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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9:04 수정 : 2005.02.04 19:04

책의 제목은 한 줄의 전보문

“책의 제목은 한 줄의 전보문이다.” 책 제목은 전보처럼 짧을수록 좋다. 또 지금 현재의 문화, 관습, 정치, 경제, 역사, 모델, 뉴스와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고정관념이나 관습을 타파해야 한다. 후발주자일수록 기존의 성공에 시비를 걸거나 남이 안 한 짓을 해야 한다. 물론 재미는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그래야 화제를 만들면서 역사를 바꾼다.

전보에는 듣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전율하는 ‘무엇’이 들어있으면 좋다. 지금 우리 시장에서 가장 잘 통하는 열쇳말이라면 더욱 좋다. 그래야 독자를 강력하게 자극할 수 있다. 과거에 책은 문화적 가치나 학술적 가치가 중시됐다. 그래서 우선 품위가 있어야 했다. 그때는 인간의 머리(뇌)만 움직이면 됐다.

그러나 인간이 현란한 디지털 영상으로부터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게 되고부터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외부환경(사회)까지 함께 움직일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책의 제목은 독자의 이기심에 호소하거나 뉴스를 제공하면서 책의 컨셉트와 핵심내용, 헤드카피라는 삼박자가 잘 조화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에 가장 알맞은 키워드는 무엇인가? 바로 ‘공부’다. 지금 막 한 인터넷서점에서 ‘공부’로 검색해보니 1165종이나 되는 책이 주르륵 떠오른다. 공부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공부’책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제는 ‘공부’하기에 성공한 사람에 대한 1단 기사만 보여도 수십 명의 출판기획자가 그 사람에게 달려들고 있다. 그들은 ‘아이를 어떻게 해라’는 가르침을 적당히 던져주면서 채찍(불안)과 당근(기대감)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으로 책을 잘 포장하기만 하면 2만~3만 부 정도는 팔린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필자들은 대부분 교육전문가도, 문필가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부모일 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해보았더니 성공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독자는 나도 그대로 따라하면 내 아이를 공부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이기심을 충족하려 든다.

‘공부’에 대한 독자의 이기심은 아이의 나이에 따라 크게 나뉜다. 초등학생까지는 부모의 역할을 유도해야 한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2003년 9월), <아이의 인생은 초등학교에 달려 있다>(2004년 3월), <평생 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2004년 7월),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2005년 1월)로 제목이 변해가면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구체적인 시기를 한정하는 것으로 바뀌고, 그것은 다시 핵심 행동요령을 제시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부모의 이기심은 마치 제 역할은 끝난 것처럼 변한다. 이제 부모의 이기심은 아이가 제 스스로 잘 했으면 하는 욕망으로 변한다. 그래서 역할 모델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이래로 <공부 9단 오기 10단>, <대한민국 우등생> <공부의 왕도> 같이 국내외 명문대를 들어간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을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니는 길목마다 놓아주려 든다.

하지만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되니 인갑답게만 크라는 주장을 담은 책은 실패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전보’는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부모마저도 아이가 볼까 두려워 바로 휴지통에 숨겨버린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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