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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0 06:01 수정 : 2020.01.10 10:22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국·소련·영국의 여성 조종사 이야기

하늘로 날아
샐리 덩 글·그림, 허미경 옮김/너머학교·1만8000원

“우리도 비행하게 해 달라.”

2차 대전이 계속되자 동원할 수 있는 남성 조종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치에 맞서 싸우던 미국, 영국, 소련 정부 당국은 여성 조종사들이 군 비행기를 조종하겠단 생각 자체를 비웃으며 귀를 닫았다. 남성 조종사를 찾는 모집이 필사적일수록 여성들은 끈질긴 청원을 했다. 참혹한 파괴의 전장은 공교롭게도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최전선이 됐다. 끝내 불가피해진 ‘여성 조종사 모집’이란 기회를 꽉 움켜쥔 ‘준비된 비행사’들이 있었으니, 헤이젤, 말린, 릴리야가 그들이다.

<하늘로 날아>는 ‘자유를 위해 날아오른 세 여성 조종사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지은이 샐리 덩은 2차 대전 당시 실존했던 여성 전투기 조종사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 세기 전 금녀의 영역에 도전한 세 여성들의 담대한 비상을 아름다운 언어와 생생한 그림으로 되살렸다. 옮긴이의 소상한 해설과 간결한 문체가 이해와 감동을 돋운다.

첫번째 주인공 헤이젤은 미국 여성공군조종사그룹 ‘와스프’ 소속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중국계 조종사 헤이젤 잉 리를 본따왔다. 또다른 주인공 릴리야는 소련 여성전투기부대 588연대에서 800회에 이르는 임무를 수행한 리디야 리트뱌크의 활약상에 기대고 있다. 적진의 전투기를 홀로 타격한 그를 두고 독일군은 ‘밤의 마녀’라 불렀다. 말린은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영국 공군수송지원단 ‘아타’에 소속된 여성 조종사들을 대표하는 가공인물이다.

너머학교 제공

“세 여자아이는 하늘을 보았다.” 첫 문장은 날고 싶은 꿈이 들어차는 순간을 포착한다. 항공술의 기계역학과 비행기 조종법을 익히면 되는 ‘남자아이’와 달리, 그들 앞에 놓인 가장 큰 장벽은 타고난 성별이다. 그러나 편견을 뚫고 날고픈 꿈을 향해 직진한다. 헤이젤은 주말마다 지역 비행장을 구경하며 1차 대전 때 출시된 ‘커티스 제니’를 몰겠다고 다짐한다. 대서양 너머 영국 시골마을의 말린은 오빠에게 배운 비행실력으로 조종사 면허를 단숨에 딴다. 불시착한 쇳덩이 안의 사람이 마법사라 착각한 소련의 릴리야도 비행의 매력에 빨려든다.

너머학교 제공

군 조종사가 되고서 걱정과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이들은 여성들이 뛰어난 조종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고장이 잘 나고 불이 나기로 악명 높은 비행기 시험운행도 앞장서고 손으로 폭탄을 밀어 떨어뜨리는 위험한 적진 비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맘 한구석에선 이 전쟁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했어.” 종전이란 곧 조종석에서 내려와야 하는 일이기에, 헤이젤의 고백은 서글프게 들린다. 여성들을 부엌으로 돌려보내려는 100년 전 공기의 압박감에서 지금은 자유로운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너머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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