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6 18:22
수정 : 2020.01.17 08:40
“사죄하지 않으면 인간 아냐” 푸순전범관리소 일본 전범 생애 다룬 ‘대하드라마’
731부대 생체실험·학살·전시성폭력 고백…고립과 살해 위협 무릅쓰고 평생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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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치야 요시오가 1990년 6월 자신이 체포했던 항일영웅 장융싱의 넷째 딸 장추웨 부부를 만나 사죄하고 있다. 등이 보이는 사람 중 오른쪽이 장추웨.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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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김효순 지음/서해문집·1만9500원
괴뢰 만주국 시절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잡아 가두며 악명을 떨친 일본인 전범 쓰치야 요시오(1911~2001)는 ‘취조의 신’이라 불렸다. 일제 헌병 시절 만주국에서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만 328명, 체포해 고문하고 감옥에 넣은 이들은 1917명에 이르렀다. 1990년, 쓰치야 요시오는 자신이 체포해 죽음으로 몰고 간 중국 항일영웅 장융싱의 딸 앞에서 굵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사죄하지 않으면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민간인 3000명을 학살한 1932년의 핑딩산 사건의 가해자였던 또 다른 일본 전범은 세살 때 가족을 눈앞에서 잃은 피해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 죄를 알고 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은 살아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1956년 일본으로 귀환하기 시작한 전범 수백명은 일제 침략의 증언자로 나서서 피맺힌 목소리로 반전 평화를 외쳤다. 일본 사회는 “세뇌된 사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차별과 냉대를 멈추지 않았다. 취직이 좌절되고 때론 살해 위협도 쏟아졌다. 하지만 이들은 “증언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며 단체를 설립해 진실 알리기 운동을 계속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50년 7월19일, 소련을 떠난 화물열차가 중국 쑤이펀허역으로 들어왔다. 열차에 실린 화물은 ‘살인귀’로 불리던 일본 전범들이었다. 969명의 일본인들은 삼엄한 경비 태세에 긴장하여 “살아 돌아가긴 틀렸다”며 절망했다. 푸순 감옥은 중국과 조선의 항일운동가를 투옥해 잔인한 고문을 일삼던 일제의 근대감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옥을 중국은 대대적으로 손봐 새로 난방 장치를 설치하고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창문을 넓혔으며 도서관, 대강당, 병원, 목욕실도 새로 지었다. ‘푸순전범관리소’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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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순전범관리소에서 전범들의 자발적 탄백을 유도하기 위해 연 전체 집회 장면.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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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총리는 전범들의 인격과 습속을 존중하라며 촘촘한 지시를 내렸다. 덕분에 전범들은 쌀밥을 먹고 관리소 직원은 수수밥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설날엔 떡국, 나중엔 일본인의 입맛을 고려한 초밥까지 배식했다. 포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한다는 방침은 중국공농홍군(홍군) 시대에 시작한 것이었다. 당 대표인 마오쩌둥은 홍군의 군기를 잡으려고 1928년 ‘3대 기율, 6항 주의’를 제정했는데, 이후에 8항으로 바뀐 ‘주의’ 가운데엔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마라” “포로를 학대하지 마라” 등이 포함됐다. 학습으로 죄를 뉘우치게 하고 바뀌는 자는 관대히 처분한다는 원칙이 전범 개조정책의 핵심이었다. 과연 목숨을 건 사상의 대결이었고, 당국은 전범들에게 “고뇌에 찬 격렬한 자기투쟁 끝에 심각한 반성”이 잇따르도록 유도했다. 처음에 거들먹거리며 보복을 다짐하던 전범들은 치열한 토론 끝에 일본제국주의가 대내적으로는 압박과 착취, 대외적으로는 침략과 확장으로 유지돼왔다는 인식을 얻으며 죄를 고백(탄백)했다. 마침내 1956년 6월, 특별군사법정에서 푸순의 전범들을 포함해 수감중인 전범 1000여명 중 45명만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대부분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났다. 사형수도, 무기형도 없었다. 금고라는 관대한 처분에 가해자들은 안도감과 미안함이 뒤섞인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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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특별군사법정석 피고석에 선 전 일본군 사단장들. 스즈키 히라쿠 중장(앞줄 오른쪽)과 후지타 시게루 중장(가운데).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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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푸순전범관리소의 개조작업에는 김원, 오호연, 최인걸 조선족 3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중 관리소 2대 소장을 지낸 김원은 전범 개조 작업이 “자기 자신에 대한 교양이기도 했다”고 밝힐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의 초청으로 1984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원은 두 집단의 믿을 수 없는 우정을 두고 “동서고금을 통해 드문 일이며 확실히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때의 환영행사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참석자는 600명이 넘었고 당시의 조우를 다룬 수기집 <28년 만의 재회>(1985)에는 250명의 수기가 실렸다.
한중일에서 발간된 수기와 회고록, 논문과 보고서, 정기간행물과 영상자료 등 사료를 정교하게 쌓아올린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서해문집)는 허튼 소리 한마디 없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가장 큰 성과는 가해와 피해, 사죄와 용서, 국가와 개인 사이에 오가는 복잡한 진실과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낸 점이다. 일본인 전범들은 만주국 행정·사법 인력, 군인, 경찰, 관동헌병대 등이었고 731 세균전 부대 관련자도 있었다. 전범들에게 인간적 대우를 해줘야 하는 관리자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범한 국가적 관용이 있긴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찢어 죽여도 내 분은 풀리지 않는다”며 전범들의 눈앞에서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다. 중앙의 관대한 처리 방침이 전달되자 검찰과 전범관리소 간부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해 저우 총리에게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전후 처리과정의 복잡한 맥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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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소년’으로 직업군인을 꿈꾼 미오 유타카. 인생 말년에 계간지 <중귀련>에 상당한 자금지원과 함께 우파 보수 매체의 침략전쟁 부인과 노골적 역사왜곡을 맹비난했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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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에서 점호를 받고 있는 소년대원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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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커다란 아이러니는 전범들이 귀국한 뒤에 벌어진다. 살아 돌아간 이들이 잔혹한 생체실험, 민간인 학살 같은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1957년 설립한 중귀련의 활동과 각종 수기 덕분이었다. 푸순에 수감됐던 전범 15인의 수기를 실은 <삼광>(1957)은 두달 동안 20만부가 나갔다. 이들을 ‘자학사관’ ‘일본 죄악 사관’이라고 비난하던 수구 우파들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발족했고 난징학살과 일본군‘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부정했다. 이에 맞서 회원들은 1997년 계간지 <중귀련>을 창간하며 맞서 싸웠다.
회원 미오 유타카(1913~1998)는 계간지 발행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고 우파들을 향해 “전쟁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평론하는가?”라며 “파시스트나 우익에 대한 투쟁의 무기는 침략전쟁에서 저지른 우리의 죄행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죗값을 다하려고 그는 ‘731부대 난징대학살 무차별 폭격’의 중국인 희생자 유족이 1995년 제기한 배상소송에서 원고 쪽 증인이 되었다. 2000년 도쿄에서 연 일본군‘위안부’ 심판을 위한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두 사람도 중귀련 회원이었다. 731부대 소년대에 있었던 시노즈카 요시오는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1984년께부터 전국을 돌며 전쟁범죄를 고백했다. 그는 중귀련의 기념비 건립에 큰 힘을 보탰고 1998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731만행을 증언하려다 시카고 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돼 추방되기도 했다. 731부대를 증언하러 온 증인을 전범이라며 미국이 입국 감시자 명단에 올렸던 것이다.
지은이 김효순은 20여년간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문제 등을 천착해온 언론인으로, 이번 책은 시베리아 억류자를 다룬 전작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2009), 조선인 친일토벌부대를 다룬 <간도특설대>(2014)와 3부작이라 이를 만하다. 세 권을 함께 읽으면 알려지지 않은 동아시아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성싶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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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푸순전범관리소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한 김원.(맨 앞줄 가운데 검은 옷차림) 경북 봉화 출신의 김원은 푸순전범관리소 소장으로 헌신적으로 일했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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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특별군사법정에서 증언하고 있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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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위안특별군사법정에 기소된 일본 전범들이 선고를 듣고 있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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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요시오 전 만주국 헌병훈련처 처장 등 ‘마지막 전버’이 푸순에서 풀려나기 전 석방 결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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