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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8:16 수정 : 2005.02.04 18:16

연간 40여 종의 책을 내다보면 어떤 책은 내용이 좋은데도 철저히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가 하면, 어떤 책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가 지난해에 낸 책들의 목록을 죽 훑어보니 ‘그래도 이 책만큼은…’ 하고 자신 있게 펴냈는데 시장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한 책이 있었다. <철학자, 경영을 말하다>. 원제는 ‘Die Liebe zur Weisheit’인데 우리말로 풀자면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소크라테스에서 데리다까지 동서양을 통틀어 걸출한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기 성찰의 과정을 거쳐 패러다임의 전환과 실천적 사고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책을 펴냈다.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은 당장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경제, 경영과는 동떨어진 부문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회사의 운영에 직결되는 인력 활용, 신기술의 도입, 주식 운용을 통한 재테크 등에 관심을 갖지 인문학에 흥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경영 칼럼니스트이자 기업 컨설턴트인 지은이는 이처럼 실용적 측면에서 외면되어 온 철학을 경영에 접맥시켜 ‘사고(思考)’의 밑바탕을 이루는 ‘필로소피’, 즉 지혜(sopia)를 사랑하는(pillo) 학문인 철학(philosophy)을 응용하여 “지혜로운 경영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소크라테스가 대기업의 대표자라면, 니체가 광고회사의 경영자이고 자크 데리다가 벤처기업가라면 그 기업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출발한 이 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노자에서 토마스 쿤, 하버마스, 자크 데리다 등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철학자를 선정하고 그들의 철학적 사고가 기업들의 핵심적인 경영 판단을 내리는 데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타진한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는 경영자로서 상대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질문하는 자가 주도한다”는 명제를 아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으며, 니체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자본과 기술을 가진 기업가라고 할지라도 실천하는 용기의 필요성을, 데카르트는 좋은 경영자는 과연 자신이 올바른 사업을 하고 있는지를 자문하기 전에 자신이 도대체 경영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 회의(懷疑)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데리다는 아무리 전통적으로 확고한 사고방식이라도 해체해 봐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철학과 경영의 만남을 시도한다.

이 책은 아이디어 구상법, 성공적 팀워크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유연한 사고방식 등 기업의 핵심 브레인이 갖춰야 할 전략과 전술의 경영 필독서를 표방했지만 그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평들을 보니 내용은 좋은데 포장이 잘못되었다, 제목의 ‘임팩트’가 너무 약하다, 주요 타깃이 명확하지 않다, 정가가 비싸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이 경험을 통해 출판은 출판사의 일방적인 구애가 아니고 독자와의 교호(交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고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끄집어내는 지난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외면 받을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래도 장차 기업을 경영하고자 하거나 현재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과연 올바른 경영자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궁구(窮究)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진가를 알아줄 텐데….

권오상/을유문화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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