ‘환상적 사실주의’(레알리스모 판타스티코)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꿔 버렸다. 다시 말해, 마르케스가 소설 언어에 새로운 단어를 추가했다면, 보르헤스는 소설 문법을 다시 썼다. 보르헤스의 영향은 깊고도 넓어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류로 지목되는가 하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같은 프랑스 현대철학에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무한의 사유’, ‘자아의 부정’을 보르헤스만큼 섬뜩하게 형상화한 작가도 달리 없다.

중남미 문학 연구자 김홍근(48·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씨가 보르헤스의 생애와 문학을 밀도 있게 탐구한 <보르헤스 문학전기>를 펴냈다. 그의 박사학위 주제는 1990년 노벨상을 받은 옥타비오 파스였다고 한다. 보르헤스는 파스를 연구하던 중 만나게 된 뜻밖의 인물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때였는데, 어느날 강렬한 ‘시적 체험’을 했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보르헤스가 바로 그 경험을 했고 그걸 문학으로 표현했다는 걸 알게 됐지요. 29살 때 보르헤스는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낯선 것, 시간과 공간이 아주 생소한 것으로 느껴지는 체험을 했던 것인데, 일종의 형이상학적 체험이었습니다. 그것이 뒷날 문학용어로 굳어진 ‘보르헤스적 주제’가 됐지요.”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은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 그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였고, 어렸을 적 아버지의 커다란 서재에서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또 그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은 백과사전이었다. 보르헤스에게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었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틀림없이 도서관 모양일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그는 유전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었는데, 책에 둘러싸인 맹인의 모습이야말로 보르헤스의 전형적인 초상이다. 보르헤스적 주제는 영화에도 나타난다.

“스페인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각본을 쓰고 만든 <디 아더스>가 ‘보르헤스적 주제’를 다룬 영화지요. 주인공(니콜 키드먼)은 자기 저택에 침입한 낯선 사람들을 유령이라고 생각하는데, 알고보니 자신이 유령이었던 것이죠. 이 ‘뒤집기’를 통해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보여주는 것이 보르헤스입니다. 그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의 신비주의자 주인공은 꿈을 통해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꿈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이 피조물은 불 속에서도 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신비주의자의 신전에 불이 나는데, 자신의 몸이 타지 않는 겁니다. 그 또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피조물이었던 것이죠.”

그런 당혹스러운 반전을 통해 보르헤스는 인간의 자아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불교적 사유를 보여준다. 지은이가 보르헤스에게 깊이 매료된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보르헤스는 선불교를 탐구했고, 특히 <장자>를 최고의 책으로 꼽았습니다. 비좁은 시간과 공간에 매몰돼 자아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삶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철저한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문학적 당혹감에서 출발해 불교적 깨달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보르헤스의 길입니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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