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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0 05:00 수정 : 2020.01.10 09:43

노동계급이 진보정당 대신 극우 포퓰리즘 지지하는 유럽 “계급정치는 반대로 복원됐다”
상층계급이 하층계급보다 1.57배 투표…미국은 거의 30%p 격차, 소득불평등으로 이어져

불평등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강명세 지음/바오·2만원

민주주의는 저소득층의 요구를 반영하는가? 재분배(복지) 정책은 왜 늘 공급이 부족한가?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쓴 <불평등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투표율에서 찾는다. 어느 나라나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투표장에 많이 간다. 강 위원이 국제사회비교조사(ISSP) 통계를 토대로 9개 직업 분류에서 단순노무직과 장치조립 노동자를 ‘하층계급’으로, 전문가와 최고 관리자 집단을 ‘상층계급’으로 분류해 계급별 투표율을 계산해 보니, “상층계급은 하층계급이 투표할 가능성에 견줘 1.57배 투표”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위원은 “재분배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은 소득이 부족하고 저학력자이다.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자원과 정보가 풍부한 고학력 혹은 고소득자보다 투표에 덜 참여한다”고 밝혔다.

저소득 투표 순위에 1위가 없는 이유는 투표가 의무사항인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인 미국의 경우, 고소득자(83.3%)와 저소득자(55.2%)의 투표율 차이는 거의 30%포인트에 가깝다(국제사회비교조사 1987~2009 통계). 결과는 소득불평등도로 나타난다. 2017년 지니계수와 팔마비율로 본 소득불평등 그래프에서 미국은 3번째로 불평등도가 높다.

이 책의 논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계급배반 투표이론과는 결이 다르다. 계급배반 투표이론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했다면, 이 책은 저소득층의 재분배 선호 성향을 전제하되, 투표로 이어지지 않음으로써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실제로 소득별 재분배 선호율은 저소득층이 높고 고소득층이 낮다. 저소득층은 재분배를 바라고, 고소득층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저소득자의 재분배 선호율은 66.2%로 고소득자의 45.9%보다 현저히 높다. 강 위원은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바라는 사람의 요구보다는 재분배 재정에 필요한 조세를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며, “소수 엘리트와 정부가 결합하여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고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분배정책과 관련한 유럽의 연구도 저소득층은 과소 대표되는 반면 고소득층은 과도 대표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강 위원은 덧붙였다. “정치인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 정당과 정치인은 정책을 실현하자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투표를 동원한다. 따라서 기권자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다.”

한국은 저소득자 투표순위가 조사 대상 23개국 가운데 18위로 낮은 편이지만 고소득자(70.3%)와 저소득자(69.5%)의 차이는 크지 않다. 저소득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투표율이 낮은 것이다. 2017년 지니계수와 팔마비율로 본 소득불평등 그래프에서 한국은 5번째로 불평등도가 높다. 분단과 독재 등의 영향으로 정당들의 전반적인 보수성이 여전히 강해 소득에 따른 투표율 격차가 크지 않은데도 저소득층의 재분배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소선거구제의 결함으로 유권자들의 선호가 투표에 잘 반영되지 않아 온 측면도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조사 대상 23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고소득자의 재분배 선호율(80.6%)이 저소득자의 재분배 선호율(73.6%)보다 높은 점이다. 한국 고소득자들의 리버럴 성향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강 위원은 “빈곤층은 여러 가지 조건이 불리해서 투표에 적극적일 수 없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요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다”며 “정치체제나 정당이 저소득층을 동원하는 데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정당은 지지자를 동원하지 않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저소득층의 재분배 욕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동원할 정당의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인 셈이다. 지금처럼 저소득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잘 보이지 않는 현상이 지속할 경우 유럽처럼 극우 포퓰리즘의 출현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책은 상당 부분을 할애해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기술변화와 탈산업화, 세계화 등 거시적 변화와 이민 증가 등으로 인해 저소득 일자리를 담당해 왔던 노동계급이 더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강 위원은 이를 “역설의 계급정치”라고 불렀다. “포퓰리즘의 성공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계급정치는 마감했다’는 예측을 부정한다. 계급정치는 반대로 복원되었다. (…) 무역이론이 제시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은 국내적 패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사회보험정책이 보완되지 않으면 국내 정치적 불안으로 유지될 수 없다. 기술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에서 저숙련·저학력 노동자는 늘 퇴출 리스크에 직면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나 인도의 상품이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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