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3 06:00
수정 : 2020.01.06 14:31
민주화운동가 딸의 자전소설 ‘진주’
수배와 투옥으로 부재하는 아버지
아직 어린 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인칭과 시점 혼재, 시각자료 활용 등
형식실험 통해 ‘소문자 역사’ 시도
“이야기란 타자의 기억과 함께해”
진주
장혜령 지음/문학동네·1만5000원
“아버지는 나라를 위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학년 초, 가족 관계와 부모의 최종 학력 및 직업 등을 기재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한 뒤 교실에서 그 내용을 발표할 때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거짓이며 동시에 진실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분이 왜 이 세상에서 도망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수배령이 내려진 아버지가 도피 중일 때 아이는 일기장에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빠께서 안 잡히셨으면 좋겠다.”
장혜령의 소설 <진주>는 대학 시절부터 이십년 남짓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한 아버지를 둔 딸의 자전적 기록이다. 가정환경조사서 사건 직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진주로 가서 감옥에 있던 아버지를 면회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 뒤인 2015년 2월, 어른이 된 작가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진주로 향한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딸에게는 여전히 묻고 싶은 질문과 듣고 싶은 답이 쌓여 있었다. 두 번의 진주행 비행이 이 소설을 낳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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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종사했던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담은 자전적 소설 <진주>를 낸 장혜령. 제주에 머물고 있는 그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란 기억과 함께 발생하며 기억이란 타자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장혜령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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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빠가 없어?”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을 때도 노동자들과 함께하느라 집에 있는 일이 드물었던 아버지의 행방과 존재 여부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 대해 친구들에게 설명할 ‘언어’가 아이에게는 부족했다.
“저 사람, 너희 아빠 아냐?”
어느 날, 모처럼 집에 와 있던 아버지가 딸이 놓고 간 과제물을 들고 학교에 찾아갔을 때,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인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아이는 “무조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아버지를 회피한다. 그러고는 그런 스스로에 대해 뒤늦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진주>는 여느 소설과는 다른 형식으로 쓰였다. 일인칭과 이인칭·삼인칭이 혼재되었고, 파편적인 삽화들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출몰하며, 사진과 그림 등 시각 자료들이 텍스트의 중요한 일부로서 적극 활용된 점에서는 베(W.) 게(G.) 제발트를 떠오르게도 한다. 작가는 재미 작가 차학경(1951~1982)의 <딕테>로부터 형식과 관련한 시사점을 얻었노라고 했다.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닌 존재들의 역사” “대문자 역사가 아닌 소문자 역사”를 쓰는 데에 <딕테>가 도움을 주었다고, 그는 <한겨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밝혔다.
보도자료 삼아 보낸 문건에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켜 “이름없는 민주화운동가”였다고 했다. 그 사건에 앞서 그는 미래의 아내를 찾아가 묻는다. 자신은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고. 물음이라기보다는 당부에 가까웠을 그 말에 여자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첫날밤을 보냈으며, “새벽이 오자, 남자는 먼 길을 떠났다.”
“엄마는 아버지의 동지”였다. 아버지는 안산의 노동자 상담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소식지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 엄마는 노동 교회가 운영하는 탁아소 선생님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자녀들과 함께 자신의 딸을 가르쳤고, 어린 딸은 “동요 대신 어른들이 부르는 투쟁가와 민중가요를” 부르고 “경찰을 짭새라 부르”며 자랐다. 나중에 엄마는 남편과 떨어져 서울에서 옷 수선집을 하며 딸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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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 <진주>의 작가 장혜령이 열한두 살 무렵, 어머니의 옷 수선집에서 반려견 ‘삼내’와 함께 찍은 사진. 장혜령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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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의 운동장이 필요합니다.” 소설의 시작은 딸의 중학 진학을 앞둔 겨울에 막 출소한 아버지가 학교 운동장에서 딸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또 딸에게 공집합을 가르치려 한다. “우리는 공집합이고 그것은 모든 것”이라는 이치를, 그러나 어린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운동장과 공집합은 아버지의 이념을 축조하고 실천을 추동한 상징들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딸이 중학생 되던 해 집으로 잠시 돌아왔는데, 건넌방을 쓰기 시작한 그 남자가 오자 내가 기다리던 나의 아버지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부재하는 상태에서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더 이상 그런 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보낸 자료문에 따르면 “부재했던 아버지는 돌아온 아버지를 초과하는 존재”였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평범한 가장으로서 “개인적인 삶”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인 친구의 부정과 부패에 분개해 차라리 일용직 노동을 택하기를 거듭한다. 그런 남편을 향해 아내는 “이제 그만 불의를 참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딸은 혼자서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당신인가. 그럴 수 있는가.”
책을 읽으며 독자는 질문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야기인가 딸의 이야기인가. 책 말미에 실린, 비교적 긴 ‘작가의 말’ 마지막 단락은 그에 대한 답처럼 읽힌다.
“나에 대해 쓴다고 해서 나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을 향해 쓰이고, 당신에게 가닿음으로써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그것을 알 것 같다.”
장혜령은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으며, 이듬해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을 출간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바로잡습니다
<한겨레> ‘책&지성’은 지난 3일 발행한 별지 3면에서 ‘아버지에게 가닿는 딸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민주화운동가 딸의 이야기를 담은 장혜령 작가의 자전소설 <진주>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작가와 나눈 이메일 인터뷰 내용을 포함했고, 소설에 삽입된 자료로 추정되는 인물을 아버지로 특정하였습니다. 이에 장 작가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음에도 이를 기사에 포함했기에 사과를 요청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뜻을 잘못 읽어 이 부분이 기사에 포함되어 오류가 생겼습니다. 작가와 가족분들께 상처를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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