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7 06:01
수정 : 2020.01.17 10:34
데스밸리에서 죽다
이재무 지음/천년의시작·1만원
이재무 시의 매력은 거침없는 솔직함에 있다. 남들이라면 감추거나 위장하려 했을 치부를 그는 가감없이 드러낸다. 새로 낸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에 실린 한 작품에서 그는 “나는 너무나 쉽게 열리고 닫히는 서랍이었다”(‘서랍에 대하여’)고 썼는데, 쉽게 열리고 닫히는 서랍 같은 투명함이 그의 시의 호소력과 보편성을 높인다.
“겨울밤은 반성하기 좋은 밤이고/ 죄 짓기 좋은 밤이다/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죄도 투명해진다/ 나는 악인이었다가/ 천사였다가 쫓는 자였다가/ 쫓기는 자가 된다/ 몸으로 지은 죄를 머리로/ 벌하고 머리로 지은 죄를/ 몸으로 지우는 겨울밤은 깊고 길다”(‘겨울밤’ 부분)
머릿속으로는 찰나에도 몇 번이고 죄를 지었다가는 씻는 이가 어찌 그뿐이겠는가. 죄와 벌, 쫓김과 쫓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신을 깨닫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인은 오히려 순수하고 무구하다 하겠다. 그의 순수와 무구는 물론 경험 이전의 백지와 같은 것은 아니다. 불순하고 죄 많은 경험을 거친 뒤에도 어렵게 남아 있는 순수와 무구라는 점에서 그것은 드물고 귀한 것이다. 한편으로 시인이 반성과 후회에 주저함이 없는 것은 그가 반성과 후회의 역설적 가치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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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시인. 천년의시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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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없는 삶처럼 밋밋하고 밍밍한 생은 없다. 그대의 일생이 강물처럼 푸르게 일렁이는 것은 그대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실수의 파고 때문이다. 후회는 생활의 교사, 후회가 없는 삶을 후회하여라.”(‘후회’ 부분)
나비와 파리는 똑같이 날개를 지니고 날아다닌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두 곤충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판이하다. 누군들 우아하고 화려한 나비의 비행을 선망하지 않겠는가. 나비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파리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재무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나비를 꿈꾸는 한 마리 파리/ 나는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부산스럽게 붕붕거린다”(‘나비와 파리’ 부분).
붕붕거리며 현실의 예토 위를 선회하면서도 시인은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를 잊지 않는다. 하늘 목장에 방목된 구름들의 산책을 보며 “저 느린 산책을 탁본하여 마음의 방에 걸어둔다”(‘탁본’)거나 “산 너머 내가 가야 할 미래의 나라 서쪽 하늘을//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노래’)겠노라는 대목에서는 “어느새 머리칼/ 하얀 중노인이”(‘일생’) 된 시인의 연치를 떠올리게 된다. “60년째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귀가’)이라는 시인의 귀갓길이 무탈하기를 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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