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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0 06:01 수정 : 2019.12.20 20:05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은행나무·1만3000원

1692년 미국 세일럼 마을에서 마녀로 몰렸다 살아남은 바베이도스 출신 흑인 여성 티투바에 대한 기록을 접한 작가는 존재했음에도 “비존재”로 취급된 그녀의 삶을 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1986)로 그려냈다. 작가의 상상으로 티투바란 인물이 빚어졌는데 노예제도 아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스러져간 무수한 흑인 여성들이 당한 폭력이 그녀에게 켜켜이 새겨졌다.

티투바는 자신이 “증오와 멸시의 행위로부터” 태어났다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던 어머니는 배의 갑판 위에서 영국인 선원에게 강간당한다. 그로 인해 잉태된 티투바는 자신과 어머니를 보듬어준 양아버지 아래서 자라지만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강간하려는 백인 주인에게 저항했기에 목매달린 어머니가 처형되는 장면을 일곱 살 아이는 고스란히 지켜본다. 고아가 된 아이를 돌봐준 늙은 여인은 치유 기술과 주술을 가르쳐준 뒤 세상을 떠난다. 티투바는 주위를 맴도는 죽은 영혼들과 교감하며 혼자 살아가다가 존 인디언이라는 이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다시 백인들에게 예속된다. 이후 그녀에겐 어머니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던” 모습을 목격하던 때와 다를 바 없는 삶이 펼쳐진다. 새 주인이 된 위선적인 목사를 따라 미국 보스턴과 세일럼 마을로 떠도는 동안 티투바는 편견과 억측, 저마다의 이익을 위한 음모 때문에 ‘마녀’로 몰리면서도 끝내 ‘살아남는’ 형벌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흑인 노예임에도 남자이기에 덜 고통받는 존 인디언과 달리 ‘여성’이란 조건이 약자에게 어떻게 또 다른 굴레로 작용하는지 소설은 생생히 보여준다.

마리즈 콩데. 은행나무 제공

티투바는 끝없이 고향을, 그곳에서의 자유를 갈망한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간 바베이도스에서 “우연의 결실”로 아이를 밴 그녀가 말한다. “내 딸아이의 눈을 또 다른 태양을 향해 열어주는 꿈”을 꾼다고. ‘또 다른 태양’은 얼마나 많은 티투바들이 살아낸 뒤에야 떠올랐을까.

성추문에 휩쓸린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한 해 미루었던 2018년, 그 대안으로 ‘뉴 아카데미 문학상’이 제정됐고 흑인 부르주아 계급으로 태어나 가난한 미혼모가 되는 질곡 속에서 작품 세계를 펼쳐나간 마리즈 콩데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작가의 대표작인 이 소설은, 군림하는 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배제된 ‘존재’가 자기 삶을 끈질기게 사유하는 데에서 깊은 울림이 남는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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