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
\
|
어른들도 ‘윤리학’이란 단어가 주는 그 지긋지긋함이나 따분함에 질리긴 질린 모양이다. 청소년을 위한 참고서가 아닌 교양서로서의 윤리학책은, 뜻밖에도 지금 현재로선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아버지들이 들려줄 ‘모범답안’이 없다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청소년이 혼자서 윤리학이 뭔지 알고자해도 결국 포기하고 말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작 윤리학 입문서도 없는데 왜 어른들은 그토록 윤리를 강조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할 법하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들이 들려줄만한 이야기를 담은 책, 청소년들이 직접 읽고 윤리학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윤리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은 없을까?
비록 우리나라 아버지가 쓴 것은 아니지만 저 멀리 스페인의 한 아버지가 열다섯살 아들에게 윤리학이 무엇인지 들려주는 이야기책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이 나왔다. 아들 아마도르에게 윤리학을 설명하는 지은이는 페르난도 사바테르, 마드리드종합대 철학과 교수다. 평생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한 이 학자만큼 윤리학 이야기를 제대로 해줄 적임자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에게, 그것도 윤리학이라는 따분해 보이는 분야를 설명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 아버지가 과연 어떻게 윤리학이란 쓴 약에 설탕옷을 입혀 먹이는지 지켜보는 것, 그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다.
|
||||
사바테르는 열다섯살 아들이 하품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윤리학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철저하게 ‘까부수며’ 시작한다. 윤리학? 별거 아냐. 윤리학 이야기에 도덕을 떠올리지도 마. 심지어 윤리학이 종교수업을 대신하는 것은 불행하다고까지 잘라 말한다. “윤리학은 교리문답을 뒷받침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며 오늘날에는 특히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바테르는 윤리학의 진짜 모토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해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윤리학은 더 나은 삶, ‘멋진 삶’을 살려는 이성적 시도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따라서 진정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최선의 것을 원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기주의자, 곧 “무엇이 자신이 원하는 멋진 삶에 적합한지 알고, 그것을 이루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거부했음을 깨닫는 것보다 큰 벌은 없다.” 지은이가 영국의 폭군이자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리처드3세 이야기를 예로 들며 들려주는 말이다.
이런 모든 설명의 바탕에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지은이의 믿음이 깔려있다. 그래서 그는 윤리란 결코 ‘의무’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라고 믿는다. 당위가 강요하는 규제를 따르는 ‘의무의 윤리학’ 대신 사바테르는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들을 스스로 고민하는 ‘자유의 윤리학’을 역설하고 있다. “윤리학이 나를 통해 네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자유와 자기 책임 안에서 스스로 추구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고정관념을 깨기는 해도 결국 ‘역지사지’가 가장 중요하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점을 짚는 것까지 뛰어넘지는 않는다. 그래도 윤리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지은이의 단호하고도 강력한 충고는 읽는 재미와 신선한 충격, 그리고 속물들을 비웃는 카타르시스까지 함께 느끼게 해준다.
“즐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가장 고약한 점은 사람들이 즐겁게 잘 살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고 잘못되어가면 즐겁게 잘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윤리학은 우리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지 이웃사람들을 뛰어난 말솜씨로 비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것을 원하는 일이다.”
%%99002%%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